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해 Jan 04. 2022

한적한 바다의 여유에 닿아 오다.

여름에 동해 바다에서 스노클링 한 이야기 20210722-20210726

떠나자 일단은,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몇 주 전에 나는 저번 여행에서 답사를 하였던 장호항으로, 친구와 스노클링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둘이서 여러 날에 걸쳐 여러 번의 의논을 하여, 언제든 바다로 뛰어들어 스노클링을 하기에 편하도록 장호항 바로 앞의 숙소에 묵기로 결정을 했고 예약을 해두었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행날, 친구를 만나고 숙소부터 가기 위해 주소를 보니, 숙소 위치가 장호항이 있는 삼척에 속한 것도 아니고 엉뚱한 동해시의 묵호항에 있었다. 혼자도 아니고 둘이 같이 어디에 홀렸던 걸까? 왜 한 번도 확인을 하지 않았지? 매번 하던 숙소 표기를 포함한 여행 계획 지도 만들기는 왜 하지 않았지?!

수 많았던 확인할 기회를 놓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여행 당일에 와서야 이를 알게 되었으니 할 수 없지, 일단 가보자고.

(사진: 동행 친구)


바다에서 놀았던 이야기들

그날의 거북이는 어디로 갔을까?

서울에서 동해로 가는 길에 강릉을 지나게 되어, 쉬어갈 겸 등명 해변에 들러보았다.


나는 이곳을 조용하고 맑고 우리의 추억이 깃든 의미 있는 바다라고 생각한다. 여기도 내가 먼저 와서 작은 거북이들을 발견하고 친구에게 다시 가보자 하며 같이 왔는데, 거북이도 물고기도 없었던 첫 스노클링 여행지였던 이 친구의 생각은 어떨까 모르겠다. 살짝 궁금은 하지만 물어보지 않기로 한다.

나는 이제 이곳에 세 번째 방문인데 오늘도 첫날 우연히 만났던 거북이들은 없었다. 해수욕장 개장을 한 한참 여름인 중에 와서 보니 우리가 알던 고요한 모습이 아니고, 파라솔도 놓여 있고 사람들도 꽤 있었다. 잠시 노래를 들으며 쉬면서 발랄해진 분위기를 즐겨보았다. 한껏 푸른 바다를 보니 기분이 좋다.

조금 달라진 등명 해변


장호항 대신에 갈남항

다행이라고 해도 될까, 장호항은 숙소에서 한 시간이 조금 안 걸렸다. 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이니까 장호항부터 가보기로 한다. 내가 처음 여기를 알았을 때는 분명 숨어있는 명소였는데 와서 보니, 몇 년 사이에 유명해진 모양인지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조금 더 멀리 갈남항으로 갔다. 이곳도 스노클링 스폿에는 사람이 많아서 옆의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코로나 시절이라 놀기는 하더라도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게 된다. 먼 거리가 아닌데도 이 해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 좋았고, 모래 바로 앞에 주차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하늘이 맑아서 그런가, 유난히 이곳의 바닷속이 투명해 보인다. 친구가 특별히 얼굴 전체를 감싸는 마스크를 준비해와서, 쓰기에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쨍쨍한 해로부터 피부를 잘 지켜주었다.

갈남항 해변, 얼굴 마스크 착용


돌아가는 길에 스노클링 장소 쪽의 카페 옥상에서 잠시 쉬었다. 계획과는 조금 다른 여행이지만, 물놀이를 하고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니 뭐가 어찌 되었든 다 좋았다. 뭘 해도 모두 즐겁다.

갈남 해수욕장, 카페


추암 해수욕장

추암 해수욕장에 왔다. 해변을 따라 먹을거리와 관광 상품을 판매하는 여러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이 여행 동안에는 볼 수 없었던 유명 관광지의 모습이다. 동해의 몇몇 해수욕장을 예약제로 입장 인원을 제한한다 하여, 사람이 많지 않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네이버를 통해 이곳을 미리 예약을 해두었었다. 예약 사항을 실제로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 거리두기가 가능한 붐빔이었다.


우리는 구석에 자리를 두고 물놀이를 하고, 관광객처럼 편의점에서 맥주도 사서 마셔보고 산책도 했다. 해수욕장 옆에 출렁다리가 있는 해안산책로 쪽으로 따라 가면 지대가 꽤 높은 곳에서 바다와 촛대바위를 볼 수 있다. 가는 길에 물빛에 정말 예뻐서 스노클링을 하러 갈 길이 있나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추암 해변 산책


들러 보다

오가는 길의 표지판에 해수욕장이라 쓰여있던 곳들을 기웃거려 본다.


감추 해변

주차를 하고 짐을 들고 육교를 오르고 군사 지역 경고 문구를 지나 좁은 철문으로 들어가는 조금 으스스하고 어려운 길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조용하고 맑은 해변이 나와서 안도하였고, 절벽 아래 그늘진 곳이 있어 자리를 잡았다.


이 한여름에 이렇게 사람이 없다니 신이 난다. 스노클링 하면서 볼 때는 물고기들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프리 다이빙하는 그룹이 나중에 온 걸로 봐서 조금 더 멀리 나가면 꽤 있는 모양이다.

감추 해변, 물놀이 온 신난 강아지


옆에 감추사라는 오래된 절이 있는데 여기서 바다를 보면 정말 예쁘다.

감추사에서 바라면 감추 해변


한섬 해변

그 옆에 한섬 해수욕장도 감추 해변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이 많지 않다. 데크가 잘 되어 있어 산책 삼아 걸어 보았다. 모래를 밟지 않아서 편하고 노을을 보기에 알맞은 좋은 곳이었다.


