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7번 도로 #2 20210327-20210328
7번 국도보다 더 안쪽의 최대한 바다에 가까운 도로, 어떤 때는 이면 도로로, 고성에서 해안 길을 따라 동해까지 왔다. 제주도에는 아름다운 장소를 경유하는 느린 길을 안내하는 경로가 내비게이션에 추가되었다고 하는데, 동해 해안 등 전국에도 곧 생기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IT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나도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재미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고.
가는 중에 작은 만에 배들이 쉬고 있어서 차를 세웠다. 잠시 내려서 걸어보니, 조용하고 운치가 있는 포구 마을이다. 지난겨울에 갔던 제주도 구좌읍 시흥리가, 작은 만을 이룬 모양과 분위기가 비슷하여 머릿속에 떠오른다.
살아가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지만,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또 그렇게 없는 건 아니다. 여행에서는 대부분의 일이 나 또는 동행의 선택에 따라 결정이 된다. 내비게이션은 국도로 가라고 하지만, 내 뜻에 따라 그 옆의 작은 도로로 갈 수도 있고 가다가도 내려서 걸어볼 수도 있다. 하려고 했던 어떤 일이 갑자기 생긴 사정 때문에 못하게 됐을 때, 그 대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정하는 것도 결국은 스스로의 선택이다. 계획대로 안됐다고 짜증을 내는 대신, 목표를 새롭게 정비하여 여기에 다시 충실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아쉬워해봐야 내 앞길에 좋을 게 없다는 것을, 나는 여행에서 배운 것 같다.
(다음날) 일부러 바닷가로 정한 숙소에서 밖을 내다보니, 비 오고 흐린 날은 지나가고 오늘은 햇빛이 쨍하고 공기도 깨끗해진 기분이다. 벚꽃을 보러 오기에는 조금 이른 애매한 시기이지만, 비가 적당히 온 다음이어서 그런 지 어제 봤던 것보다 꽃이 더 피어있는 것 같다.
바닷가로 산책을 나와 걸어보기로 한다. 파도가 계속 모래에 인어공주의 다리 부분처럼 큰 조개껍질=스캘럽 모양을 만들고 있다. 파도와 모래와 조개껍데기의 알맞은 비율이 만들어낸 자연의 형태가 아름답다. 코가 막혔는지 바다 향은 생각보다 크게 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은 파도님이 전해주시는 감동만 주어질 뿐 아무 고민이 떠오르지 않는다.
카페에 앉아 오늘 갈 길을 가만히 생각해본다. 드립 커피를 주문했는데 사장님께서 감사하게도 커피가 연하게 내려진 것 같다며 한잔을 더 내려주셨다. 챙겨 온 텀블러의 분홍 벚꽃이 지금 시절에 잘 어울린다. 바다를 따라 줄지어 서있는 소나무가 멋지다.
동해안의 바다 모습은 어디나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주변 지형이나 시설의 조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 듯도 하다.
어달 해변은 방파제를 끝없이 치고 오르려 하는 파도와 멀리서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등대가 대조를 이루며, 청량한 하늘과 바다가 시원한 멋을 준다.
어달에서 조금 지나면 다음은, 깊은 바다가 느껴지는 묵호항이 있다.
잠시 주차 후 어떤 해변으로 갔다. 이곳은 갈매기님들께 소문난 쉼터인 듯하다. 방해되지 않을 구석에서 조금 쉬었다.
아직 겨울이라는 듯 깊은 차가움이 느껴지는 바다를 지나고, 사실은 정말 봄이 되었다며 벚꽃이 만개한 강변이 나타났다. 벚꽃을 보면 봄의 계절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어진다. 인적이 드문 벚꽃길을 따라 걸어본다.
강변 옆에는 시장도 있는데 장날이 따로 있는지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동네 고양이분들께서 햇살을 즐기고 계셨다. 집이 있으신 분들 같긴 한데 외출 냥인지 동네 냥인지 알기 어려웠다. 조심스레 가까이서 인사를 드려본다.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 스노클링을 하려고 적당한 곳을 알아보았는데 그중 일 순위는 장호항이었다. 여행 중에 종종 다음 여정을 생각해보곤 하는데, 이번엔 답사를 위한 본격적인 장호항 방문이다.
역시 스노클링을 하기에 좋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해변이 호를 이루고 물이 얕아 보여 안전할 것 같다. 물가가 모래가 아닌 돌과 바위들이 많아 스노클링이 목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몰리지 않아서 좋아할 듯도 하다. 물이 맑은 건 당연하다. 몇 달 뒤 와야지 마음을 정했다.
고모를 만나기 전 체력을 충전하기 위해 부산 기장에서 하루 지내기로 했는데,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해변 탐방을 줄이고 진짜 7번 국도로 들어서서 부산으로 간다. 왼편으로 늘 보이던 바다가 그새 익숙해졌는지, 이제 보이지 않으니 답답해져 울진-영덕 구간에서 잠시 바다 구경을 했다. 그리고 목적지에 아름답게 도착을 했다. 바다님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또 만나요.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7번 국도 해변길 여행은, 짧게나마 바다를 보며 어딘가 다른 지점에서 나를 바라보고 다독이며 어느 정도 마음도 순화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종전이 되든 통일이 되든, 고성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7번 국도 여행도 기력이 되는 동안에 가볼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