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CF, [Hope Downs] (2018)
가장 큰 특징이라면 역시 층위 높게 쌓은 쟁글 기타 사운드를 언급해야겠다. 팝 멜로디에 찰랑이는 기타 사운드들을 한껏 올린 롤링 블랙아웃츠 코스탈 피버(Rolling Blackouts Coastal Fever0의 스타일은 알이엠(R.E.M.)과 고-비트윈스(The Go-Betweens), 필리스(The Feelies), 오렌지 주스(Orange Juice)와 같은 1980년대 포스트 펑크, 1990년대 초 얼터너티브 록의 쟁글 팝 밴드들과 넓은 접촉면을 형성한다.
앨범을 열어젖힘과 동시에 쉬지 않고 울려대는 기타들을 보자. 프란 키니(Fran Keaney)의 어쿠스틱 기타는 리드미컬한 스트로크로 하모니를 빈틈없이 집어넣어 사운드에 풍성한 기반을 제공하고, 조 화이트(Joe White)의 일렉트릭 기타는 잔향 짙은 리프와 릭을 덧대 레이어를 두텁게 쌓아 올리며, 톰 루소(Tom Russo)의 일렉트릭 기타는 가장 전면에 나서서 직선적이면서도 멜로디컬한 리드 기타 라인을 내세운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다는 듯 밴드는 트랙리스트 초반부에서부터 자신들의 사운드를 확실하게 내보인다. 곡의 시작과 함께 공격적으로 치고 나오는 톰 루소의 리드 기타, 후경에서 아득하게 퍼져나가는 조 화이트의 몽환적인 기타가 치밀하게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는 밴드 특유의 전법은 'An air conditioned man'에서부터 'Sister's jeans'에 이르는 [Hope Downs]의 전반부의 모든 곡들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세 대의 기타와 리듬 섹션, 보컬 코러스까지 많은 구성요소를 한꺼번에 동원하고 있음에도 롤링 블랙아웃츠 코스탈 피버의 사운드는 좀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이유는 간결함에 있다. 이는 밴드와 이번 작품 < Hope Downs >를 정의하는 두 번째 특징이다. 쌓인 레이어가 제법 두터운 까닭에 사운드가 자칫 번잡해 보여도 개개의 파트는 꽤나 단순하게 움직인다. 사운드 구축하는 단위들을 하나하나 뜯어볼까. 이따금씩 조 루소(Joe Russo)의 베이스는 선율감을, 마르셀 투시(Marcel Tussie)의 드럼은 변칙을 드러내나 대체로는 간편하게 리듬 라인을 구성하고, 밴드의 기타 팝에 부피감을 더하는 프란 키니의 어쿠스틱 기타도 정형적인 스트로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운드의 규모를 한껏 키우는 조 화이트의 기타 역시 대체로 리프를 짤막하게 조성하는 데다 톰 루소의 기타 솔로잉은 닐 영(Neil Young)처럼 명료하게, 고-비트윈스의 그랜트 맥레넌(Grant McLennan)처럼 깔끔하게 선율을 배열하며, 이 둘은 자신들이 러닝 타임 전반을 뒤덮지 않게끔 음장의 앞뒤를 오가며 적시에만 모습을 내비친다. 읊조리듯 선율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 보컬 멜로디 또한 간단하기 그지없다. 그룹 전체가 짜임새 있게 움직인 덕분에 음악은 편곡에서의 균형을 획득한다. 상당한 사운드 볼륨을 가진 가운데, 개개의 요소들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 좋은 결과다.
간결함은 밴드가 가진 다른 주요한 특성과도 연결된다. 무엇보다도 파트 전반의 움직임을 가볍게 가져가면서 이들은 짧고, 간단하고 그래서 잘 들리는 멜로디들을 잔뜩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모든 곡에 빠짐없이 들어있는 기타의 캐치한 선율, 툭툭 던지듯 가사를 내뱉으면서도 리듬감과 에너지를 은근하게 담아내며 만드는 보컬 멜로디도 롤링 블랙아웃츠 코스탈 피버가 자랑할만한 성분들이다. 게다가 그 모양새들이 다채롭다. 밝게 찰랑이는 팝 록과 포스트 펑크 시대의 쟁글 팝은 물론, 1960년대 식 포크 록, 컨트리 록과도 연결되며 다양한 경우의 수가 탄생한다.
