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겠다는 이들에게
“땡땡 홈쇼핑에서 기증한 바자회 물건 10톤이 온다고 하니 주말에 출근해.”
모금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행사 중 하나가 바로 바자회다. 협력할만한 기업을 잘 뚫어 놓으면 연이 되어 계속되기에 처음이 어렵지 그 후에는 기업도 사회적인 역할을 고민하기에 좋아한다. 바자회 시즌이 되면 홈쇼핑 업체에서 반품된 박스들을 5톤 트럭 두대에 싣고 온다. 택배 박스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때부터 직원들은 밤을 지새우며 일명 ‘까대기’를 한다.
택까지 붙어있는 새것, 쓰다가 반품한 화장품, 한 짝만 들어있는 신발 등 수천 개의 물건을 검수하여 판매할 수 있는 것만 추려내기 위해 계속되는 까대기를 하려면 목장갑과 짧은 날의 커터칼은 필수이지만 5톤 정도 해치웠을 쯤엔 맨손으로 테이프를 뜯는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물건은 기부된 ‘공짜’라지만 나의 주말 노동력은 공짜가 아닌데 세트로 당연히 공짜인 것처럼 묶여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업무 외에 공짜로 제공한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생각했지만, 이곳에는 야근수당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작은 회사에서 야근은 불가피한 관계이며 배우는 자세로 입사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나도 계약서에 사인을 한 결과다.
입사할 때는 경력도 없는데 어디든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열정 엔진을 가동했다. 초반에는 새로운 일을 배우고 처음 겪는 일들을 해내는 것이 힘들었지만 흥미로웠다.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곧 장점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장점은 곧 단점이 되었다. 업무를 진득하게 하면서 원하는 길을 파고 싶어도 인력과 시간이 현저히 부족했다. 체계를 세우기보다는 당장의 문제를 처리하느라 허덕이는 순간이 계속되면서 다채롭게 성장했지만,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시간을 보냈다.
작은 조직에도 어느 정도의 체계는 필요하고, 새로운 경력과 경험을 위해 왔으니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돈을 받지 않고 일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업계를 따지기 이전에 그 회사의 체계와 재정상태, 또 문화가 나에게 맞을 것인지 나도 ‘갑’이 되어 확인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취업과 이직의 시장이 매우 치열하고 힘들지만, 그렇다고 ‘을’의 자세로 뽑아만 주신다면 어디든 간다는 마인드는 삶을 더 치열하고 힘들게 만들고 만다.
때론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법이다. 하루에 최소 8시간 이상의 시간을 자신과 맞지 않는 일에 쓴다면 그것만큼 가성비가 떨어지는 선택이 없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기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오직 나의 몫이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경험하고 싶은 업계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넙죽 들어가면 안 되는 이유다.
나는 업계를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니라, 회사를 잘못 선택했던 것이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회사는 바꿀 수 있다는 것.
그것만이 희망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다시 내 칼을 찾을 것이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