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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Mar 15. 2024

코칭으로, 사명을 깨닫는 시간

이 세상에서 태어나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을 주며 사는 삶의 의미, 사명

코칭을 통해 알게 된, 두 청년이 있다.

내가 코칭을 배운 코치님한테 배운 청년들이다. 그 코치님께 코칭을 배우면, 교육을 마치고 단체 채팅방에 초대된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자는 취지에서다. 처음 코칭을 배우고 어떻게 연습해야 할지 막막했을 때와 정보를 얻어야 할 때, 이 방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점이 됐을 때, 도움을 청하는 손길을 내밀면 적극적으로 잡아주겠다고 다짐했다. 이 두 청년을 그렇게 알게 됐다. 교육을 마치고 나서, 연습하고 싶다고 채팅방에 올렸다. 바로 손을 잡아주었고, 소통하기 시작했다.     


전화로 진행했다.

처음 통화를 하는데, 내가 처음 교육받고 그 방에 있는 코치님들께 연락해서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만약 이 방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그 안에서 도움의 손길을 잡아주는 코치님들이 없었더라면, 코치로서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느낌을 알기에 코칭의 세계에 들어온 분을 보면, 남 같지 않게 느껴졌다. 청년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인지, 더 마음이 갔다. 더 챙겨주려고 노력했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였을까?    

  

몇 번의 코칭 연습 이외에도 연락이 왔다.

보통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였다. 가벼운 고민부터 심각한 고민도 있었다. 그때마다 카톡으로 혹은 전화나 줌으로 코칭을 해주었다. 속 시원한 해답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화를 나누기 전보다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이나마 도움을 줬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렇게 가끔 연락하며 지내왔다.     


며칠 전 같은 날, 두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한 명은 직접 만났고, 한 명은 전화로 만났다. 직접 만난 청년은 며칠 전부터 일정을 정해서 만나기로 한 날이 그날이었고, 전화로 만난 청년은 번개로 만났다. 진로 선택에 고민이 있는데 코칭해 줄 수 있겠냐는 카톡이 왔다. 저녁에는 다른 청년을 만나기로 해서 시간이 안 됐다. 퇴근 한 시간 전이였는데, 마침 통화할 시간이 되었다. 지금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잠시 안부를 묻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취업을 앞두고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상반된 두 개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이 많아 보였다.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할 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좀 적절하게 섞어주시지….’ 그러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극단의 두 가지를 한쪽에 하나씩 넣어주셨으니, 고민이 깊어지게 된다. 아! 하나씩 적절하게 섞어주신 건가? 아무튼. 둘 다 갖고 싶은데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돈과 시간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데, 개인 시간도 많았으면 좋겠다. 사회 초년생에게 이런 일이 있을까? 초년생이 아니더라도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직장생활이라는 것 자체가, 자기 시간과 역량을 돈과 바꾸는 것이니 말이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어느 정도 결론은 나 보였다.

그 청년이 말하는 톤이 처음과는 조금 달라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B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여러 조건이 괜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에 미련이 남아 고민하고 있던 거였다. 본인이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건이 별로였던 거다. 원하는 것과 조건의 싸움이었다. 대화를 나누기 전에는 조건이 약간 우세했는데, 끝나는 시점에서는 원하는 것으로 조금 더 기울어진 것이 느껴졌다.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이니, 두고 볼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만난 청년은, 실제로는 처음 만난 거다.

하지만 줌이나 전화 통화 그리고 카톡으로 대화를 나눠서인지 전혀 낯설지 않았다. 늦은 시간 만나게 돼서, 늦은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1년 전 취업 고민을 함께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러니 취업하고 1년이 된 시점이었다. 욕심이 많아 보였다. 좋게 말하면 의욕이다. 30대에 들어선 시점에, 이렇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대견해 보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가치 이야기가 나왔다.      


판단할 때 기준이 되는, 가치 말이다.

가치가 명확하지 않아 혼란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하더니 몇 가지 단어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본인 자신도 만족스러워하진 않았다.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했다. 가치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 가치들의 우선순위가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도 했다. 따라서 가끔 자신의 가치 우선순위를 점검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늦은 시간이라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다음 날 카톡이 왔다.

핵심 가치를 찾은 듯했다. 직접 표현하진 않았지만, 본인 스스로 만족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이라 생각됐다. 자신의 기준을 찾았다는 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판단할 수 있는 중심이 잡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핵심 가치를 응원하고 축복해 주었다. 두 청년을 같은 날에 만나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 이 시간이 훗날, 자신의 인생에서 좋은 시점으로 기억되길 소망한다. 할 수 있다면, 많은 청년과 대화를 나누며 그 시간이 인생에서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되길 소망한다. 이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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