몽롱하고 나른한 톤이 내려앉은 'How long?', 템포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완력을 내보이는 펑크 풍의 'Bellarine', 고전적인 록 스타일이 들어선 'The hammer' 등 대부분의 곡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쟁글 기타 리프와 'Mainland', 'Talking straight', 'Exclusive grave'의 한복판에 놓인 직관적인 후렴구, 'An air conditioned man'을 비롯해 여러 트랙의 첫머리와 허리께에 놓인 기타 솔로잉에 이르기까지, 송라이팅에서의 역량이 드러나는 지점은 앨범 곳곳에 포진돼있다. 여기에 개개 곡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는 간편한 전개와의 호흡은 또한 어떠한가. 화성과 선율을 빠르게 전환하는 진행구조 속에서 멜로디들은 빈번하게 제 존재를 노출한다.
경쾌하게 찰랑이는 개개의 악기와 풍성한 쟁글 기타 편곡, 접근성 좋은 멜로디, 다양한 리프들의 혼합은 롤링 블랙아웃츠 코스탈 피버 그 자신들과 앨범 [Hope Downs]에 좋은 곡들을 제공한다. 훌륭한 산물들은 앨범 도입부에서부터 모습을 비춘다. 날렵한 리드 기타와 후경의 공간감 가득한 기타, 어쿠스틱 리듬 기타가 앙상블을 이루는 'An air conditioned man', 절-후렴으로 이루어진 간단명료한 구조 사이로 클래식한 포크 록 기타 솔로가 파고드는 'Talking straight', 나긋한 버스, 로킹한 프리 코러스와 코러스, 분위기를 환기하는 아웃트로가 잘 조합된 'Mainland'는 작품을 대표하는 트랙들로서 음반의 전반부를 장식한다.
스트레이트한 리듬 섹션으로 활력을 자아내는 'Time in common', 빠른 템포의 펑크에 쟁글 기타를 적확하게 사용한 'Bellarine', 서프 록 풍의 기타 연주를 활용하는 'The hammer' 와 같이 작품의 중후반에 배치된 곡들 역시 멋진 결과물이라 하겠다. 이뿐일까. 앞의 활기 넘치는 트랙들 뿐 아니라 포크 록 풍의 'Sister's Jeans'와 잔향이 아득하게 퍼져나가는 기타 팝 'How long?', 차분한 쟁글 팝 'Cappuccino city' 등 완급을 조절하는 팝 록 트랙들에서도 5인조의 재능은 여지없이 빛을 발한다. 모자람이 없는 트랙들과 앨범을 가질 자격이 충분한 능력이다.
작금의 록 신이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수작은 물론, 오랫동안 회자될 데뷔 앨범이라 칭해도 될 만큼 < Hope Downs >는 대단하다. 밴드를 정의하는 색깔이 짙게 배어있는 데다 뛰어난 곡들이 끊이질 않는다. 자신들이 가진 특장을 전부 꺼내놓으면서도 이들을 균형감 있게 배치해 우수한 소산들을 빚어내기도 하며, 신예 기타 팝 밴드가 가지는 생기를 적잖이 퍼뜨리면서도 에너지의 강약을 능숙하게 조절하며 앨범 내 흐름을 유려하게 조성하기까지 한다. 1960년대의 고전적인 포크, 컨트리 록과 1980년대의 독특한 쟁글 팝 사이에서 발견한 자신들만의 컬러는 말할 것도 없는 괄목한 성과다. 대담함과 섬세함, 신선함과 능란함을 모두 가진, 또 하나의 흔치 않은 데뷔작이 호주 멜버른의 5인조 밴드로부터 탄생했다. 실로 훌륭한 창작이고, 우수한 창작물임에 틀림없다.
-수록곡-
1. An air conditioned man
2. Talking straight
3. Mainland
4. Time in common
5. Sister's jeans
6. Bellarine
7. Cappuccino city
8. Exclusive grave
9. How long?
10. The ham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