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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서김 Apr 27. 2021

백수와 직장인. 어딘가 그 사이

 내 기준으로 직업으로서 조종사의 가장 큰 장점을 뽑자면, 아마 복잡한 출퇴근 시간에서 자유로운 게 아닐까 싶다. 어쩌다 한 번씩 출근시간에 출근하면 막히는 올림픽대로 때문에 아찔하다. (‘출근시간에 출근한다’는 말이 뭔가 어색하다.) 꽉 막힌 도로를 매일 다녀야 하지 않는 것만 해도 이 직업에 감사하다.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수명이 줄어든다는 기사를 읽었다. 하늘을 날면 우주 방사선에 많이 노출되는데, 그 방사선을 맞고 줄어든 수명이 편한 출퇴근으로 보상받는 기분이다.


 출퇴근뿐만 아니라 밖에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놀러 나갈 때도, 마트에 갈 때도 주로 평일 낮에 돌아다닌다. 주말에 쇼핑몰에 가거나 서울 시내에 놀러가면 바글바글한 사람들로 금방 지친다. 남들 놀 때 일하고, 남들 일 할 때 쉬는 거라 장단이 뚜렷하지만, 나같이 사람 많은 걸 안 좋아하는 아싸에게 스케줄 근무는 조금 더 장점 쪽에 무게가 실린다.


 단점을 생각해봤다. 안 좋은 점을 생각하자마자 나를 쳐다보는 아주머니들이 떠오른다. 아내 심부름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거나 운동하러 나갈 때 편한 옷차림으로 나간다. 물론 평일 낮이다. 가끔 다른 사람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아주머니들과 마주치는데, 그럴 때면 그분들 눈빛이 조금 따갑다. 그 눈빛에서 ‘저 청년(청년은 내 생각이고 아저씨라고 생각하겠지)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어휴.. 이 시간에 일도 안 하고.. 직장이 없나.’라는 말이 그분들 머리 위에 보이는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평일 낮에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내 나이 또래 남자가 거의 없긴 하다. 그렇기에 의도치 않게 내 존재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나뿐 아니라 어지간한 조종사나 남자 승무원들은 다 느껴봤을 것이다.


 공부를 하거나 이렇게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쓸 때 종종 낮에 도서관에 간다. 당연히 아이들과 3,40대 여성이 제일 많고, 20대 중후반의 젊은 사람들도 있다. 젊은 친구들은 대체로 취업 준비나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한 번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양복 차림의 남자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시간에 양복을 입은 남자와 도서관은 너무 안 어울려서 슬쩍 뭘 하는지 봤다.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어떤 사람일까.


 도서관 갈 때 내 존재를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도서관 직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요새 도서관을 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문 앞에 도서관 직원이 상주한다. 들어가는 사람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라고 안내한다. 그 번호를 눌러 통화를 연결하면 “인증되었습니다.”라는 음성이 들린다. 요 근래 자주 도서관에 가다 보니 출입구에 앉아있는 직원이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 처음 한두 번은 체온 측정도 안내해주고, 휴대폰으로 전화통화를 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요새는 내 얼굴을 보고, 한 번 끄덕이고 그런 말을 안 해준다. 분명 내가 여기 자주 온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과연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볼까. 나 스스로 내 외모를 평가해보자. 일단 취업 준비생 치고는 나이가 많아 보인다. 늘 귀에는 에어팟을 끼고, 옷차림은 편하게 입는다. 오늘 옷을 한 번 보자. 가운데 NASA가 크게 프린트되어있는 남색 후드티에(아. 빅뱅이론에 나오는 레너드 같다. 왜 이런 걸 입고 왔을까...) 베이지색 조거 팬츠, 붉은색 나이키 운동화. 가방은 와이프가 생일 선물로 사준 샘소나이트 백팩을 메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조금 쑥스럽다. 이런 기분 들면 안 되는데!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도서관에 다닐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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