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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신 Sep 24. 2020

영원한 서울시장, 박원순시장님 부디 잘 가시게 !

-동갑 박원순 서울시장님을 추억함


사람이 떠난 것이 아니라 희망이 사라진것같다.
10년전 박시장을 정치권으로 부른게 애초에 잘못이었을까?
나는 이 상황을 받아 들일 수 없는데 영정속의 그는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박원순서울시장님, 조희연서울교육감님,
그리고 나
셋다 동갑인데 박시장님은  "본인이 오빠뻘" 이라며 "시골살아 호적신고가 늦어 56년생이 됐다"며 사람좋은  웃음을 웃곤했다.


2010년 제8대 서울시의회는 서울교육청 무상급식건으로 그당시 여권의 유력 대선후보였던 오세훈시장을 낙마시키고
그를 정치권의 등장시켰다.
나는 그를 등장시킨 서울시 의회의 일원이었다.
2011년 박원순서울시장 시대를 연 일이 "내 인생에서 잘한 일 10가지중 하나였다"고 늘 자부심을 가졌었다.
그런데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지난 10년 가까운세월 , 박시장의 서울시정을 아주 가까이 때론 거리를 두고 보고 겪으면서 나는 박시장이야말로 다시는 없을 최고의 서울시장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는 약자와 서민을 시정의 중심에 세우고,  서울시장으로서 나를 비롯한 백여명 시의원들의  크고작은 시정질문과 제안에 귀를 기울였다.




박시장님 실종날 저녁,  나는 뉴스를 듣자마자  "리모델링하느라 비어있는 삼청각주변을 수색해봐줄것"을 요청했다.
박시장의 한양도성에대한 열정, 삼청각에 대한 고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8대의회 시절, 박시장은 시의원들의 제안과 열정에 힘입어 한양도성길을 재건했다. 그 과정에서 박시장의 한양도성 대한  애정과 성실성은  한양도성이 지나는  본인거주 서울시장 혜화동 공관을 비워 공적건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후 박시장은  은평구 미분양아파트, 백인제 가옥, 가회동 전셋집으로 떠돌며 결국 무주택자로 남았다.



최근 집값오름세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나는 "서울 집값은 박시장이 다 올려놨다"고 말해왔다.
동네마다 공원, 공연장을 만들어 시민의 문화와 복지, 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니 주거환경이 좋아지고 그러다보니 한편으로 약세이던 집값이 오르는건 당연했다.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던  서민과 사회적 약자가 많이 사는 서울변두리 일수록 더많이  관심을가졌다.
지역특화사업등등에 대한 본인과 서울시의원들, 자치구 제안에 경청하고 협업하며 아낌없이 예산을 지원했다.
서울시정철학인 참여와 자치를 바탕으로 그가 새롭게 제안한 공유경제, 마을사업,  부모커뮤니티, 평생교육과 서울교육청과의 각종 교육협력사업, 시니어들에대한 50+ 사업, 민주주의 위원회등등 서울시민을 서울시 행정의 직접 참여자,  민주적 주체로 성장시키며 갈등조정등의 탁월한 행정가로서   새로운 역사를 써왔다.
그런 철학과 실천을 가진 사울시장은 전무후무할것이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들도 성장하고 25개 서울시  자치구들도 성장했다고 감히 말할수있다.




박시장은 목민관클럽등을 통해  워낙 준비된 시장인데다가 학습력도 뛰어나고, 관점이 가장 좋았던 대선후보였다.
10여년전 북유럽교육을 돌아보러 갔을때  본인은 술도 거의 안마시면서 저녁식사후 뒷풀이를 본인방에서 펼쳐줬고 다음날 아침이면 그전날 배운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노트북을 펼쳐보이곤했다.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아 우프살라대학들 방문한 곳곳에서 수많은 사진을 찍어 유형별로 분류해놓았
그는 가장 학습력이 뛰어나고 성실하고 스마트한 방문단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 사람이 장점만 있으랴!
인간에게는 다양한 결이 있고 내가 박시장의 모든 면을 아는 것도 아니다. 그의 업적과 죽음과 관련 한 의혹,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인간적 약점 그 어느것하나 그가 떠난후 두달이 넘도록 제대로 밝혀진것은 없다. 2차 가해란 이름으로 모두 유구무언중이다.


다만 시민운동출신에게 '정치란 험지,' 정치인 박원순은 많이 부족했지만  시민운동가이자 소셜디자이너로서 그 이념적 순수함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며 노력했던 점만은 분명했다.

그는 국민에 대한 애정과 사회에 대한 비젼을 바탕으로   정치판을 뚫고 나가며 고군분투했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것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이미 훌륭한 서울시장인데
그깟 대선 지지율이 뭐라고 지지율을 높이라며 조롱하고, 너무 닥달한게 아니었을까?
그런 후회도 밀려들고....서울시장으로 갈등도 컸을텐데 지지율문제로 얼마나 더 큰 스트레스속에 하루하루를 지냈을것인가?
초인적으로 살아나갔을 그의 나날이 영화처럼 그려진다.

지난 6월30일 교육토론회로 만났을때 "교육한국"으로 새역사를 쓰겠다며 교육대통령을  다짐했던 박원순시장님.
그날 그 사진이 마지막이 될줄 누가 알었겠는가?

박시장님 실종 10일전에 함께한 마지막 교육토론회




다시 시간을 돌릴수 있다면...
그가 떠난 엄청난 충격앞에서 할말을 잃지만
그렇게 보내기엔  너무너무 아까운 사람이다.
우리 교육의 희망이었을 동갑 박원순,
서울을 넘어 우리 시대의 희망이 되었을 동갑 박원순!
우리에겐 사람이 사라진게 아니라 희망이 사라졌다.

중앙의 문재인,
서울의 박원순,
경기의 이재명과 함께 삼각편대를 펼치던 박원순. 영원한 서울시장 박원순



아무쪼록 부디 잘 가시라!
고통없는 곳에서 당신의 희망,
당신이 꿈꾸던 세상,
당신이 바라던 가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오래도록 지켜봐 주시라!


그동안 차마하지 못한 말,
"동갑 박원순시장님  세상일 훨훨 털고 모쪼록  잘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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