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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Mar 28. 2024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닌, 버리기를 바라는 마음

버리기 위한 마음을 내야 입을 수 있는, 은총

바라는 것과 얻고 싶은 것은 같은 걸까?

대체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얻고 싶은 것을 말하니 그렇게 봐도 무관할 듯하다. 돈을 많이 얻고 싶다거나 자기 집을 얻고 싶다고 말한다. 좋은 일자리를 얻고 싶다거나 좋은 환경을 얻고 싶다고 말한다. 자기 스스로에게도 물어보라. “지금, 무엇을 바라는가?” 아마도 얻고 싶은 것이 떠올랐을 거다. 나도 그랬다. 바라는 것이 뭐냐는 질문 혹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얻고 싶은 것을 떠올리거나 말했다.  

    

작가로서 코치로서 그리고 강사로서 새롭게 거듭나고 싶은 마음을 떠올렸다.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라는 말에 다양한 모습을 상상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길게 늘어선 독자들에게 사인하는 모습. ‘100만 부 돌파 기념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 이미지. 즐겁게 북 콘서트 하는 모습. 잠실 체조경기장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에게 강연하고 즉석에서 코칭하는 모습. 이런 모습을 떠올리면, 흐뭇한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가장 흐뭇하게 떠올린 모습은 따로 있다.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이 올라오는 장면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침 루틴을 하고,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들고 다락방 서재로 올라간다. 다락방 서재는 이렇게 배치되어 있다. 올라가면 상단이 삼각 모양으로 되어있는 벽에 창문이 있다. 그 앞에 넓은 목제 책상이 있다. 의자에 앉으면 창문을 등지게 되는 구조다. 책상에 앉으면 앞에는 기다란 테이블이 있다. 소규모로 미팅하거나 강연하기 위한 자리다. 벽면에는 책장이 늘어서 있고 책들이 분류별로 꽂혀있는다. 글을 쓰다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찾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서재에 올라가면 먼저 책을 읽는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아침 운동을 나가기 전까지 서재에 머물며 시간을 보낸다. 동이 틀 무렵,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본다. 서재도 바깥세상도 여유롭고 편안하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여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거다.

이 장면을 떠올릴 때면,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레 파스텔 톤으로 그려진다. 새벽부터 아침으로 이어지는 고요한 공간과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 때문이라 생각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아침을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새벽 시간을, 내가 원하는 시간으로 채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감이 올라온다. 앞서 언급한 서재의 모습은 아니지만, 휴일에 가끔 이렇게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한번은 7시간 정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보냈는데,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몰랐다. 기분 좋은 뻐근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다. 완전하게 몰입된 거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참 좋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종종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다.      


얻고 싶은 것을, 이렇게 바라고 있다.

하지만 바라는 것이, 꼭 얻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버려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거다. 아니, 내버리는 것을 더 바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선행되어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굳이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것을 깨달은 것은, 얼마 전에 참석한 성령 기도회에서 말씀 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다. 개신교 신자였다는 강사님은 크게 잘못하고 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큰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좋았던 시력을 잃은 거다.

시력을 잃은 이유는, 친구들에게 사기당하고 그 충격 때문이라고 했다. 배신감에 미움과 화가 가득한 삶을 살았고,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신장이 나빠졌다고 한다. 거기다 심한 당뇨까지 앓았다고 한다. 빨리 죽게 해 달라고 기도까지 했다고 하니, 그 아픔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던 중, 그 친구들을 죄짓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미워하는 마음은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바뀌었고 이후부터 성령의 은총으로 자비를 입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 마음에 들어찬, 미움과 시기와 질투 등 나쁜 감정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그래! 얻고 싶은 것을 바라기보다, 버려야 할 마음을 버릴 수 있도록 바라야지!’ 그랬다. 내 마음에 있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미움 등이 보였다. 그래서 기도했다. 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그렇게 버린 마음으로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버려야 할 마음을 버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온전히 타인을 대하면, 얻고 싶은 것도 자연스레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순서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얻고 싶은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불편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바람이 빠지면 푹 꺼지는 풍선 인형처럼, 그렇게 마음이 푹 누그러졌다.     


말씀이 끝나고 안수 기도가 이어졌다.

안수 기도를 받을 때, 세례명을 이야기하라고 해서 말하고 앞에 섰다. 기도를 해주시는 데, 머리가 들어 올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은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 드는데, 그와 다르게 이끌려 들어 올려지는 느낌이었다. 발뒤꿈치를 살짝 들 정도로 말이다. 이 또한 성령의 힘이라 믿는다. 기도해 주신 말씀을 전부 기억하진 못하지만, 중요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내가 너의 길을 열어주겠다. 내가 가득히 채워주겠다. 네가 나를 위해 시간을 쏟았으니 채워주겠다. 믿기만 하여라.”      


길을 열어주시고 은총으로 가득히 채워주신다는 말씀에 위로가 되었다.

무엇보다, 많이는 아니지만, 내가 봉헌한 시간을 알아주신다는 말씀에 큰 위로가 되었다.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나쁜 것들을 버릴 수 있게 도와달라는 기도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얻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버려야 할 마음을 버리도록 기도하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기도 다짐한다. 지금처럼 이 아니라, 새롭게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그것이 은총을 입는 방법임을 확신한다. 또한,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 믿는 마음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러면 불편한 마음이 올라올 틈이 없게 된다. 믿기만 하라는 이 말씀 또한, 가슴 깊이 새기고 계속 되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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