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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Dec 31. 2020

[카모메식당] 당신만의 박자에 맞추어 살고 있나요?

자신만의 리듬으로 춤추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feat. 넷플릭스)

<아래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카모메식당. 대다수가 이 영화를 달팽이 모양의 먹음직스러운 시나몬 롤이 등장하는 음식 영화 또는 당장 북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끊도록 부추기는 영화라고 기억할 테지만 나는 이 영화를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만의 삶의 리듬을 씩씩하게 지켜나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 리듬을 지켜야 할 ‘아주 적은 이유’를 저마다의 고유한 방법으로 꾸준히 단련해 나가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에 대해 쓴 자전적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가게에 손님이 있는 날에도, 없는 날에도, 언제나 물속을 유영하며 마음을 단련하는 사치에.


가까스로 지켜온 아침 6시 기상을 한 달 만에 포기해 버린 나의 심장을, 그는 이 몇 마디로 쿡쿡 찌른다. 호기롭게 시작한 일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멋져 보여 나도 그렇게 되었으면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6시에 눈을 떠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고, 반대로 그 시간에 일어나는 일을 멈춰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눈꺼풀은 무거웠고, 이불속은 너무나 포근했으며, 몸은 흐물거렸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면 스스로에 대해 뿌듯한 마음이 드는 일을 몇 가지나 더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6시 기상을 나의 리듬으로 박제하는 일을 이내 포기해버린 것이다. 나는 하루키가 말한 그 ‘아주 적은 이유’를 단련시키지 못하고 말았다.





‘카모메식당’은 (약해빠진 나와는 다르게) 주인공 사치에가 조용하지만 고집스럽게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지만 자기만의 춤을 추고 결국은 그 춤이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증명해내는 이야기.



사치에의 씩씩하고 다정한 하루

잘 먹어 통통하게 살찐 갈매기가 좋아 가게 이름을 카모메(かもめ, 일본어로 갈매기를 뜻함)로 짓고, 모든 이들은 먹어야 산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사치에. 그녀가 핀란드 헬싱키에서 자그마한 가게를 꾸려나가는 이유는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다. 누군가 무언가를 배부르게 먹는 풍경에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 그녀는 언젠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매일 아침 손님 하나 없는 가게 문을 열고, 무지개떡 빛깔의 장바구니에 장을 보고, 차와 함께 가벼운 저녁 식사를 하고, 아치 모양의 기둥이 아름다운 수영장에서 헤엄을 친다. 헤엄을 치지 않는 날에는 거실에 따뜻한 조도의 조명을 켜 두고 합기도의 기본기인 무릎걸음을 걷는다.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되어 밤마다 이걸 안 하면 이상해요.

무릎걸음은 일어선 것도, 그렇다고 앉은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로 바닥을 쓸듯이 걷는 우스꽝스러운 움직임인데, 누가 보면 비웃고 말 이 몸짓을 사치에는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매일매일 한다. 이것보다 중요한 건 세상에 없다는 듯이. 무릎걸음은 그녀가 하루하루를 보내는 마음가짐이자, 가게를 대하는 태도와도 비슷하다. 안 하면 그만인 무릎걸음을 공들여 걷게 하는 이유, 안 하면 그만인 텅 빈 가게로의 출근을 계속하게 하는 이유. 하루키가 말한 ‘아주 적은 이유’를 소중하게 단련하는 그녀만의 방법인 것이다.



사치에의 동네 식당 운영법

식당의 주메뉴가 일본식 주먹밥인 오니기리라고 말하는 사치에의 얼굴은 자신감에 차 있지만 그 얘길 듣는 미도리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헬싱키에서 오니기리 장사라니, 말도 안 돼.’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것만 같다. 가게 일을 잠시 도와주고 있는 미도리는 카모메식당이 잘 되었으면 하는 진심 어린 마음에, 메뉴판에 뚱뚱한 갈매기 그림을 그려주기도, 핀란드 사람들이 좋아하는 청어나 가재 같은 재료로 퓨전식 오니기리를 시도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헬싱키 안내서에 광고를 내보는 게 어떻겠냐는 미도리의 조심스러운 제안은 가게 분위기와 맞지 않다며 거절하는 사치에.



지나다가 들어와 가볍게 허기를 채우는 동네 식당.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가게 운영에 있어 확고한 철학과 가치관을 지닌 사치에지만, 그럼에도 미도리의 존재는 사치에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 ‘시나몬 롤’이라는 터닝 포인트를 가지고 오는 계기가 된다. 사치에와 미도리가 시나몬롤을 굽자 매일 지나치기만 하던 할머니 셋이 가게 밖까지 새어나가는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는 가게로 들어온다. 매일 와서 공짜 커피를 마시고 가는 일본 애니 덕후 토미를 빼고는 진정한 첫 손님이 생긴 셈이다.

첫 손님이 생긴 감격스러운 그날에도 사치에는 어김없이 수영장에 채워진 물의 규칙적인 찰랑거림에 몸을 맡긴다. 그녀는 그저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을 해 나가며 차곡차곡 하루를 쌓아나갈 뿐이다.



사치에와 손님들이 함께 추는 근사한 춤

첫 손님으로 커피 평생 무료 혜택을 선물 받아 가게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토미, 나른한 오후에 티타임을 즐기러 오는 동네 할머니 셋, 캐리어가 분실되어 갈 곳이 없어 식당을 찾았다가 단골이 되어버린 일본인 아줌마, 말도 없이 집 나간 남편 때문에 속이 문드러지는 핀란드인 아줌마. 각자의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이 식당 문을 열고 닫으며 영화는 비로소 리드미컬해진다.

나는 카모메식당이 시나몬 롤로 대박이 나 사람들이 가게 밖까지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질 줄 알았다. 영화니까 당연히 그러겠거니 속으로 거의 확신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다만 이따금씩 가게의 테이블이 꽉 차기도 할 뿐이었다. 카모메식당은 사치에가 꿈꾸던 대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기웃거리다 들어와 소박한 오니기리와 일본 가정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시나몬 롤과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고 가는 동네 식당이 된다. 핀란드 사람들이 거들떠보기나 할까 싶었던 오니기리는 테이블마다 한 접시씩 꼭 눈에 띈다. 사치에의 작지만 단단한 고집이 빛을 발하는 이 순간에, 나는 박막례 할머니가 그녀의 유튜브 채널에서 했던 말을 떠올린다.

니 장단에 춤추제? 니 박자에 맞추고 자픈 사람들이 너한테 막 이렇게 와.
야 나쁜 것도 소리 없이 오지만은 좋은 것은 더 소리 없이 올 수 있어.
남의 장단에 맞추지 말라고.

그녀만의 장단으로 매일같이 가게 문을 열고, 헤엄을 치고, 무릎걸음을 걸었더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매실 장아찌가 들어간 오니기리를 먹기 시작했다. 느리고 고요하지만 끊임없는 춤에 이끌려 그녀와 함께 춤추고 싶은 사람들이 그녀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런 이들에게 매혹 당해 버리고야 만다. 누가 뭐라든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자기가 믿는 바를 옳은 일로 만들어 가는 그들의 초연함,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그저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단순함, 옳다고 믿는 일들을 해내느라 한껏 단조롭고 지루해지는 그들의 하루하루를 나는 동경한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을 분투한다. 아름다워 보이는 다른 이들의 리듬을 흘깃거리느라 방향을 잃었다가도 다시 내 리듬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한다. 물론 그 과정 속에는 의심과 외로움과 속절없는 기다림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리듬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저 매일매일 차를 내리고, 바깥을 걷고, 일기장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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