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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서김 Dec 22. 2020

항공성 중이염


 2019년 초가을, 동남아 어딘가를 오가는 비행이었다. 기장님과 칵핏(조종실)에 앉아 방비앵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던 게 떠오르는 걸 보니 아마 인천 - 비엔티엔 노선이지 않을까 싶다. 그 해는 매일이 성수기였다. 유례없는 항공업계 호황기다 보니 그럴만했다. 코로나로 전 세계 국제선이 막히고 여러 항공사가 파산한 지금, 그때를 뒤돌아보면 한 여름밤의 꿈같다. 그 당시 우리 같은 저비용 항공사의 비행기는 하루에도 수십 편씩 인천공항에서 승객들을 태워 동남아 곳곳으로 안내했고 그곳에서 즐거운 경험을 마친 승객들을 다시 한국으로 데려왔다. 객실은 늘 만석이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우리 승무원들의 피로는 누적되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일하는 일반적인 직장인은 한 달에 9~10일 정도 쉴 것이다.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간혹 있는 공휴일. 그 당시 나는 한 달에 평균 7일 정도 쉬었다. 오프 다음날은 늘 새벽 비행 스케줄이 있었기에 휴일도 제대로된 휴일이 아니었다. 휴가 신청은 매번 반려되었다. 뉴스를 보면 정부는 직장인들의 권리를 위해 주 52시간 근무 확정에 절대적 휴가 보장을 강력히 조치했지만, 항공업은 예외였다.

  늘 피로하다 보니 우리 승무원들의 면역성이 많이 떨어진 시기였다. 건조한 기내에 하루 종일 있다 보니 피부병에 걸리는 동료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라오스 비엔티엔에 가던 날.(정확히 비엔티엔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하겠다.) 출근 전 몸 컨디션이 안 좋았다. 늘 피곤을 어깨에 이고 다닌 시기였지만 그 날은 특히 몸 전체가 으슬으슬한 게 몸살 기운인지 감기 기운이 있었던 것 같다. 항공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조종사에게 가장 위험한 게 감기라고 들어서 병가를 써볼까 잠깐 고민했다. 당시에는 이까짓 감기 기운으로 병가를 쓰는 게 스스로도에게 납득이 안 갔을뿐더러 만약 내가 병가를 쓰면 오래간만에 쉬고있을 다른 부기장이 불려 나와야 하므로 민폐 끼치는 것 같아 그냥 출근했다.

 비엔티엔에 갈 때는 별 문제없었다. 문제는 돌아올 때였다. 비엔티엔의 호텔에서 하루 묵는 동안 감기가 심각해져 점점 목이 붓고, 콧물이 났다. 어릴 때부터 환절기마다 감기를 달고 사는 체질이라 비행기에 타기 전까지 그런 증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륙하고 30,000피트(약 10km) 상공을 넘어가면서부터 문제가 시작했다. 보통 B737 항공기는 공중에서 기내 기압을 한라산 정상 높이 정도로 유지한다. 감기 걸린 채 아주 건조한 날씨에 한라산 정상에 있는 것과 상태였다. 목이 아주 아팠고, 콧물은 쉴 새 없이 나왔다. 비행하는 5시간 동안 휴지를 수십 장 썼다. 몸안의 내장이 코로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기장님에게 피해 끼칠까 조용히 한다고 하는데도 온종일 코를 풀다 보니 기장님도 걱정하셨다.

 클라이맥스는 인천공항에 다다르고 강하를 시작했을 때부터다. 비행기는 강하를 시작하면 기내 기압을 서서히 높인다. 착륙한 다음 비행기 기내기압과 외부기압이 같아질 수 있게하기 위해서다. 강하가 시작되면서 귀가 아프기 시작했다. 감기에 걸리지 않은 정상적인 상태에 외부 기압이 증가하면 동시에 중이의 압력도 같이 증가해 고막 내외 압력 밸런스를 유지한다. 감기에 걸리면 중이 부분에 염증이 생기고 부어서 그 부분이 압력조절을 제대로 못한다. 비행기가 강하할 때, 고막 안쪽은 그대로 압력이 낮고 바깥쪽만 증가하는 상태가 된다. 압력차가 생기다 보니 고막에 통증이 나타났다. 목은 따갑고 콧물은 멈추지 않고 귀는 계속 아팠다. 나중에 알았지만 압력차로 귀 통증이 생길 때 하품하듯 입을 크게 벌리면 좀 괜찮다고 한다. 그 당시는 그런 걸 몰랐고, 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조종사였고, 비행기에서는 내 할 일이 있었다. 기장님이 비행기를 운항하는 동안 옆에서 관제사와 무선통신을 주고받고, 기장님이 명령한 장비들을 만졌다. 비행기는 큰 문제없이 인천공항에 잘 착륙했다.

 밤샘 비행을 마치고 아침 8시쯤 집에 돌아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바로 누웠다. 눈을 감았다 뜨니 오후 3시쯤 됐다. 많이 피곤했다. 다음날 휴일을 보내면 그다음 날 또 1박 2일 스케줄이 있었다. 병가를 쓸지 말지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회사에 전화해 병가를 내고, 1박 2일 스케줄을 취소했다. 전화를 받은 스케쥴러가 불쾌해한 건 기분 탓일까. 자기는 몸이 아파도 열심히 일하는데 그깟 감기로 병가 내는 조종사들이 이해되지 않아서 말투가 저렇게 삐딱한가? 괜스레 위축됐다.


 그 일이 있고나서 얼마 후 항공성 중이염으로 장기휴가를 낸 부기장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귀에 통증이 있는데 참고 비행을 한 것이 화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오래오래 비행하려면 사소한 감기라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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