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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해 Jul 10. 2021

내륙에서 해변으로

사색의 7번 도로 #1 20210326-20210327

나무향기 한증막

강원도로 가는 길은 가끔은, 한 번에 가기에 조금 길다. 가는 중에 쉬어갈 겸, 가고 싶은 곳을 모아놓은 즐겨찾기 보따리 중에서 한 곳을 골라, 춘천의 한증막에 가보기로 한다.


입구부터 심상치 않은 고전미가 물씬 풍긴다. 한옥에 흔치 않은 중정의 긴 연못과 그 끝에 있는 정자가 인상적이다.

춘천 나무향기 한증막

들어가 보니, 나는 어차피 있는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마스크 착용을 의무로 하고 찻집과 식당 운영도 쉬는 등 방역에 유의하는 모습이어서 좀 더 안심이 된다. 

제 자리를 지킨 나무

운영 중인 시설은 탈의실 겸 샤워실, 그리고 한증막, 소금방이 하나씩 있고, 그 앞으로 나오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연못과 정자가 있던 밖에도 앉아 있을 만한 공간이 있다. 

먼저 한증막부터 들어가 본다. 코로나19로 실내 시설을 피하느라 찜질을 한 것도 오래되었지만, 이렇게 나무를 태워 뜨겁게 달구는 돔 형식의 한증막은 정말 오랜만이다. 이러한 한증막에는, 나무 향에서 느껴지는 특별한 기운과 운치가 있다. 이 안에서 땀을 흘리다가 바깥으로 나와 평상에 가만히 누워있으니, 가끔 잠이 안 올 때 불러보는 '알렉사'와 '헤이 구글'이 들려주는 소리가 아닌 진짜 자연의 새소리가 들린다. 맑은 하늘과 구름과 공기와 나무와 새와 연못과 물고기, 그리고 그 곁에 나, 스트레스와 피로가 은근하게 풀리는 느낌이다. 한 나무는 집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 지붕에 구멍을 내어 나무가 자라도록 해둔 모습이 멋지다.

이왕 온 김에, 2층으로 올라가 본다. 안마 의자를 발견해서 이것도 이용해 본다. 금액은 10분에 천 원으로 다른 곳과 같은데, 비교적 좋은 편의 제품인지 손바닥과 발바닥까지 살펴주는 세심한 안마를 해준다. 복도 끝으로 문을 열고 나와보니 테라스 같은 곳이 나왔다. 정말 좋아, 다음에는 좀 더 길게 와있어야겠다.


고성 왕곡마을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밖을 보니 예고대로 하늘이 흐렸다. 바다 구경은 맑을 때 하고 싶어서, 대신 무엇을 할까 검색을 해보다 근처에 한옥 마을이 있어 가보기로 한다. 한옥 마을이라는 것은 서울 북촌, 전주, 낙안 정도만 알았고, 고성에 몇 번 와봤으면서도 이곳에도 한옥 마을이 있다는 것은 조금 전 처음 알았다. 한옥 몇 채가 지어진 한적하고 약간은 인위적인 작은 마을을 상상하면서 갔는데, 고즈넉하기는 했지만 아직 거주하고 있는 집도 꽤 되는 본격적인 마을이었다.

고성 왕곡마을
고성 왕곡 마을

영화 '동주'의 촬영지인 곳도 있었다. 이곳이 북방식 한옥이어서 '윤동주' 시인의 생가인 북간도 용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송몽규' 열사를 연기했던 '박정민' 님도 처음 알게 된 것이 생각난다. 영화에서 윤동주 님의 고뇌가 느껴지는 '쉽게 쓰여진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라질 뻔했던 이 아름다운 작품들이 좋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알려지고, 나도 덕분에 이렇게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왕곡마을의 영화 '동주' 촬영지, 서울 청운동 윤동주 문학관

얼마 전에 서울에서 '인왕산 숲길'을 걸으며 윤동주 문학관도 다녀왔는데 또 이렇게 이어지니 조금 신기하다. 그곳의 벽에는 '새로운 길' 전문이 쓰여 있다. 의미는 다르지만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르는, 늘 옳고 새로운 길을 찾는 나에게 와닿아 남아 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윤동주 '새로운 길'


북평민속시장

동해로 이동하여, 이곳에 북평민속시장이라 하는 큰 전통 시장이 있는데 마침 오늘이 장이 열리는 날이라 하여 들러보았다. 조선 시대에 생긴 시장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오래되었고, 규모도 상당히 크다.

오랜 전통의, 북평 민속 시장
북평 민속 시장
메밀전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길가에 노점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길 따라 구경하며 다니다 보니 정말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느낌이 드는데, 특히 생선이 많고 묘목이나 씨앗을 파는 곳도 크게 있다. 

먹거리를 파는 곳 중 한 가게에서, 메밀묵을 포장 주문하고 메밀전은 시켜서 옆에 마련된 자리에서 먹었다. 4천 원이라 생각을 못했는데 메밀전이 2장이나 돼서 양이 꽤 많다. 메밀의 슴슴한 첫맛과 고소한 뒷맛은 언제나, 어느 음식이든 맛있다.

강원도에 왔으니까 찐 옥수수도 좀 사고, 구운 돼지감자는 처음 보는 거니까 한 묶음을 샀다. 시장 입구에서 작게 감자전만 만들어서 파는 분이 있어서 또 지나치지 못하고 포장을 했다. 이미 많이 사서 살까 말까 고민했었던 감자전은 정말 맛있었다. 역시 한 가지 음식만 파는 곳은 맛이 있고, 여행지에서만큼은 살까 말까 하는 건 사는 게 맞다. 이거 먹으러 다시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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