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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서김 Apr 24. 2021

코로나 바이러스, 이것도 혐오는 아닐까

 지난주 동료 부기장이 호찌민에 다녀왔다. 힘든 스케줄이었다고 했다. 승객을 태우진 않았고, 화물만 수송한 비행이다. 우리 회사는 요즘 화물 비행으로 베트남 몇 군데를 주 2회 운항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전에는 승객을 싣고 하루에도 몇 번씩 왕래하던 노선이다. 그 당시 베트남으로 비행 가면 현지 호텔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바로 왔다. 최근에는 주 2회만 운항하다 보니 현지에서 이틀이나 삼일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 조종사들이 비행기를 몰고 베트남에 가면, 기존에 묵었던 다른 조종사들이 그 비행기를 끌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아쉽게도(?) 베트남에 간다고 주변을 돌아다닐 수는 없다.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격리되어 방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 방에 갇힌 채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온다. 이틀 동안 <올드보이>를 찍고 오는 거다.


 동기는 그곳에서 자신들을 바이러스 보균자 취급해서 매우 불쾌했다고 했다. 매끼 밥을 가져다주는 호텔 직원은 조금이라도 접촉을 피하기 위해 밥을 문 앞에 내려놓고 노크하자마자 후다닥 달아났다고 했다. 호텔방에 48시간 이상 갇혀 가뜩이나 불쾌지수가 높아졌을 텐데 그런 취급을 당했으니 기분 상한 게 이해 간다. (혹시나 하는 말인데 호텔이라고 해서 호화로운 5성급 호텔에서 묵는 게 아니다.)


 아직 나는 베트남 스케줄이 안 나와 직접 겪진 않았지만 중국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달 중국 연변에 있는 연길 공항에 다녀왔다. 연길은 베트남만큼 멀지 않아서 그곳에서 묵지 않고 승객만 바꾼 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에서 출발해 연길에 도착한 승객들이 하기하고, 한국으로 올 승객들이 탑승하기 전 기내 방역을 한다. 방역을 하는 동안 조종사들과 객실 승무원들은 공항의 좁은 곳에 잠깐 격리된다. 영화 <괴물>에서 송강호가 괴물과 밀첩 접촉 한 다음 보균자로 간주되어 비닐이 씌워진 밀폐된 방으로 이송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느낌이 나는 공간이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공항직원은 당연히 보기만 해도 더워 보이는 새하얀 방역복에 고글을 착용했다.


 우리 입장에서야 우리가 안전하고 해외가 더 불안하지만, 그쪽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한국이라는 외국에서 온 우리가 ‘보균 가능성’ 있는 사람들일 테니 납득할 수 있다.


*


 인터넷에서 승무원 엄마가 서러워서 작성한 글을 읽었다. 자신이 승무원이라 어쩔 수 없이 해외에 나가는데, 그걸 알고 있는 유치원에서 자신의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말라고 통보해 서럽다고 한 글이었다. 승무원의 서러운 입장도 이해 가고, 유치원 직원과 다른 엄마들 입장도 다 이해가 가서 안타깝고 슬펐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우리 조종사들과 객실 승무원은 병원도 가기 힘들다. 국제선 비행을 다녀오면 현지에 묵지 않고 바로 돌아오더라도 해외 출국 기록이 14일 동안 남는다. 병원에 가면 그 기록이 떠서 접수를 거부하는 곳도 있다. 한 번은 손목이 아파서 한의원에 갔는데, 간호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훑어봤다. 억울하고 불쾌했지만, 상대방 입장에서 헤아려보면 다 이해가 간다. 만약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탄다면, 나 역시 불쾌할 것 같고 그 표정이 드러날 수 있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잘못한 사람은 없지만, 상처 받는 사람은 존재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 중 원해서 걸린 사람은 없다. 생각 없이 이태원 클럽이나 룸살롱, 호스트 바에 가서 걸린 사람들은 욕을 한 바가지 먹어야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확진자는 자신도 억울한 피해자이고, 조심히 보호받고 치료받아야 할 환자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시선이 좀 따갑다. 뉴스를 보니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 완치되어도 회사에서 복귀하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옆 집 사람들이 집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비난하는 것 같다.


 .. 이런  하기 조심스럽지만.. 요새 뉴스에 자주 접하는, 미국에서 발생하는 아시안 헤이트 범죄와 어찌 보면 비슷한 혐오가 아닐까 싶다. 절대로 폭력을 옹호하는  아니다. 그렇지만. 조종사인 나를 바라보는 호텔 직원과 병원 간호사의 불쾌한 시선, 승무원 엄마가 유치원에서 겪은 통보, 완치자들이 겪는 사회적 격리. 이런 것들도 ..  입장에서는, 다른 인종들이 아시안들에게 보내는 따가운 시선과 비슷해 보인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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