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
마농이가 우리집에 오던 날 밤에는 밤새도록 하늘이 번쩍거렸다. 비도 쉴 새 없이 주룩주룩 내렸다. 지금은 꼭 우리가 시야에 들어와 있어야 마음 놓고 쉬는 마농이지만 그때는 아직 우리가 마농이에게 아무것도 아니던 때라서, 마농이는 우리로부터 철저하게 멀어지려고 했다. 혹시나 우리한테 오고 싶어 할까 봐 침실 문을 열어 두었는데도 거실에서 잤다. 유난히 하늘이 시끄러운 날이라 잠을 잘 못 잤는데 마농이가 거칠게 숨을 내뱉는 소리에 그나마 자고 있던 얕은 잠마저 깨버렸다. 마농이는 침실 문턱 바로 앞에 불안한 듯 앉아서 안절부절못한 채 가쁜 숨을 내뱉고 있었다. 혀는 길게 나와있었고 호흡의 간격이 아주 짧았다. 헥헥헥헥. 방문을 넘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지 방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문 앞에 앉아 우리가 있는 방 안을 바라보기만 했다. 무섭긴 한데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들 방에 들어가자니 그건 또 썩 내키지 않고... 번개가 칠 때마다 어두웠던 방 안이 몇 초간 밝아지며 갈등하는 개의 얼굴이 보였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내 얼굴과 문 밖에 있는 마농이의 얼굴은 3미터 씩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마농이가 숨을 내쉴 때마다 지독한 입냄새가 풍겨왔다.
쿠르르르르릉!
번개가 한 번 더 치고 몇 초 후 천둥소리가 잇따랐다. 돌산이 깨져서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마농이는 천둥소리가 너무 무서운 나머지, 문지방을 넘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침대 위까지 올라와 내 머리카락을 밟고 다니며 낑낑거렸다. 얘가 그래도 나한테 조금은 의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사실은 좀 귀찮기도 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는 일은 정말 달갑지 않은 일이니까. 마농이의 얼굴은 거의 내 정수리 바로 위까지 와 있었고 개의 입냄새는 더 가까이서, 노골적으로 났다. 그러나 다행히 어둠 속에서 내 볼을 스치는 털의 감촉과 처음 겪어보는 동물의 기척이 싫지만은 않았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긴 첫날밤이 되겠구나.
<<이튿날 아침>>
밤을 새운 것처럼 몽롱하고 눈이 건조했다. 천둥번개와 마농이의 침대 난입으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한 탓이었다. 마농이는 다시 거실에 누워 있었다. 어제부터 동거하게 된 개가 신경 쓰여 새벽 6시가 되기도 전에 눈을 뜬 나는, 제일 먼저 집구석구석을 확인했다. 어제 오후에 집에 온 이후로 마농이가 배변 활동을 한 번도 안 했기 때문에 간밤에 실수를 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거실의 가장 구석진 곳에 흥건하게 노란 물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흰색 타일 바닥이라 오줌 색이 더 잘 보였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필사적으로 참다가 결국 찾은 화장실이 거긴 듯했다. ‘마농이 쉬했어. 오래 참았나 봐.’ 연이에게 태연하게 말해주고는 마른 걸레로 한 번 닦은 후 젖은 걸레로 한 번 더 닦았다. 그러고 나서 그곳에는 배변패드를 깔아 두었다.
저울로 무게를 재서 아침밥을 적정량 챙겨주고는 연이와 간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피식 나왔다고, 오라고 할 때는 그렇게 버티다가 어떻게 천둥소리가 무서워 침대 위로 올라올 수 있냐고, 즐거워하며 말했다. 근데 걔 입냄새가 너무 심하더라면서 다 들리게 뒷담도 깠다. (지금은 안 나요. 방법을 찾았습니다.)
연이는 우리가 얘를 데려온 게 잘못한 일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모든 입양 절차를 끝낸 후 우리 차에 태우던 순간부터 침을 뚝뚝 흘리고 덜덜 떨며 창밖만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우리가 괜히 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겨우 보호소 환경에 익숙해졌을 텐데 또다시 새로운 곳과 새로운 사람에게 적응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처음에는 힘들어도 우리 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남은 생애를 보내는 게 훨씬 나을 거야- 라고 연이에게 말해주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나 역시 마음이 복잡했다. 너무 섣부른 선택이었을까. 이젠 얘랑 십 년 넘게 같이 살아야 되는데 잘할 수 있을까. 똥은 왜 안 싸냐.
