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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서김 Dec 27. 2020

물리학을 전공한 조종사의 영화 인터스텔라 리뷰 - 1


* 본 리뷰에 앞서 밝힌다. 필자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국내 항공사의 부기장이다. 찐 이과생 너드의 관점으로 이 작품을 리뷰해 보았다.  영화에 나온 과학 관련 소재를 중점으로 다룰 예정이다. 경우에 따라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영화를 감상하고 글을 읽으면 더 재밌을 거라고 장담한다. 필자는 영화를 두 번 본 후 작성했다. 영화를 N번 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이 영화는 두 번 이상 보는 걸 추천한다. 그래야 초반 장면이 더 재밌다.

 (인터스텔라가 개봉했을 적이 내 리즈시절이다.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은 때이다. 비록 물리를 물어보려고 한 거였지만.. 고로 인터스텔라는 내 인생영화다.)


 인터스텔라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하지만 검색엔진에 ‘인터스텔라 뜻’이라고 검색해보니 아쉬운 결과만 나온다. 관련기사와 블로그에는 인터스텔라의 의미를 단순히 ‘별과 별 사이’라고 적거나 ‘인터스텔라의 뜻은 별과 별 사이 굉장히 먼 거리를 뜻합니다!(이모티콘 한가득)’같은 단편적 해석뿐이다.

  Inter + Stella. 말 그대로 ‘별과 별 사이’라는 뜻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놀란 감독이 제목을 의미 없이 짓진 않았을 것이다.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천체에 관심이 많은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인터스텔라는 아마 ‘허블 딥 필드’를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허블 망원경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땅에서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하면 구름이나 기타 기상현상으로 우주에서 들어오는 빛이 심하게 왜곡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1994년, 기상현상이 없는 대류권 밖으로 망원경을 쏘아 올렸다. 그게 허블 망원경이다. 허블 망원경을 쏘아 올린 원래 이유는 흐리게 보이던 천체를 더 정확히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 모험심 투철한 과학자가 아무것도 안 보이는 곳을 찍어보자고 했다. 당시엔 꽤나 반발이 거셌다고 했다. 별을 더 정확히 보려고 비싼 망원경을 우주로 쏘아 올렸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 텅 빈 공간인 별과 별 사이를 찍자니. (허블 망원경은 인공위성처럼 지구를 돈다. 한 곳을 측정하려면 며칠, 몇 주 동안 그곳만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다. 땅에서 봤을 때 아무것도 안 보이던 공간에 2,000개 이상의 은하가 보였다. 1개의 별이 아니라 은하. 은하수 할 때 그 은하! 우연히 그곳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다른 비어있는 공간, 즉 다른 별과 별 사이도 찍었다. 촬영한 모든 곳에서 수천 개 이상의 은하가 보였다. 이 발견으로 과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걸 증명했고, 곧 빅뱅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 밑 사진이 허블 딥 필드다.

허블 딥 필드 사진. 땅에서 볼 땐 텅 빈 공간에 실제로 무수한 은하가 존재한다.


 영화를 본 독자라면 필자가 왜 인터스텔라의 뜻에서 ‘허블 딥 필드’를 유추했는지 알 것이다. 쿠퍼의 우주선은 특정한 행성을 향해 출발하지 않았다. 지구에서는 보이지 않은 별과 별 사이, 미지의 세계로 향했다. 그곳엔 지구에서 보이지 않던 새로운 세상이 나타난다.

*


 놀란 감독다운 영화다. 시간을 흥미롭게 다루었다. 사람마다 놀란 감독을 칭찬하는 이유가 제각각이겠지만 필자가 그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점은 역시나 과학적 기초가 튼튼하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재밌다. 물리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과목인데 물리로 재밌는 영화를 만들다니! 아이언맨에도 양자 얽힘이니 양자 영역 슈트니 하는 소재가 나오지만 거기서는 단지 있어 보이려고 단어만 나왔다. 인터스텔라는 현대물리 이론을 토대로 만든 영화다 보니 과학적인 얘기를 할 게 많아 좋았다. (제 리즈 시절을 만들어준 놀란 형님. 감사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단연코 ‘상대성 이론’이다. 쿠퍼와 아멜리아가 처음 들어간 행성은 블랙홀에 가깝다. 그 행성 안에서 몇 시간 보냈더니  그동안 지구는 수십 년이 흐른 상태다. 쿠퍼는 그대로인데 그 사이 그의 장인어른은 죽고, 자식들은 쿠퍼보다 더 늙었다. 시간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시간은 변하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하다.’ 대다수가 절대 참의 진리로 생각하는 명제다. 영화는 이 명제를 가볍게 흔든다. 이 명제는 20세기 아인슈타인이 깨뜨렸다. 영화에서 브랜드 박사가 왜 중력 타령을 했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브랜드 박사를 비롯해 나사 직원들이 계속해서 중력에 몰두했던 건 중력이 바로 시간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중력이 시공간을 왜곡했다. 출처 : sciencenews.org

 어디선가 위 사진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표현하는 사진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 있다면 당연히 특수 상대성 이론도 있다. 이름은 특수가 더 어려울 것 같지만 일반 상대성이론이 훨씬 어렵다. 혹시나 궁금한 독자가 있을까 봐.) 사진의 격자무늬를 시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중력은 시공간을 왜곡시킨다. 그래서 중력이 있는 곳을 지나면 빛도 휘고, 공간도 휘고, 시간도 휜다. 빛의 속도가 동일하다는 전제하에 직선이었던 격자무늬가 곡선으로 변하면서 더 길어지지 않았는가. 거리, 속도, 시간 관련해서 계산하ㅁ....... 여기까지! 더 이상 나가면 내 무식함이 드러날 것 같아 넘어가겠다. 쉽게 말해 중력이 많은 곳에 가면 시간이 천천히 간다고 받아들이면 된다.

 이런 시간의 차이가 우리 생활과 전혀 관련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빠르게 지구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은 인간이 소비하는(?) 시간과 차이가 있다. 그 오차를 계산해 지속적으로 위치를 조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뚱뚱한 사람은 마른 사람보다 더 많은 중력을 가지니 그 사람 주변의 시공간이 더 많이 왜곡되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맞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의 겉표면 위에 있다. 기껏해야 수십 킬로 차이 나는 건 지구 무게 앞에서 도긴개긴이다. 지구 질량은 약 6,000,000,000,000,000,000,000,000,000 kg이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블랙홀 주변에 가서 회춘(?)했다는 뜻은 블랙홀의 중력이 지구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뜻이다. 그 거대한 중력으로 빛도 빨아들이니 대부분의 블랙홀은 직접 관측이 안 된다. 주변의 흔적으로 블랙홀의 존재를 추정할 뿐이다.

 실제로 우리 인간은 아직 블랙홀도 잘 알지 못하고, 중력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브랜드 박사와 머피는 중력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 아마 영화는 인간이 중력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면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정한 것 같다. 중력을 통해 시공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아무리 먼 곳이더라도 짧은 시간에 인류를 그 곳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드래곤 볼에 나온 정신과 시간의 방이 떠올랐다고 창피해할 필요 없다. 나도 떠올랐다.

정신과 시간의 방. 방 안의 2년은 방 밖의 2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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