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가까이 남미 여행을 마쳤다. 가장 원초적 풍경을 지닌 남미. 특히 아름다운 파타고니아 빙하와 이과수 폭포!
동행한 둘째는 대자연의 그 아름다움 앞에서 감탄의 눈물을 흘렸다.
파타고니아 모레노빙하
세 명이 여행을 시작했으나 누구도 책임지고 여행 계획 세운 사람이 없었다. 솔직히 남미 여행계획 세우기가 너무 어려워 남미 패키지여행을 참고로 하자는 정도가 계획이라면 계획인 '닥치는 대로'가 콘셉트, '우연이 필연'인 자유 여행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자유여행이니 한국의 한진관광 패키지여행이나 '인도로 가는 길', '오지투어' 반자유배낭여행들보다는 한 곳에서 1,2일씩 더 머물며 여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자원 특히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니(둘째 회사 휴가가 2주 남짓, 한겨울에 단독주택을 비우는 것에 대한 동파문제등 기본적인 걱정)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자는 것이 셋의 공통분모였다. 그런 수준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이번 남미여행 코스는 내가 가고 싶은 파타고니아부터 시작하지 못하고 이번 여행의 최대공헌자 둘째의 의견에 따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작했다. 대략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1주일, 파타고니아 1주일, 브라질 1주일 이렇게 잡았다. 부에노스에서 1주일 가까이 도시라이프를 즐기다 보니(?) 근육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라 나는 조바심이 났다.
참고로 아르헨티나 소고기는 기대보다 실망이었다. 아르헨티나 소고기와 그에 곁들인 와인, 출국이 하루 앞당겨진 데다가 나는 그 환상만 믿고 음식준비를 거의 안 해갔다. 막상 와서 10여 차례 레스토랑 스테이크에 도전해 봤으나 '소고기란 이런 맛이야'라고 새 역사를 써야 할 정도였다. 꽃등심 입맛에 길들여진 우리 가족은 10여 차례 다 실망한 것이다. 그나마 실온숙성스테이크가 맛이 가장 나은 편이었다. 물론 가격은 환상이었다. 마켓에서 소고기 1킬로 그램에 5천 원, 고급 레스토랑에서
브에노스 아이레스 시내
말벡 와인은 대략 1만 5천 원 정도, 보통 레스토랑에서 와인 1병에 5000~7000원, 청담동에서 20~30만 원 정도 하는 실온 숙성스테이크는 550그램에 5만 원 정도, 내가 좋아하는 로컬 IPA맥주는 3000원 정도로 가격에 있어서는 환상적이었다. 로컬식당은 또 그 나름대로 맛이나 분위기나 매력적이라 이런 맛에 자유 여행한다 싶었다.
브라질, 이과수폭포근처 로컬 식당
어차피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니 다 내 뜻대로 하긴 어려웠다. 가족이지만 서로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 호캉스를 좋아하는 둘째와 하아킹을 좋아하는 나, 어딜 가나 음식을 남기더라도 푸짐히 많이 시키자는 둘째와 지구를 생각해서라도 적당히 먹자는 내가 여행을 함께 하려니 의견차가 제법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가족끼리 웃으며 설전을 벌일 정도로 도가 트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벼르며 타령을 하던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 출발점이라는 바릴로체 역시 가장 규격화된 관광지로 온 세계에서 모인 젊은이들이 난장을 이루고 있었다. 바릴로체에서 국립공원 빅토리아섬 가기 전에 시간에 쫓겨 걸은 2시간 트레킹 코스가 기억에 남을 정도이다.