묵호항 살이

실수로 예약하지 않았으면 묵호항을 잘 몰랐을 것이다. 몇몇 후기를 살펴서 골라 가볼 수 있는 식당들이 있고, 일출과 일몰과 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대와 등대오름길이 있고, 해안 산책로가 꾸며진 관광지의 모습과 항구 마을의 자연스러움이 적당히 어우러진 좋은 곳이다.

다음 달에 울릉도 여행을 가기 위해 배를 어디서 탈 지와 출발 전 하루 지낼 곳을 알아보는 중이었는데, 의도하지 않게 후보지였던 곳 중 하나인 이곳 주변을 답사하게 되었다. 숙소에서 바로 바다로 오갈 수 없는 하나를 잃었지만, 다음 여행에서 고생을 덜 하게 되는 하나를 얻었다.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

언제든 볼 수 있지만 일상에서 잘하지 않는 것이 하늘을 보는 일인 듯하다. 사는 데에 바쁘고 여유가 없을 때는 안 보이다가, 여행을 가거나 산책을 한다거나 해서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날에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그러면 늘 있었는데도 어쩐지 이 날의 하늘과 노을과 해와 달과 별이 유난하게 예뻐 보이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일출

이 또한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아침 일찍 눈이 떠져 그 김에 일어나 일출을 보러 가보기로 한다. 친구는 잘 자는 중이라 홀로 조용히 방을 나왔다. 구름이 살짝 있지만 가는 길에 펼쳐진 여명이 아름답다. 전망대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그 옆길의 높은 곳에 올라가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감상하였다. 해가 뜨기 전 기다림은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나서는 수평선에서 쑥쑥 빠르게 떠올라 갔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어본다.

해뜨기 전, 해 보러 가는 길

돌아가는 길은 하늘도 마음도 더 맑아진 느낌이다. 오늘도 맑은 날이 될 거 같아 기분이 좋다.


일몰

숙소가 있는 곳이 동쪽이라 그런지 해가 지는 모습이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임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마다 보이는, 한참 유행하던 팬톤 컬러의 조합처럼 분홍 빛이 도는 하늘이 아름답다.

로즈쿼츠 일몰


숙소를 나오면 '등대오름길'이라는 표지가 있고, 뒤편의 길로 연결이 되어 있다. 물놀이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 늦은 오후에 이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 보았다. 길 이름대로 마을의 제일 높은 곳에 등대가 있고 카페도 있고, 일몰을 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묵호항 일몰, 등대 오름길, 햇빛에 많이 탄 발들
일몰, 등대 앞에서

항구와 바다와 하늘과 구름과 배가 이루는 풍경이 아름답고 평온하다.


밤의 마을

아름다운 일몰의 시간이 지나고 밤이 찾아온다. 유난히 어둡고 무서운 바다의 파도를 가만히 바라보다, 달과 저 멀리 배에서 조명을 밝히는 수평선 위를 바라보며 안도감을 느낀다.

묵호항의 밤


조용한 항구 마을도 걷고 관광지 분위기의 해변 구역도 걸어 본다. 낮에는 몰랐는데 해안길에 등대 모양으로 예쁜 조명들이 길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묵호항에는 캐릭터 묵꼬양이 살고 있다.

묵호항의 밤, 묵꼬양


식생활

해물 잔치

역시 바닷가에 왔으니 해물을 많이 먹었다. 해물탕도 맛있었고, 갖은 해물과 고기들의 모둠 구이도 맛있었다. 항구 근처여서인지 먹는 음식마다 신선함이 잘 느껴진다. 매번 우리를 어렵게 하는 음식이 하나씩 있는데, 이번에는 대게를 먹으려 할 때마다 브레이크 타임에 걸리거나 휴무여서 여행의 마지막 날에 겨우 숙소 옆집에서 먹을 수 있었다.

해물 해물


해물 음식 중에서도 특히 가리비찜은 크기부터 내가 알던 가리비의 그것이 아니었고, 놀라운 제철 산지 음식맛의 정수를 느꼈다. 가리비의 바깥쪽에 눈이 수천 개가 달려 있다고 해서 먹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입 속에 넣고 나서는 먹는 순간만 잠시 잊기로 했다.

최고의 가리비 찜


북평 민속 시장

지난 여행에서 왔었던 북평 민속 시장에 친구와 다시 와서 구경도 하고, 메밀전, 메밀전병, 도토리묵과 지역 막걸리 지장수를 먹었다.


쉬어서 돌아오다

지난 7번 국도 여행 경험을 참고로 하여 이 여행에서 친구를 스노클링의 바다로 안내해 보았다. 나는 여름에 가려했던 곳에 다시 오고 친구는 큰 고민 없이 가자는 대로 다닐 수 있어서, 둘 다 만족한 즐거운 여행이지 않았나 여행의 날들을 돌아보며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여행 전에 조금 더 정신 상태가 좋았더라면 숙소를 잘 정해서 멀리 스노클링 투어를 안 가도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 장소는 이번에 잘 알아두었으니 다음 여행에서 숙소만 잘 정하면 되겠다.


예전에 70일간 긴 해외여행을 하고 한국에 오니 오랫동안 여행자의 시선으로 다녀서 그런 지, 그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한국어를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동네의 사소한 풍경 하나하나 모두 신기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여행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보이는 모든 것들에 의미를 두고 즐거워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움직이기도 싫고 마냥 힘들기만 할 때, 가끔은 특별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치료가 될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변을 따라,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