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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요나 Nov 27. 2019

내성적인 엄마의 영어회화(5)-제2의 영혼을 갖는 것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또 다른 영혼을 갖는 것이라


To have another language is
to possess a secound soul.
-Charlemagne

최근에 접한 유명한 서양의 격언 중 하나이다.  나는 최근에 알게 된 격언이지만, AD 700 년쯤에 유럽의 한 황제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고 하니 세기를 뛰어넘는 이 격언이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요즘에 영어공부의 압박과 양에 억눌려서 브런치의 글을 읽는 것, 쓰는 것 모두 멀리했다. 어떤 한 언어를 가까이한다는 것은 다른 언어에 대한 친밀감과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가독성 있는 글을 쓰려면 한글로 된 텍스트도 많이 읽어야 하고, 한국어적인 뇌구조를 빠릿빠릿하게 가동해야 한다. 그러나 제2의 영혼, 즉 두 개의 뇌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나에게는 두 개의 ‘Soul’ 이 양쪽 모두 제대로 작용하는 것이 버겁다. 새로운 것을 뇌에 장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불협화음이다.


사실, 외국에서 사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한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상대가 대부분 가족뿐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휘와 문장 구사력이 점점 제한된다.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고 있는  아이만 보아도 그렇다.

아이는 한국 나이 만 4살이 되었을 때 미국에 왔다. 미국에서 제대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는 2년 정도인데, 벌써 한국어로 말하는 것을 귀찮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이에게 ‘한국어로 사고’하는 것보다 ‘영어로 사고’하는 것이 편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간단한 회화일수록 더더욱 영어로 말하고 싶어 한다. 단계적 배움의 과정일지는 지나고 봐야  알 수 있겠지만, 한국어를 잘하는 한국 친구와도 몇 시간 내내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물론 여기서 그런 케이스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좀 더 미국에 오래 산 아이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뇌가 말랑말랑한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두 번째 뇌가 빨리 형성되나 보다. 아이라서 유연성이 있는 만큼, 첫 번째 뇌도 빨리 사라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얼마 전, 한 언어학자(Lera Boroditsky)의 TED 강의를 보게 되었는데 그가 제시한 사례들이 인상 깊었다.

언어의 차이가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를 초래한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사례 중, 스페인어와 영어비교예시를 소개한다.


만약, 어떤 사람의 팔이 부러졌다고 하자. 그 사람이 자신의 상황을 다른 이에게 설명할 때 두 언어는 이렇게 다른 방식의 표현을 쓴다.

영어로는 “ I broke my arm. “이라고 하지만 스페인어로는 “ My arm is broken.”이라는 의미의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영어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내가 내 팔을 부러뜨렸어.’이다. 마치 팔을 부러뜨린 사람이 본인인 것처럼. 스페인어로는 “ 내 팔이 부러졌어”라고 객관화시켜서 이야기한다. 스페인어로는 팔이 부러진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더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어느 언어가 맞는 표현인지 단정할 수 없다. 자신의 팔을 일부러 부러뜨리는 사람은 없지만, 사고는 자신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장에서 누가 주체가 되는지, 어순과 문장 구조를 어떻게 엮어가는지에 따라  사람의 사고방식도 다르게 형성될 수 있겠다는 사실을 짐작해 봄 직 하다.

우리 말로는 어떨까? 한국어로는 “ 나, 팔이 부러졌어.”라고 이야기한다. 즉, 나라는 표현을 쓰지만 부러졌어라는 수동태적인 표현을 통해 자신의 의지로 부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단적인 예가 언어가 사고방식의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사고방식을 뇌에 장착하는 것’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오래된 습관과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것이 어려워지듯, 다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어려워지며, 익숙한 것이 편하다는 마인드 또한 점점 강해진다.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것을 얻기 위한 불편한 과정에는 관대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과 습관들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에 더욱 불편한 이방인의 삶이 이어져 왔던 것이다. 결국, 새로운 습관과 사고방식은 아주 작은 습관에서부터 누적해서 그 결과물로 이루어진다는 '당연한 사실'그저 외면하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뇌가 잘 작동하려면 ‘작은 습관’과 ‘꾸준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깨달아간다. 뇌와 몸의 유기적 움직임, 언어가 우리의 입으로 나오기까지의 복잡한 뇌회로의 작동은 누적된 작은 습관과 사고방식의 재형성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나는 이제야 믿는다.


오늘도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살아 보기 위해 연습한다. 뇌가 말랑말랑 해지는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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