바람의 파타고니아를 가장 기대했으나 4박 5일 산장예약을 못했지만 산장을 예약했다 해도 체력에 자신은 없었다. 엘칼라파테에 도착하고 토레 델 파이네에서 1시간여, 피츠로이에서 1시간여 걸은 것이 전부이다 보니 본격 트레킹이 빠진 파타고니아는 나 스스로 부끄러울 정도 '앙꼬 없는 찐빵' 같았다. 동네 뒷산-한양도성길만큼도 못 걸었으니 말이다. 애초 생각대로 엘찰텐에서 1박 하며 피츠로이를 올랐어야 했는데 아쉽다. 난생처음 린다 비스타라는 한국민박집에 예약을 하고 실제는 에코비스타라는 자매집에 묵었는데 그 댁에 로컬현지 예약을 부탁하고 경로확인을 안 한 것이 실책이었다. 가족이라고 너무 쉬운 코스를 예약해 준 것이다. 토레스델파이네에서 버스에 내려 (이날은 우연히 한국관광객들과 합류하게 되었는데 )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구름에 싸인 토레스델파이네 봉우리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모습을 황당하고 신기한 듯 바라보던 그 나라 인부들의 표정이 기억난다.
바람부는 파타고니아,황량한 벌판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예약을 시도해 봤으나 여행 날짜가 안 맞아 아쉽게 포기한 남극과 브라질 아마존. 처음 남미행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싱가포르 파파할머니가 부에노스아이레스도 패스하고 남극으로 간다고 했다. 그땐 몰랐는데 파타고니아 모레노 빙하를 보고 본격적으로 남극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남국여행에 대해 크루즈여행사 문의해 봤으나 둘째 휴가날과 맞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존 역시 리우데자네이루 도심투어에서 잠깐 만난 미국에서 온 중국인 부부 두 쌍, 알고 보니 같은 쉐라톤호텔에 묵는 사람들이었다. 호텔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자세히 들어보니 그들은 아마존 여행을 하기 위해 리우에 왔다고 했다. 계속 아마존에 매력 있어하던 우리도 마음이 당겨 여행사에 연락해 보니 만석이라고 해서 다시 포기. 아쉽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 여행을 무사히 잘 마쳐서 감사하고 고맙다.
리우데자네이로 시내 , 치안이 안좋다고 들었는데 시내쪽은 괜칞았다
여행 중에 만난 한국 패키지여행분이나 반자유배낭 하는 분들이 그렇게나 우리 가족을 부러워했는데 이제 이유를 알 것 같다. 패키지건 반 배낭여행이건 바쁘게 다니는 것, 규격화된 여행이 힘겨웠던 것이다. 여유와 자유! 때론 멍 때리며 쉬기도 하고 입에 안 맞는 로컬 음식도 먹어보고 때론 맛있는 음식도 내키는 대로 먹어보는 여유와 자유.
남미는 그 대륙 안에서도 십여 차례 비행기를 타야 한다 페루,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다시 칠레, 다시 아르헨티나, 브라질,... 이런 식으로 여행지간 이동에 대략 1200~1300km씩 이동해야 하니 비행기, 때로는 밤새 버스등 이동에 너무 많은 시간과 준비가 필요하다. 여행을 끝나고 생각하니 우리처럼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은 한 곳에 반자유여행보다 1,2일이 아니라 2,3일씩 더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늘 빠져나오고 나면 늘 미련이 남는다. 특히 치안이 위험하다는 브라질, 브라질 이과수에서는 1박 늘려 2박 해서 그런대로 여유 있어 좋았는데 리우데자네이루 1박만 한 것이 살짝 아쉽다. 리우에 비예보가 계속되는 데다가 브라질 사람들도 놀랄 정도로 비가 거세게 왔다. 나는 지난봄 산티아고를 45일간 걸어서 날씨 문제로는 거의 자유로웠으나 가족들은 그렇지 못했다. 한두 군데는 표를 다 예매해 놨으나 포기하자는 가족들 결정에 나도 결국 포기하고 짐을 쌌다. 특히나 귀국에 필요한 비행기표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브라질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고집부렸으니 그만하면 나도 이번 여행에 진심을 다한 셈이었다. 둘째가 다시 태어난다면 이과수폭포 숲 속에 올빼미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남미 갈 때 33시간 비행, 기내식 6번 먹으며 비행기 타고 올 때
'이번에 남미 가면 더 이상 먼 곳은 안 간다'라는 게 내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다시 와야 할 것 같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