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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Aug 07. 2020

3. 후회하느니 일단 원하는 대로




 욕실 천장 합판으로 하면 다 썩을 텐데...
 화장실에 나무 선반이라니.
 수건걸이를 왜 이렇게 낮게 달아요?
 이건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얼른 집 팔고 떠나.





  그들은 일단 안 된다는 말부터 하고 봤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목공, 타일, 설비 업체 사장님들이 무작정 안 된다는 말부터 먼저 하는 이유는 단지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가능성을 타진하고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목공 사장님, 욕실 천장은 합판 위에 페인트로 마감하려고요. 합판 좀 덧대 주세요!
 타일 사장님, 벽타일은 엇갈리게 시공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설비 사장님, 수건걸이는 허리 높이로요! 거울 밑이랑 여기랑 저기에는 원목 선반을 달 거예요.




  일의 효율을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덧붙여지고 깎아내어 지며 완성되었을 인테리어 업계의 규격과 표준, 그리고 관행. 우리가 하려는 일의 많은 부분은 그것들을 거스르고 있었다. 일부러 난처하게 하려던 의도는 절대 아니었지만 우리의 참신한 요청에 그들이 곤란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나중에 후회하느니 일단 원하는 대로 밀어붙여보자 싶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더군다나 화장실은 부엌과 함께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공간 중 하나였다.



비포 앤 애프터






| 화장실에 나무가 웬 말 |

  특히나 화장실 천장을 합판으로 하려는 내 계획은 목공, 타일, 설비 모든 업체 사장님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화장실은 무조건 돔 천장이지 합판은 무슨 합판이야. 금방 곰팡이 쓸 거야. 해 놓고 보면 그냥 괜찮아요~ 그들은 이런저런 말들로 나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플라스틱인지 뭔지 모를 그 돔 천장은 꼴 보기도 싫었다. 그걸로 했다가는 변기에 앉아 똥을 눌 때마다 후회할 것 같았다. 돔 천장의 효용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내 눈에 예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우리집 화장실 천장은 합판이 되었다. 그 위에는 습기에 강해지라고 방수페인트 몇 겹을 발라 주었다. 방수페인트를 칠하기 위해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를 그릴 때 그랬듯 나도 목을 한껏 꺾어야 했다.






무수한 반대에 부딪혔던 참죽나무 선반





  원목 선반 역시 화장실에 나무가 웬 말이냐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지만 그러고도 참죽나무를 화장실에 맞게 재단해 와 오일스테인과 바니쉬로 마감해서 그럴듯한 선반으로 만들었다. 사장님들한테는 말 안 듣는 내가 눈엣가시였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믿는 구석 하나 없이 생떼를 부린 건 아니었다. 우리집 욕실에 자그마하게 나있는 창문이 바로 그 믿는 구석. 그 책받침 만한 구멍으로 빛과 바람이 드나들어 주기를, 축축한 화장실을 바삭하게 말려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 타일 집 사장님을 힘들게 하는 방법 |

  작은 타일보다 큼지막한 타일이 저렴하고 시공하기도 쉽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같은 면적이라도 큰 타일을 턱턱 붙여 나가면 손바닥 만한 타일을 하나하나 붙이는 것보다 훨씬 시간과 에너지가 덜 들 테니까. 하지만 보기에 미적으로 아름다운 건 오히려 손바닥 만한 작은 타일 쪽이었다. 그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공을 들이면 뭐든 그만큼의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니까.


  나라는 사람은 예쁜 것에 환장하는 사람이라서 당연히 작은 타일을 택했다. 내가 고른 타일은 사방이 10센티 정도 되고 베이지색을 지닌 정사각형 타일. 이 타일을 고를 때도 몇 날 며칠을 고민했는데, 글로 쓰고 보면 이토록 간단해지니 조금 허무해진다. 아무튼 시공하기 까다로운 작은 타일을 바둑판처럼 그냥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엇갈리게 붙여 주실 수 있겠냐고까지 여쭤 보았으니 나는 진짜 나쁜 애다. 못할 건 없다고 하셨지만 그 순간 사장님의 얼굴이 살짝 잿빛으로 변하는 걸 본 것 같기도 하다(제가 많이 죄송했어요).




좌. 엇갈리게 시공한 욕실 타일과 방수페인트 작업 도중의 합판 천장.            우. 욕실문 페인트 칠하기.






  우여곡절 끝에 화장실이 완성되던 날 나는 여기에 이불 깔고 자도 되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수건걸이의 높이와 휴지걸이의 방향, 고심해서 설치한 몇 개의 벽 행거까지 모든 것이 나와 연이의 생활방식을 닮아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가 관여하지 않은 부분을 찾는 것이 차라리 쉬웠다. 우리집 화장실을 맡아주신 사장님들은 어쩌다 우리 같은 애들을 만나서 그렇게 고생을 하셨는지. 말 안 듣는 반항아 역할을 하면서 나라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반항아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우리집 화장실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겠지만, 또 반대로 그들이 충고한 대로 계획을 바꿨다면 오히려 내 마음대로 못해본 것을 후회했을 거다.



 나의 바람대로 우리집 화장실의 책받침 만한 창문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어 주고 있다. 간신히 들어오는 빛과 바람이 습기를 잘 말려주어 화장실은 금세 뽀송뽀송 해지고, 수많은 우려가 무색하게 합판 천장과 참죽나무 선반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과 같다. 그러니 무엇이든 일단 해봐야 안다. 전문가의 말이라고 해서 백 퍼센트의 확률로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인테리어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말이 맞고 틀린다기보다는 그 집에 어떤 사람이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사는 사람의 취향, 생활방식, 생각 같은 것들. 심지어 물을 사방에 흩뿌리면서 과격하게 세수하는 사람인지, 물 한 방울 튀기지 않고 얌전히 세수하는 사람인지 조차도 결정적인 고려사항이 될 수 있다. 화장실에는 습기에 약한 나무가 있으면 안 된다고 해서 모두가 거기에 맞출 필요는 없다. 우리가 세수할 때 물을 많이 튀기지 않는 사람이면 그만인 것이다.
  






인스타그램 @dexy.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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