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으로 안정감을 얻는 이들에게
나는 다시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것도 인하우스 디자이너.
그래서 우리 집 말고 다른 집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 집 일만 하기도 바쁜 팔이 안으로 굽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인하우스 디자이너의 장점이라 하면 하나의 브랜드만 파고들면 된다는 점, 내부와의 소통을 잘하면 작업이 수월하다는 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단점은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하기는 어렵다는 것, 회사와 나의 디자인 스타일이 맞지 않으면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힘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인하우스 디자이너에게는 사이클이 존재한다. 보통 첫 해는 아주 재미있다. 새로운 일을 배워가며 시행착오도 겪고 작업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 없이 바쁘게 일하다 보면 일 년이 지나있다. 매년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이클을 한 3년 하면 매우 지겨워진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 아닐까. 매년~ 똑같이~ 굴러가는 일 년. 사이사이 치고 들어오는 소소한 일거리가 리프레시로 느껴질 정도가 되면 이직을 생각하게 되는 굴레..
그렇게 나는 4년 차부터 포트폴리오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 번에 모으려면 너무 힘이 드니 틈이 날 때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작업물이 생기면 바로바로 챙겨두었다. 5년 차 정도가 되니 기존에 하던 일들을 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일명 눈감고도 하는 경지) 그래서 짬이 나는 시간들을 모아 나를 위한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집에 좋은 컴퓨터를 들였다. 그것이 이직이든 아니면 나만의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향한 탐구의 시작. 그러나 그 탐구에는 큰 문제가 있었으니…
인하우스 디자이너에게는 끊임없이 회사에서 던져주는 과제가 있다. 항상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주어지는 일을 시기에 맞춰 끝내는 것이 가장 큰 이슈다. 그러나 내가 홀로서기를 하려고 하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진다. 어떤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없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는 주어지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일을 찾아 나서야 하는데 막막함이 만만치가 않다. 마치 부모님과 함께 살다 독립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다. 늘 세탁기 옆에는 세제가 있어서 빨래만 하면 되었는데, 세탁세제도 내가 사야 하는 것과 같달까… 내가 사지 않으면 빨래를 못하는 그런 것.
그렇게 오늘도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주어지는 일들을 처리하며 마음 한편에서 늘 독립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