<<이튿날 오후>>
마음이 복잡한 와중에 나의 신경은 온통 ‘똥’에 가 있었다. 마농이가 24시간 넘게 똥을 못 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야 쌀 것 같은데 이 겁쟁이 강아지가 현관문을 나서는 것조차 무서워하는 것이 아닌가 . 마농이는 아직도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으며 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걸 꺼려했고 나와는 여전히 서먹서먹했다. 일단 집 밖으로 함께 나가긴 해야겠는데 방법이 묘연했다. 현관문을 열어 놓아 보아도 돌부처처럼 방바닥에 배를 붙인 채 도통 움직이지를 않았다.
유튜브에 ‘강아지 집 밖으로 나가게 하는 법’, ‘산책 무서워하는 강아지’, ‘강아지 산책 훈련’ 등등의 타이틀을 검색해서 나오는 영상이란 영상은 죄다 찾아본 후, 나름의 전략을 짰다. 단번에 멀리 가기보다는 일단 현관문 밖으로 한 발이라도 디딘 후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늘려 가보기로 한 것이다.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고 간식으로 유도하며 나갔다 들어왔다 반복을 시작했다. 현관문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가... 처음에는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더니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를 잘도 쫓아다녔다. 7월 초라 금방 땀이 났다. 집 안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익숙해질 무렵, 드디어 현관문 바깥으로 한 발자국 나가보기로 했다. 마농이는 멈춰 서서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앞발 두 개를 조심스럽게 문 밖으로 내밀었다! 폭풍 칭찬을 해 주며 거리를 조금씩 늘려갔다.
어찌어찌 3층과 2층 사이까지 내려왔을 때였다(우리집은 3층). 마농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뭔가를 찾는 듯하더니 갑자기 엉덩이를 한껏 낮추고 오줌을 쌌다. 두 번째 쉬였다. 당황했지만 멀찍이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오줌의 양이 많아서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발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걸레와 물티슈를 총동원해서 겨우 뒷수습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마농이가 여전히 열려있던 문으로 다시 나갔다. 이대로 도망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급하게 쫓아갔더니 마농이는 다행스럽게도(?) 아까 그 자리에서 똥을 싸고 있었다. 쉬를 할 때랑은 미묘하게 다르고 더 불편해 보이는 자세였다. 마농이의 똥은 산더미만 했다.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아무도 나타나지 않게 해 주세요. 비닐봉지로 똥을 치우고 물티슈로 바닥을 박박 닦은 후 급한 대로 가지고 온 패브릭 퍼퓸을 과하다 싶을 만큼 뿌려댔다.
손에 한 가득 들어오는 물컹한 똥을 비닐봉지 위로 잡아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개들은 살아있으니까 당연히 똥을 싸는데, 그제야 그 당연한 사실을 제대로 감각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진짜로 먹고 자고 싸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돌보아야 하는구나. 패브릭 퍼퓸을 마구 분사하며 생각했다. 개도 사람이랑 같아서 낯선 곳에 오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고 낯을 가리기도 하고 똥오줌을 참기도 하는구나. 지나가는 강아지를 속 편히 마냥 예뻐하기만 하면서 ‘나는 강아지를 좋아해’라고 말하고 다니던 시절이 부끄러웠다. 나도 어쩌면 그냥 귀여운 인형 보듯 강아지를 보았던 것 같아서.
새 식구를 맞은 기쁨보다는 걱정과 초조함으로 가득한 첫날과 둘째 날이었다. 앞으로의 반려 생활이 행복하기만 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었다. 다만, 마농이가 나와 연이의 인생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ps. 마농이는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똥 실수를 하지 않고 실외 배변을 고수하고 있다.
그건 마농이가 반드시 지키는 몇 가지 원칙 중에 하나다. 제일 선호하는 화장실은 푹신한 잔디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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