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서김 Sep 05. 2020

풀 업! 풀 업!

조종사가 들어서는 안 되는 소리

# 1


“풀 업(PULL UP)! 풀 업(PULL UP)”

 이 음성은 비행기가 어딘가에 충돌하기 직전 칵핏(조종석) 안에서 자동으로 울리는 기계음이다. 비행기 외부에는 레이더가 있어 주변을 지속적으로 훑는데, 비행기가 산악 지형에 부딪힐 정도로 가까워지거나 착륙 상황이 아닌데 지면에 접근하면 이 경고음이 울린다. 조종사는 이 소리를 들으면 빨리 조종간을 당겨(PULL UP) 비행기를 상승시켜 충돌에서 벗어나야 한다.

 작년 이맘쯤 방콕 공항에 착륙하기 30초 전 이 음성을 들었을 때, 이 소리를 훈련이 아닌 실제 비행에서는 절대 들어서는 안 된다는 시뮬레이터 훈련 교관의 말이 떠올랐다. 실제 비행에서 이 소리를 들으면 살아날 가능성이 적다나 뭐라나. (비행 시뮬레이터 훈련에서는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주로 하기 때문에 다양한 경고음을 듣는다.) 이 음성이 궁금한 사람은 유튜브에 “JAL123 마지막 교신”을 검색해보길 바란다. ‘풀 업!, 풀 업!’ 기계음이 나온 후 일본 조종사들이 ‘이젠 끝이야’하고 낙담하는 녹음 음성이 있다. 그 비행기는 몇 초 후 후지산에 충돌한다.

# 2


 방콕으로 가는 비행이었다. 한국 시각으로 밤 11시 무렵, 라오스 공역을 지나 인접한 태국 영공으로 막 진입했다. 태국 관제사에게 무선 통신했다.

“방콕 컨트롤, 굿 이브닝, HL1111*, 메인테인 플라잇 레벨 330 “
(태국 관제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HL1111입니다. 현재 33,000피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와디 카~ HL1111. 방콕 컨트롤, 메인테인 플라잇 레벨 330”
(안녕하세요, HL1111. 저는 태국 관제사 ‘방콕 컨트롤’입니다. 계속 33,000피트를 유지하세요.)

 태국 영공에 진입하면 마치 타이 마사지를 받는 듯 긴 비행의 피로가 풀린다. 태국 공역은 대체로 여성 관제사들이 담당하는데 태국말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하늘 위 조종사들의 긴장된 뒷목을 시원하게 이완한다. 한국에서 태국에 오려면 그전에 라오스를 거치는데, 대체로 라오스 같은 공산권 관제사들은 무뚝뚝하다 못해 무섭다. 참고로 중국 관제사들은 훨씬 더 고압적이고 무섭다. 그런 무뚝뚝한 지역을 지난 다음 곧바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니 더 반갑다. 전 세계 관제사들은 조종사에게 인사할 때 ‘굿 모닝’, ‘굿 이브닝’ 같은 영어 인사를 주로 하는데 태국은 다르다. 늘 특유의 공기 섞인 목소리로 ‘사와디 카~’라고 먼저 부드럽게 인사한 다음 영어로 필요한 지시를 내린다. 그래서 나는 태국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관제사의 ‘사와디 카~’가 떠오른다.

 비행 내내 날씨가 좋았다. 비행기는 흔들림 없이 미끄러지듯 하늘을 가로질렀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 달빛은 거대한 조명 같았다. 어둡지만 밝은 밤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고속도로와 도시들이 노란 불빛으로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고 있다. 기장님은 이보다 더 친절할 수 없을 정도로 친절했다. 좁은 칵핏이 답답하니 구두는 벗고 있으라고 직접 준비해 온 일회용 슬리퍼를 주셨다. 기장님과 방콕에 착륙하고 무얼 먹으러 나갈지 수다 떨다 보니 금방 방콕 상공에 다다랐다. 날씨, 기장님 다 좋은 해피 플라잇이었다. 마지막에 내가 망쳐버리기 전까지.

