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동료 부기장이 호찌민에 다녀왔다. 힘든 스케줄이었다고 했다. 승객을 태우진 않았고, 화물만 수송한 비행이다. 우리 회사는 요즘 화물 비행으로 베트남 몇 군데를 주 2회 운항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전에는 승객을 싣고 하루에도 몇 번씩 왕래하던 노선이다. 그 당시 베트남으로 비행 가면 현지 호텔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바로 왔다. 최근에는 주 2회만 운항하다 보니 현지에서 이틀이나 삼일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 조종사들이 비행기를 몰고 베트남에 가면, 기존에 묵었던 다른 조종사들이 그 비행기를 끌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아쉽게도(?) 베트남에 간다고 주변을 돌아다닐 수는 없다.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격리되어 방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 방에 갇힌 채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온다. 이틀 동안 <올드보이>를 찍고 오는 거다.
동기는 그곳에서 자신들을 바이러스 보균자 취급해서 매우 불쾌했다고 했다. 매끼 밥을 가져다주는 호텔 직원은 조금이라도 접촉을 피하기 위해 밥을 문 앞에 내려놓고 노크하자마자 후다닥 달아났다고 했다. 호텔방에 48시간 이상 갇혀 가뜩이나 불쾌지수가 높아졌을 텐데 그런 취급을 당했으니 기분 상한 게 이해 간다. (혹시나 하는 말인데 호텔이라고 해서 호화로운 5성급 호텔에서 묵는 게 아니다.)
아직 나는 베트남 스케줄이 안 나와 직접 겪진 않았지만 중국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달 중국 연변에 있는 연길 공항에 다녀왔다. 연길은 베트남만큼 멀지 않아서 그곳에서 묵지 않고 승객만 바꾼 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에서 출발해 연길에 도착한 승객들이 하기하고, 한국으로 올 승객들이 탑승하기 전 기내 방역을 한다. 방역을 하는 동안 조종사들과 객실 승무원들은 공항의 좁은 곳에 잠깐 격리된다. 영화 <괴물>에서 송강호가 괴물과 밀첩 접촉 한 다음 보균자로 간주되어 비닐이 씌워진 밀폐된 방으로 이송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느낌이 나는 공간이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공항직원은 당연히 보기만 해도 더워 보이는 새하얀 방역복에 고글을 착용했다.
우리 입장에서야 우리가 안전하고 해외가 더 불안하지만, 그쪽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한국이라는 외국에서 온 우리가 ‘보균 가능성’ 있는 사람들일 테니 납득할 수 있다.
*
인터넷에서 승무원 엄마가 서러워서 작성한 글을 읽었다. 자신이 승무원이라 어쩔 수 없이 해외에 나가는데, 그걸 알고 있는 유치원에서 자신의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말라고 통보해 서럽다고 한 글이었다. 승무원의 서러운 입장도 이해 가고, 유치원 직원과 다른 엄마들 입장도 다 이해가 가서 안타깝고 슬펐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우리 조종사들과 객실 승무원은 병원도 가기 힘들다. 국제선 비행을 다녀오면 현지에 묵지 않고 바로 돌아오더라도 해외 출국 기록이 14일 동안 남는다. 병원에 가면 그 기록이 떠서 접수를 거부하는 곳도 있다. 한 번은 손목이 아파서 한의원에 갔는데, 간호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훑어봤다. 억울하고 불쾌했지만, 상대방 입장에서 헤아려보면 다 이해가 간다. 만약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탄다면, 나 역시 불쾌할 것 같고 그 표정이 드러날 수 있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잘못한 사람은 없지만, 상처 받는 사람은 존재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 중 원해서 걸린 사람은 없다. 생각 없이 이태원 클럽이나 룸살롱, 호스트 바에 가서 걸린 사람들은 욕을 한 바가지 먹어야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확진자는 자신도 억울한 피해자이고, 조심히 보호받고 치료받아야 할 환자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시선이 좀 따갑다. 뉴스를 보니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 완치되어도 회사에서 복귀하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옆 집 사람들이 집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비난하는 것 같다.
음.. 이런 말 하기 조심스럽지만.. 요새 뉴스에 자주 접하는, 미국에서 발생하는 아시안 헤이트 범죄와 어찌 보면 비슷한 혐오가 아닐까 싶다. 절대로 폭력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조종사인 나를 바라보는 호텔 직원과 병원 간호사의 불쾌한 시선, 승무원 엄마가 유치원에서 겪은 통보, 완치자들이 겪는 사회적 격리. 이런 것들도 음.. 내 입장에서는, 다른 인종들이 아시안들에게 보내는 따가운 시선과 비슷해 보인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