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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Oct 09. 2020

7.비포앤애프터(거실과 침실과 욕실)






  이제 와서 굳이 비포 앤 애프터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비포 앤 애프터만큼 드라마틱하게 인테리어의 전과 후를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껏 연재한 인테리어 글들에서 우리집을 고치기 전과 후 모습을 일부 공개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내 글에 생생함과 현장감을 조금이나마 부여하기 위해서였지, ‘짜잔! 우리집이 이렇게 달라졌어요!’를 외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시각적인 자극이나 셀프 인테리어 정보에 치중하기보다는 갓 혼인신고를 마친 두 사람이 난생처음 집을 사고 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해 보면서 들었던 온갖 생각과 잡념들, 거쳐야 했던 고난과 역경(?), 그 와중에 둘 사이에 싹튼 동지애 비슷한 것... 이런 것들을 나름의 글 형태로 쭉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런 이유로, 그동안 매거진을 연재하며 셀프 인테리어는 힘들고 욕 나오는 일이라는 소리만 늘어놓았지 단 한 번도 비포 앤 애프터 형식으로 우리집을 소개한 적이 없다. 몇 장의 사진을 글과 함께 올렸을 적에도 집 전체를 요목조목 꼼꼼히 보여준 게 아니라 대부분 집을 고치는 과정에 집중되어 있었을 뿐. 이제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웬만큼 다 해보았겠다, 우리집의 변화를 한꺼번에 모아서 비포 앤 애프터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았다. 앞으로 두 편에 걸쳐 작고 오래된 우리집의 별 것 없는 비포 앤 애프터를 선보여 보려고 한다!


 







  30년이 넘었지만 반듯하고 견고한 사각형의 집.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3층 빌라 건물의 3층에 위치한 우리집은 칠팔월 무렵이면 온실이 된다. 특별히 더 뜨거운 여름날에는 온실 정도가 아니라 땀 빼러 가는 사우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겨울은 또 어떻냐면, 집 안에서도 유니클로 플리스와 한 몸이 되어야만 할 정도로 서늘하다. 겨울만 되면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나에게 두꺼운 털양말은 필수. 보일러를 몇 시간이고 틀어 두어도 좀처럼 뜨끈해지지 않아 겨울만 되면 기름값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울 때마다 다음 집은 꼭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신축 건물로 구하자고 함께 다짐하면서도 결국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둘은 오래된 집을 이상하리만치 좋아하니까. 아마 또다시 죽지 않을 만큼 덥고, 죽지 않을 만큼 추운 오래된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될 것이다(올해 9월 경기도로 이사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30년이 넘은 아파트다, 다행히 예전 집보다는 훨씬 따뜻하다. 여름은 아직 지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덥고 추워도 우리는 이 집을 사랑했다. 뜨거운 8월에는 연이가 만들어준 새콤한 오이냉국에 얼음을 동동 띄워 먹으면 그만이었고,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사과, 자몽, 오렌지와 각종 향신료 위에 싸구려 레드 와인을 가득 부어 뜨거운 뱅쇼를 만들어 마시며 몸을 데웠다. 커다란 머그잔에 담아 후후 불며 한 모금씩 조심스럽게 마시면 집이 추워서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었다. 우리 손으로 직접 고치고 가꾸지 않았다면 이 집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었을까. 연이와 나는 낡은 집을 두고 투덜거리는 대신, 우리가 만들어 낸 15평짜리 작은 세계에서 우리만의 행복을 찾는 편을 택했다.













|거실|



  반듯반듯해서 마치 일본 가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던 방. 사실 이 방은 30년의 세월 동안 거실이 아니라 안방으로 쓰여왔을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집들은 대체로 안방이 가장 널찍한 크기로 만들어지니까. 하지만 안방이 꼭 안방의 용도로만 쓰이란 법은 없지 않은가. 나는 요리하는 곳과 식사하는 곳이 분리되어 있는 걸 좋아해서 여기에 식탁을 두고 다이닝룸으로 쓰기로 했다. 면적이 생각보다 넓어서 작은 책상 하나까지도 둘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에서 연이와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책도 읽고 이야기도 많이 해야지.




*거실에서 건드린 부분


하나. 미닫이문 두 짝은 떼어내고(업체) 문틀에는 페인트를 칠한다(셀프).

둘. 바닥 장판을 타일로 바꾼다(업체).

셋. 시커먼 천장 몰딩도 페인트로 칠해준다(셀프).

넷. 꼴 보기 싫은 십자가 형광등을 펜던트형 조명으로 바꾼다(셀프).




BEFORE

십자가 형광등은 교체대상 일순위.



AFTER

살면서 가구의 위치를 여러 번 바꿔보기도 했다.




  노란 불을 좋아해서 거실을 포함해 집의 모든 형광등은 떼어 버리고 마음에 드는 조명으로 바꾸었다. 조명은 그 하나로 공간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부분. 형광등 불빛이 천장에서부터 아래쪽으로 내리 꽂히면 집이 차갑고 정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나는 노란 불의 아늑한 느낌이 좋은데, 부모님들은 그게 싫은지 우리집에 놀러 와 보시고는 한결같이 ‘눈이 침침하다.’, ‘집은 밝게 하고 살아야지.’라고 한 마디씩 하셨다. 우리는 당연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지만.



