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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서김 Nov 09. 2022

비행기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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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훈련으로 싱가포르에서 7주간 체류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인천 국제공항의 입국 심사대 앞에는 같이 싱가포르항공의 B787을 타고 온 300명 정도의 승객이 공항을 빠져나가기 위해 길게 줄 서 있었다.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인 때라 공항 출입국 방역 절차가 까다로웠다. 오전 2시쯤 싱가포르에서 출발해 7시간의 긴 새벽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터라 줄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피곤하고 예민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군중이 각자의 대화를 하면서 웅성거리고 있는데 모든 대화의 침묵이 잠깐 동안 일치해 갑자기 다른 공간에 온 것처럼 어색 해질 정도로 조용해지는 찰나의 순간. 그때도 그런 순간이었다. 입국 심사대 앞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 순간의 침묵을 곧바로 한 여자 아이가 칭얼대며 깨뜨렸고, 뒤이어 아이의 엄마가 크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줄 서 있는 300명의 얼굴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아이는 울듯 말 듯 인상을 찡그리며 계속 칭얼댔다. 아이가 목소리를 키울 때마다 아이의 엄마는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절규했다. 옆에는 남편으로 보이는 깡마른 남자가 있었다. 그는 아이의 짐, 엄마의 짐, 본인의 짐을 모두 짊어지느라 허리가 굽었고 안경은 반쯤 내려갔다.


모든 사람들이 속으로 그 상황을 이해했다.


‘저 아이는 비행기에서 계속 칭얼댔고, 엄마의 인내는 임계치를 초과했구나.’


옆에 서있던 한 아저씨가 “여기 먼저 보내주죠!”하고 소리치자 사람들이 일제히 그들을 위해 길을 비켰다.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앞장섰다. 왼쪽,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감사합니다’를 반복적으로 외쳤고, 뒤이어 아이를 안은 여자가 엉엉 울면서 걸었다. 누군가 저렇게 펑펑 우는 걸 본 게 오랜만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가끔 말하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는 156cm의 작은 키로 남자아이 둘을 키웠다. (아버지가 계시긴 하지만, 그 당시 아버지들은 육아를 안 했으니까 독박 육아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둘째 아들인 내가 저 아이만 했을 때, 엄마는 내가 울 때마다 뒷목에 소름이 돋으면서 온 몸이 아팠다고 했다. 인천공항에서 마주친 여성을 보면서 ‘엄마도 내가 울면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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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비행기 탑승은 논란이 많다. 얼마 전 비행기에서 아이가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데 그 아이를 방치한 부모와 참다못한 승객이 크게 싸워 화제가 되었다. 인터넷에는 우는 아이들 때문에 비행 내내 고통받았다는 승객의 하소연이 자주 올라온다. 제주도나 괌, 사이판 같이 아이들이 많이 탑승하는 비행은 객실 승무원들도 잔뜩 긴장한다고 한다.


‘애들이 지금 해외여행 가봤자 뭘 안다고. 부모들 이기심 때문에 애들도 힘들고 옆에 있는 승객들도 힘들다’라는 댓글을 봤다. 양가적 감정이 든다. 이 댓글은 내 개인적 가치관인 ‘다른 사람에게 절대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신념과 일치해서 아이가 울 거를 알면서도 데리고 온 부모들이 잘못된 것 같기도 하지만, 한 명의 애기 아빠로서 애기가 있으면 해외여행 갈 때마다 죄인이 되어야 하는 건가 라는 반발감도 든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는 한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가 만약 울거나 돌아다니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소란을 막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를 많이 할 테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부모들도 있는 것 같아 무조건 부모 편을 들기가 뭣하다.


아이가 생기고 근처에 잠시 나가는 것도 큰일이 되다 보니 가족과 해외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부쩍 커졌다. 아이가 생기기 전과는 확실히 다르게 열망이 커졌다. 아내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많은 연인이 미래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듯,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언제부터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나갈 수 있을지 종종 이야기한다. 해외를 자주 돌아다니는 나 같은 사람도 이럴진대 평범한 엄마, 아빠는 얼마나 밖에 나가고 싶을까.


글을 쓰면서도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다. 아이들마다 비행기 안에서 기압 차이를 견뎌낼 수 있는 기질이 다르고, 아이들을 어떻게 훈육해야 하는지 부모들의 가치관도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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