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소통하는 우리, 고흐 곁에 해바라기
얼마 전 친구한테 받은 AI 스피커로 대화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로봇 같은 이놈에게 재미있는 이야기 해달라고 하면, “붉은 길 위에 동전은 뭘까요?” 라며 나에게 묻는다.
뭘까?
한 참 고민 중인 가운데, 정답은 ‘홍길동전’ 이란다.
허허허
별거 아닌데 이래저래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AI기기를 모르는 사람이 이 광경을 보면 나를 돌 아이로 알 것이다. 아마 머리에 해바라기 하나 꽂고 다니면 더 쉽게 이해되겠지?
<해바라기>로 연상되는 여러 가지 단어 가운데 ‘바보’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여일 역으로 <해바라기>를 머리에 꽂고 등장한 강혜정, 그리고 ‘컬투 정찬우’가 웃찾사(SBS) ‘그때그때 달라요’ 코너에서 미친소로 열연했던 게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해바라기>하면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아닐까?
반 고흐는 살아생전 총 11점의 <해바라기>를 그렸다. 그중 4점 만을 본인이 소유했고, 4점 가운데 2점만 완성작으로 인정했다. <해바라기> 작품에 나름의 엄격한 기준을 세운 것과 함께 강한 애착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다른 여러 꽃을 두고 그는 유독 <해바라기>에 집착했을까?
반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가 1888년에 이동한 프랑스 파리 남부 아를(Arles)의 여름은 해바라기가 온통 뒤덮여 있기에 쉽게 대상을 그릴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아를 지방을 간 이유로 동료 화가인 폴 고갱과 함께 작업하는 것에 기대가 컸으며. 그곳에서 신상이라 불리는 ‘크롬 옐로’를 처음 사용하게 됐다.
당시 고흐를 비롯한 인상주의자 화가들은 노란색이 없으면 균형 잡힌 구성을 이끌어내기 어렵거나, 보색의 극적인 대비를 만들어낼 수가 없다고 믿었다. 물론 빨간색과 파란색은 염료의 발달로 얼마든지 사용 가능했지만, 노란색은 예전부터 사용됐던 색이 아니었기에 고흐를 비롯해 다른 화가들도 엄청 많이 사용했다.
<해바라기>는 단순 고흐를 위한 작품은 아니다. 동생 테오와 소통을 위한 매개체이기도 했다. 동생 테오가 고흐에게 쓴 편지 내용을 보면 “노란 꽃병에 열두 송이 해바라기, 흰색 바탕 위에 가장 멋진 그림이 될 것이야" 라며 해바라기가 지닌 색의 힘에 극찬하고, 형의 작품 세계에 용기를 북돋아 준다. 고흐 또한 <해바라기>를 작품 이상의 것으로 여기며, <해바라기> 작품 속 붓질에는 늘 힘이 넘쳐났다. 아마 <해바라기>는 고흐의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그려진 작품이면서 그의 뜨거운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일 것이다.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 이야기 그리고 <해바라기> 작품을 보면서 노란색이 달리 보였다. 그동안 노란색은 촌스러운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검정과 함께 주변을 환기시키는 역할로 그 힘은 미미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볼수록 노란색의 다채로움과 향연은 강렬하게 다가왔다. 특히 따라 그리면서 그 느낌이 제대로 몸에 와 닿았다. 거친 붓터치와 노란색의 강렬함, 순수하고 미약할 것만 같았던 노란색의 이미지가 하나의 작품을 통해 새롭게 다가왔다.
어쩌면, 사람 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
겉으로 볼 때 나약하고 존재감이 미약한 대상에게 별 관심이 없다가, 그 대상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 갈수록 숨겨진 진면모를 조금 더 알게 되고, 함께 처한 환경이나 공유한 이야기가 다양할수록 상호 관계 스펙트럼도 다양하게 빛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