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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담 Jan 28. 2019

2019년 1월 14일

[프롤로그]


1. 출산 하루 전, 어머니가 나와 아내에게 나를 낳을 때 이야기를 해 주셨다.


"왠지 '오늘 낳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네 아부지 출근시키고 혼자 목욕탕가서 씻고 병원가서 입원했는데 정말 그 날 너를 낳았지."


그 말이 생각나서 우리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목욕재계하는 심정으로 목욕탕을 향해 걸어갔다. 계란이나 잔뜩 먹고 나오자, 는 식의 농담을 나누고 각자 탕으로 향했다. 뜨거운 물에 오래 씻어도 긴장감이 잘 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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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내와 맥반석 계란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진작 입원 준비를 마치고 필요한 짐도 차에 다 실어 놓았기에 병원으로 출발하기만 하면 됐다. 병원까지는 차로 약 10분 거리로 가까웠다.


운전을 하며 기분이 묘했다. 이 길을 달리는 상상을 수백, 수천번을 넘게 했었는데. 진통이 온 아내를 옆에 태우고 저녁에, 밤에, 새벽에, 아침에, 언제 진통이 올 지 몰라 각 시간대별로 상상해봤던  출산하러 가는 길.

이렇게 침착하고 차분하게 갈 줄은 몰랐지.


"도착하면 진료받고 입원 수속, 분만 준비, 출산 시작. 맞지?"


긴장하고 있을 아내에게 괜히 말을 걸었다. 아내는 차분하게 눈빛을 창밖으로 던지고 있었지만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응. 도담이가 잘 도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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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19년 1월 14일. 임신 39주 4일. 예정일을 사흘 앞두고 병원에 입원했다.

임신 20주에 이미 조산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얘기를 들었고 최소 26주는 버텨야 인큐베이터라도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은, 6주를 더 버텨야 이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노력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막막하고, 속상하고, 미안했다. 우리는 전화기 너머로 많이, 오래 울었다.


'화장실 갈 때, 식사할 때 빼곤 누워만 있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운동도, 태교 여행도, 집 앞 편의점도 마음껏 가지 못했던 20주가 지나갔다. 입원과 퇴원의 연속이었고 운동량이 부족해서 임신성 당뇨까지 와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먹는 즐거움까지 빼앗겼다.


목표로 삼았던 36주가 되던 12월 말, 의사 선생님은 아내를 참 대견해했다. 사실 여기까지 버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단다. 기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기적이라는 단어가 반갑지 않았다. '기적'이라는, 어느 날 갑자기 툭 던져진 선물같은 뜻으로 표현하기에는 아내의 140여 일이 너무 처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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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입원 수속을 마치고 분만 대기실에 들어갔다. 출산의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가족 분만도 신청했다. 내가 잠시 밖에서 기다리는 사이에 아내는 분만 준비를 마쳤다. 옷을 갈아 입고 팔에 링거를 꽂은 채 누워있는 아내를 보니 안쓰러웠다. 조산으로 온갖 걱정을 시켰던 도담이는 오히려 나올 생각이 없다.


"아이가 너무 잘 자란 덕에 못 내려오고 있어."


초음파 상으로 약 4.2kg까지 자란 도담이. 더 자라기 전에 우리는 도담이를 만나기로 결정했고 유도분만을 위한 분만 촉진제를 맞았다. 고통스러운 내진과 한 시간의 진통을 겪으면서도 아내는 농담을 했다.


"지금 나 못생겼어?"


아직 덜 아픈가보다, 하며 머리를 한 대 쥐어 박았지만 내심 걱정됐다. 누구누구는 진통을 12시간을 했다더라, 이틀을 했다더라 하는 말을 듣고 난 후라 더 그랬다. 내가 편안한 모습을 보여야 아내가 동요하지 않는다는 말에 간신히 표정관리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진통이 점점 강하게, 자주 오며 아내는 농담은커녕 의사표현도 말로 하지 못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임산부가 소리지르는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꽉 깨문 입술 사이로 어떤 소리도 새어 나오지 못했고, 가끔 숨은 쉬고 있는지가 걱정돼 호흡하는 것을 옆에서 일깨워줘야 할 정도였다.


다섯 시간을 넘게 진통을 했지만 출산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도담이는 여전히 엄마의 명치까지 닿을 듯 올라와 있었다. 선생님은 수술을 권했다.


"진통을 더 지켜봐도 괜찮지만 일단 아이가 너무 큽니다. 전혀 진행이 안되고 있는데, 이렇게 기약없이 계속 진통을 하는건 산모에게 많이 힘들겁니다."


정신없는 아내에게 의사를 묻는 것이 미안했지만, 나는 물어야했다. 무엇보다 자연분만에 대한 아내의 의지가 큰 것을 알고 있었다. 수술할까, 의사 선생님은 짧게 물었고 아내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위해 휠체어에 앉은 아내에게 잘 다녀와, 라고 인사를 건넸지만 아내는 진통 때문에 듣지 못했다. 빨리 간호사를 통해 아내를 보내고 혼자 남아 이후의 일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아기가 나오면 이상 없는지 보호자분이 확인하시고, 1층에서 산모용 복대를 사와야 하고..."


분명 들으면서 기계적으로 받아 적고 있는데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았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아내 모습이 자꾸 생각나 눈물이 나려 했다. 로봇처럼 네, 네, 만 반복하다 설명이 끝나자 도망치듯 분만실을 나와 화장실로 달려갔다. 속상함과 걱정되는 마음에 한참 눈물을 쏟다가 보호자대기실로 향했다. 몇 분 기다리지 않았는데 허무하리만큼 수술은 금방 끝났고 전광판에 익숙한 이름이 올라왔다.


2019.01.14 , 15:13

이ㅇㅇ산모님, 왕자입니다.


39주 4일을 기다려 만난,

우리들의 소중한 아이.


우리의 전부가 될 아이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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