 공항에 가까워지면서 아이패드에 있는 항로 차트를 공항 차트로 바꿨다. 자동차 운전할 때는 내비게이션을 본다면 비행할 때는 항공 차트를 본다. 각 비행 단계마다 펴놓는 항공 차트는 다르다. 이제 곧 공항이니 공항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공항 차트를 폈다. 차트 위에 적힌 공항 이름을 보고 올바른 차트인지 확인했다. ‘Suvarnabhumi Airport(수완나품 국제공항)’. 태국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관제사의 지시를 받아 수완나 품 공항을 향해 하강을 시작했다. 이제 곧 착륙이다. 기장님의 지시에 따라 좌석 벨트 스위치를 3번 점멸했다. 딩. 딩. 딩. 스위치를 한 번 껐다 켤 때마다 객실에는 ‘딩’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 있는 좌석벨트 조명이 깜빡인다. 객실에 있는 승무원과 승객들은 내가 3번 스위치를 껐다 켜면서 울리는 세 번의 ‘딩’ 소리를 들을 것이다. 곧 착륙공항에 도착한다는 신호다. 신호를 들은 승무원은 승객들에게 비행기가 곧 착륙할 거라는 방송을 했다. 비행기 컴퓨터에는 미리 착륙을 위한 정보를 다 입력해 놓았다. 계속해서 관제사가 주는 지시에 따라 접근과 하강을 이어갔다. 지겨웠던 5시간 비행의 마무리 단계다. 곧 끝이다

 공항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의 속력을 줄이기 위해 플랩을 내렸다. 플랩은 비행기 날개 뒤에 붙어있는 양력 보조 장치다. 조종사는 플랩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날개의 역학 구조를 바꾼다. 플랩을 아래로 내릴수록 비행기는 더 큰 양력과 항력을 받는다. 쉽게 말해 더 낮은 속도로 날 수 있다. 내가 타는 보잉의 B737 항공기는 주로 플랩 레버를 30에 놓고 착륙한다. 활주로 길이가 짧거나 뒷바람이 강해 비행기 속도를 더 줄여야 한다면 플랩을 더 내려 40을 쓰기도 한다. 플랩을 많이 내릴수록 더 낮은 속도로 비행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날개가 받는 항력이 커지고 연료 소모가 더 크다. 조종사는 알맞은 판단으로 플랩을 사용해야 한다.

 공항으로부터 약 8마일. 방콕 공항 관제사에게 착륙을 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다. 착륙을 위해 마지막 플랩을 내려야 하는 시기다. 기장님이 명령했다.

“플랩 30”
“플랩 30” 기장님의 명령을 따라 하면서 15에 가 있던 플랩 레버를 30으로 내렸다.

“랜딩 체크리스트” 착륙 전 마지막으로 비행기 세팅을 정확히 했는지 체크하라는 명령이다.
“랜딩 체크리스트 컴플릿” 칵핏 내 세팅을 잘 마무리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대답했다. 워낙 많이 하기 때문에 외우다시피 빠르게 훑고 끝냈다.

 이제 활주로까지 수평으로는 3마일 정도 떨어졌고, 지표면 위로 1000피트 상공을 날고 있다. 비행기는 안정적인 강하 각을 유지하며 내려가고 있다. 바람이 없어서 부드럽다. 시정이 좋아 활주로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이제 500피트 상공. 약 1분 후 착륙한다. 400피트. 갑자기 조종석 화면에 빨간 글씨로 “PULL UP”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곧이어 바로 스피커에서 큰 소리로 “풀 업! 풀 업!”이라는 기계음이 귀를 뚫을 정도로 크게 들렸다.

 머리가 하얘졌다. 먼저 창 밖을 보았다. 내 시야에 활주로 말고 다른 장애물은 없다. 비행기의 높이도 적당하다. 기계 오작동인가? 생각하는 동시에 기장님을 쳐다봤다. 기장님도 ‘이 비행기가 왜 이러지?’하는 표정이다. 이제 두 가지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1. 기계음을 무시하고 활주로에 착륙한다.
2. 고 어라운드* 한다.

