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대자보
매일 적어도 두 번은 지나가는 길이 있다. 한 번은 달리기를 하러. 한 번은 나의 개 마농이와 나란히 산책을 하러. 몇십 년은 되었을 게 분명한 커다란 나무들이 그늘을 촘촘하게 드리워 주어 쨍쨍한 여름날에도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인지 크고 작은 강아지 친구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치는 곳이기도 했다. 어제 아침에도 달리기를 하러 나갔는데 그 길 위에 못 보던 게 보였다. 초록색 박스테이프로 사방에 테두리가 쳐져있어서 마치 액자처럼 보이는 흰색 종이였다. 멀리서 보아도 글자들이 가득했다. 똑같은 종이 대여섯 장이 5미터 정도 간격으로 길바닥 한가운데에 붙어있었는데 그중 가장 가까운 종이에 다가가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니 까맣고 진지한 궁서체로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이곳을 산책하시는 견주님들! 동행하는 애견이 변을 보면 꼭 치워 주시기 바라요.
다른 견들이 산책하는데 불편합니다.
제발 스스로 최소한의 양심을 지켜서 애견들 건강과 깨끗한 산책로를 유지합시다.
내 애견한테 부끄러운 견주가 되지 마세요. 비견인들한테 피해 주지 마세요.
적발되면 벌금이 나옵니다(아시죠?).
꼭!! 기본 수칙을 지켜 주세요.
인격이 아름다운 품격 있는 견주가 됩시다...
그중 하나는 실제로 누군가 모른 척하고 치우지 않았을 강아지똥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나무라는듯이. 아주 부드럽고도 똑 부러지게 맞는 말만 구구절절 써 둔 종이였다. 이 똥의 주인은 적잖이 얼굴이 달아오르겠다 싶었다. 요즘 들어 마농이와 산책을 할 때 왜인지 모르게 그 길 위에 치우지 않은 강아지똥이 많이 보여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던 참이었다.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린 똥을 보면 강아지를 더 멀리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사람의 잘못으로 강아지들이 미움을 사게 되는 게 못마땅했다.
오늘치 운동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 마농이를 데리고 다시 나왔다. 네임펜 한 자루도 잊지 않고 챙겼다. 대자보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까지 꼭 달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려인은 물론이고 비반려인을 위해, 그 둘의 공존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강아지들을 위해 책상 앞에 앉아 꾹꾹 눌러 담았을 그 진심에 꼭 공감의 표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반려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우리가 먼저 잘하자는 이야기를 종이에 한 자 한 자 옮기고, 복사하고, 그걸 또 젖지 않도록 코팅까지 하고, 박스테이프를 챙겨 나와 길 위에 몇 번이고 쭈그리고 앉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양심’이라는 단어 주변에 꽃을 그려 넣고 ‘꼭’이라는 글자를 구름 속에 띄울 줄 아는 그는 분명 따뜻하고 책임감 있는 보호자 이리라. 강아지똥을 그냥 내버려 두는 사람들을 속으로 욕하고 혀만 끌끌 찼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개를 키운다고 커밍아웃했을 때, 우리 어머니는 애를 키워야지 개를 키우냐고 했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결혼한 이래로 단 한 번도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한 압박을 주지 않으시다가 개를 키운다고 하니, 애는 언제 가질 거냐고 하셨다. 애는 언제 가질 거냐는 질문과 함께, 개는 좀 키우다가 어디 딴 데 줘버리라는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을 아주 캐주얼하게, 서슴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뱉으셨다. ‘우리집에 우산 남는 거 많은데 하나 줄게’ 정도의 가벼움이었다. 그들에게 강아지는 심심할 때 잠깐 가지고 노는 귀여운 놀잇감 정도였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마농이가 아기를 낳는 것 같은 큰 변화가 있다고 해서 감히 어디로 보내고 말고의 문제를 거론할 수 있는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새로운 가족으로 맞이한 이상 힘에 부치든 풍요롭든 죽을 때까지 모든 인생사를 함께 겪어야 하는 반려(伴侶, 짝이 되는 동무)인 것이다. 함께 지낸 지 사 개월 째. 그녀의 털을 빗질해 주는 때가 하루 중 가장 치유되는 시간이며, 요즘은 하루 종일 빗질만 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에 이르렀다. 잘 손질된 부드러운 털 사이로 다섯 손가락을 모두 펴서 조심스럽게 집어넣으면 뜨거운 체온이 은근하게 느껴진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다가 체온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어서 마농이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면 살짝 비릿한 털 냄새가 나는데 그마저 좋다.
우리에게는 이토록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강아지를 사랑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누군가는 무서워할 수도 있겠다. 마농이는 순한 강아지이지만 그래도 불편한 사람이 있을 수 있기에 줄을 짧게 잡은 채 산책을 하고, 좁은 길에서는 반대편에서 사람이 오면 옆으로 비켜서서 기다렸다 간다. 무서워서 주춤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잠깐 자세를 낮춰 17.5킬로그램 마농이를 단단히 붙들고 길을 내어준다. 그럼에도 마농이와 산책을 하다 보면 무방비 상태에서 안 좋은 소리가 귀에 꽂히곤 한다. ‘개 좀 저리 치워요’라던가 그런 말들. 그럴 때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분하다. 마농이가 알아 들었을 리는 만무하지만 내 가족이 그런 소리를 듣는데 무력하게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이해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서로 존중은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존중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항상 함께 드는 생각은, 존중받으려면 (나 포함) 개 키우는 사람들이 먼저 잘하면 좋을 텐데...이다. 나만 잘해서는 소용없는 일이라 무례한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큰소리치지 못한다. 속으로는 분해 죽겠지만 꾹 참고 지나간다. 다른 어딘가에서 매너 없는 보호자를 만났던 것이리라고 추측하면서. ‘얘네도 우리 가족이니까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큰소리 낼 수 있게 다 같이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다 함께 성숙해져서 아름답고 발랄한 개월드가 되었으면. 개 있는 사람도, 개 없는 사람도, 개도 모두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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