  가구는 대부분 이케아에서 구매했는데 개중에는 결혼 전 나 혼자 살 때부터 사용하던 것들도 꽤 있다. 거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구는 나무로 된 식탁. 십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이케아 제품에 오일 스테인으로 직접 색을 입히고 바니쉬로 코팅하여 값비싼 식탁 못지않게 잘 쓰고 있다.








|침실|



  침실로 쓰기로 한 방은 뒷베란다와 바로 연결되는 방이었다. 특이한 점은 마치 대청마루처럼 방바닥과 베란다 바닥이 약 30cm 정도 단 차이가 났다는 것. 베란다로 넘어가려면 꽤 높은 턱도 넘어야 했다. 옛날 집의 특성인 것으로 추정된다. 벽 한 면이 통째로 창문으로 되어있는 것도 옛날 집의 특성인가. 이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은 바람이 아주 잘 통한다는 것. 나쁜 점은 겨울에 아주 춥고 공간 활용이 어렵다는 것. 하지만 샤시는 하나도 건드리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았다.





BEFORE

벽 한 면이 큰 창문으로 뻥 뚫린 침실. 바로 뒷베란다로 이어진다.



AFTER

베딩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전환이 된다.



  좁아서 잠자는 공간으로만 쓰자 했던 침실. 퀸사이즈 매트리스 하나로도 방이 거의 다 채워지다시피 해서 사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침대, 협탁, 화장대 이렇게 가구 세 개만 두고 생활했다. 침실에서 손을 댄 곳은 바닥(타일로 교체), 천장 몰딩(페인트칠), 조명(노란 불로 교체)뿐이다.



  침대 프레임을 놓으면 안 그래도 좁은 침실이 더 좁아 보일 것 같아서 매트리스 밑에 낮은 받침대만 놓고 사용했다. 집이 한 번 정돈되고 나면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사들이거나 하는 편이 아니라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보고 구조를 바꿔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방은 뾰족한 수가 없어서 주로 베딩으로 변화를 주었다. 베딩의 색감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가능해서 패브릭 제품들에 욕심이 많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지나치지 못하는 것 중 하나. 바로 베딩.








|욕실|



  욕실은 이 집이 30년도 더 된 집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타일은 누렇게 바랜 데다가 여기저기 깨져있기도 하고 대충 끼워 맞추어져 있었다. 타일이란 모름지기 바둑판처럼 딱딱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 아니었던가. 구석구석 찌든 물떼는 또 어떻고. 수도관이나 수전, 세면대와 변기 모두 다 너무 낡아서 전부 뜯어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 건 딱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반듯한 창문이 나 있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바닥 타일이 귀엽다는 것이었다. 바닥 타일은 남겨놓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지만 다른 부분은 전부 들어내면서 바닥 타일만 온전히 남겨두는 건 불가능한 일이어서 다 교체하기로 했다.



  전체 인테리어 예산의 적지 않은 부분을 욕실 리모델링에 투입했다. 애초에 내가 있고 싶은 기분이 들만한 집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으니 욕실에도 소홀할 수는 없었다. 욕조가 있어서 매일 저녁 뜨끈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워낙 좁아서 그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어떻게 하면 이 좁디좁은 네모 상자를 기분이 좋아지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BEFORE

이건 대체 왜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였던 욕실. 싹 다 뜯어냈다.




AFTER

계속 계속 있고 싶은 나의 작은 화장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욕실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욕실은 도저히 우리가 셀프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큰 공사는 대부분 업체를 섭외하여 진행했고, 어떤 종류의 타일을 시공할지, 변기와 세면대, 수전 등은 어떤 걸로 설치할지 등등 세부적인 결정만 우리가 했다. 욕실 안에 수납장은 따로 두지 않았으며, 그 대신 욕실 문 바로 옆에 별도의 수납장을 추가로 설치해 사용했다.




*업체 의뢰한 것과 직접 한 것


업체: 타일 시공, 천장 합판 시공 등 목공 작업, 수전 및 위생도기 설치, 원목 선반 및 각종 부속품 설치(수전 설치해 주신 곳에서 한꺼번에 해주심)

셀프: 천장 페인트 작업, 욕실 문 페인트 작업, 원목 선반 마감, 타일 셀렉, 위생도기 셀렉, 수전 구입, 각종 부속품 구입(수건걸이, 휴지걸이 등)









  모든 공간을 갈아엎어서 완전히 재탄생한 집도, 고급 자재가 들어간 세련된 집도 아니며, 인테리어에 서툰 집주인 두 명이 손 본 티가 여기저기 나는 어설픈 집. 저렴한 이케아 가구로 가득했지만 우리에게만은 완벽했던 집. 다음 편에서는 부엌과 드레스룸, 그리고 그 외 공간들을 소개한 후 에필로그와 함께 매거진 ‘작고 오래된 집에 살면 가난한 걸까’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인스타그램 @dexy.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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