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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Apr 08. 2024

가성비가 좋은 게, 좋은 게 아닌 이유

지나가는 일부분으로 인식해야 잘 견디면서 나아갈 수 있는 상황, 과정

가성비라는 말이 있다.

‘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가성비가 좋다는 건,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의미인데, 일상에서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높을 때를 일컫는다.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요즘 세상에서는, 가성비가 좋은 게 최고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긴다. 가성비가 낮은 선택을 했거나 그런 상황이라면, 큰 손해를 입은 사람처럼 축 처져있거나 역정을 낸다. 손해 보는 걸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손해 보더라도 다른 어디선가 만회된다는 믿음이 있으면 개의치 않지만, 하나하나 따져야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건 그거고 저건 저거다. 더 받은 건 당연한 거고, 그렇지 못한 건 억울하다는 말이다. 이 마음만 내려놔도 우울하거나 화낼 일이 줄어들 텐데 안타깝다.     


가성비라는 말이 나오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가장 가성비가 좋은 선택을 한 사람 말이다. 가까이는 주변에 있을 수도 있지만, 인류 역사적으로 찾아볼 수도 있다. 인류 역사적이라…. 너무 거창한 거 아니냐고 할 순 있겠지만, 그만큼 가성비가 매우 뛰어난 사람이 있다. 누구일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오른쪽에 있던 죄인이다. 죄인은 좌우에 있었다. 왼쪽에 있던 죄인은 당신이 신이라면 여기서 구해보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오른쪽에 있던 죄인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서 구원을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 죄인에게 당신과 함께 낙원에 있을 거라고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죄짓고 살던 사람이, 말 한마디에 구원받았다. 이보다 더 가성비가 높은 게 있을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놓고 말하면,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다. ‘평생을 막살다가 죽기 직전에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살면서 타인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절제할 필요도 없다. 내키는 대로 그냥 살면 된다. 너무 편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생각이 바른 생각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과정에서 얻는 행복의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등산을 예로 들면 이런 거다. 오르고 싶은 정상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한 걸음씩 걸어서 올라간다. 힘이 들어도 원하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다. 만약, 누군가가 헬리콥터로 데려 준다고 하면 어떨까? 얼씨구나 하고 탈 텐가? 억지로 오르는 사람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등산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가성비 최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오르는 동안 힘든 시간이 많을 텐데 말이다.      


오르는 과정 안에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건 힘이 든다. 누군가 그랬다. 어차피 내려올 거 굳이 그렇게 힘들여서 왜 올라가냐고 말이다. 정말 그렇다. 땀이 뚝뚝 떨어지고, 숨이 가빠온다. 다리는 묵직해졌다가 점점 힘이 빠지면서, 자칫 넘어질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가파르거나 길이 험하면, 위험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굳이 올라가는 이유는, 오르는 동안 느끼는 희열이 있기 때문이다. 잠시 쉬느라 멈춰도 주르르 흐르는 땀을,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식혀준다. 심호흡하면 나무들이 내뿜은 신선한 공기가 가슴속까지 파고들어, 몸을 정화해 주는 느낌을 받는다.      


중간에 만나는 약수터는 어떤가?

물이 꿀맛이라는 말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보는 식물들을 만나는 놀라움도 있다. 영화에서나 듣던, 맑고 예쁜 새들의 울음소리를 라이브로 듣는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잠시 쉴 때 옆에서 같이 쉬던 낯선 사람이 건네는 과일이나 사탕 등도 수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올라가면 어찌 되었든 정상에 도달한다. 이 외에도 생각할 거리가 있을 때, 등산은 최고의 효과를 준다. 거침없이 올라가는 동안 머릿속이 알아서 돌고 돌아, 정상에 서면 해법이 떠오르기도 한다. 몸이 느끼는 상쾌함 그 이상으로 얻게 되는, 또 다른 상쾌함이다.    

 

과정은 힘들고 어렵다.

어떤 과정이나 힘이 들고 어렵다. 재미있게 타기 위한 스키도 그렇지 않은가? 처음에 배울 때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제어하지 못한 상태로 내려갈 때는 어떤가? 경사가 가파를 때는 아찔하고 오금이 저린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난 뒤 익숙해지면, 그때야 스키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가성비가 좋은 게 좋을 때도 있지만,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 때도 있다는 말이다. 가성비를 따지는 건, 효율도 있지만, 과정에서 오는 힘듦이 아닐지 생각된다. 힘듦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등산처럼 원하는 힘듦은 좋아하지만, 원하지 않는 힘듦은 그렇지 않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들어오지 않는다. 피할 수 없어도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과정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유가 뭘까?

과정을 결과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과정은 말 그대로 지나가는 과정인데, 머무는 결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괴로워하는 거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가볍게 여기면서 하나씩 해나가면 되는데, 지나가지 않으리라 여긴다. 자기만 그런 것 같은 생각에 자존감마저 무너진다. 그대로 주저앉는 거다. 주저앉으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없다.      


이 또한 지나가는 이유는, 내가 계속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떻게 잘하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그냥 나아가기만 하자. 괴로운 이유가 잘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일 수도 있다. 덜 힘들고 덜 괴로우면서 나아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일단 나아가자. 그러면 지금 처한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다. 기억하자! 어둠을 빠져나가는 방법은 하나다. 어둠을 향해 멍하게 걷고 있던 발걸음을 돌려, 빛이 있는 곳을 향해 한 걸음씩이라도 계속 걸어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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