 1번이 참 매력적이다. 겉으로 봤을 때 아무 문제없다. 아마 경고음이 잘못 울리지 않았을까. 지금 착륙해도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을 것이다. 고 어라운드를 하면 파워를 넣고 조종간을 당겨서 다시 상승하고 공항을 적어도 한 바퀴를 돌아야 한다. 승객들이 많이 당황할 것이다. 상황에 따라 수십만 원 혹은 수백만 원의 연료값이 추가로 든다. 만약 다시 접근해도 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스친다. 그냥 지금 바로 착륙하고 싶다. 이대로 가면 30초 안에 땅에 닿는다. 빨리 판단해야 한다. 기장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기장님?”
 “무슨 일인지 모르니까 일단 고 어라운드 하자”
 “네”

 기장님은 고 어라운드를 결정했다. 기장님이 파워를 넣고 조종간을 당긴다. 비행기는 하강을 멈추고 다시 위로 상승한다. 나는 관제사에게 고 어라운드 한다고 통신했다. 곧바로 비행기의 상승률을 높이고 항력을 줄이기 위해 30으로 내렸던 플랩을 15로 올려야 한다. 레버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 플랩 레버를 만진 손의 감촉이 좀 이상하다. 눈으로 확인했다.

 아.

 플랩 레버가 30에 없었다. 레버는 25 위에 있었다. 조금 전 기장님이 ‘플랩 30’을 오더 했을 때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25까지만 내린 것이다. 랜딩 체크리스트를 수행하면서 확인해야 할 때도 제대로 안 보고 넘어갔다.

“기장님 죄송합니다. 플랩이 25에 가 있었습니다.”
“그래? 아이씨... 그것 때문에 ‘풀 업’ 떴나 보네.”

 비행기 컴퓨터에 착륙 플랩을 30으로 설정했는데, 실제로 레버는 25에 있다 보니 컴퓨터가 이 상황을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비정상 상황이니 일단 빨리 조종간을 당겨 위로 상승하라는 신호로 풀업 기계음이 울렸다. 우리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인하고 관제사의 지시에 따라 공항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곧이어 바로 착륙허가를 받고 두 번째 접근할 때는 플랩 레버를 정확히 30에 놓고 무사히 착륙했다.

 내가 잘못 세팅한 걸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모두 놓쳤다. ‘랜딩 체크리스트’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착륙 전 마지막으로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절차인데, 자만한 초보 부기장이었던 나는 정확히 세팅했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그 절차를 대충 넘겼다. 운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드라이버가 자신의 실력에 자만한 나머지 사고 낸 것과 같은 경우다. 내가 확인을 다 하면 마지막으로 기장님이 한 번 더 확인해야 하는데 기장님은 나를 믿고 그냥 지나쳤다. 결국 내 자만한 실수가 승객들에게 불편함을 야기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며칠 후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불려 나갔다. 눈물 날 정도로 깨지고 돌아왔다.

 이 경험을 통해 조종사의 자질을 배웠다. 절대 자만하지 말 것. 항상 체크할 것. 내 생각을 믿지 말고 내 눈으로 직접 볼 것. 기장님이 확인하면 확인했다는 걸 꼭 다시 한 번 확인할 것.


—————————————-
*HL1111 : 항공기는 매 비행마다 고유의 콜사인(CALL SIGN)이 있다. 탑승권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주로 회사 이름 + 숫자 3~4개로 구성한다. 예를 들어 대한항공 항공기라면 ‘KE1403’ 같은 방식이다. 이 글에서는 익명으로 콜사인을 대체하기 위해 HL1111로 사용했다.
 콜사인과는 별개로 각 항공기는 고유한 이름이 개별적으로 있는데, 항공기 이름은 국가별로 코드가 배정되어 있다. 대한민국 항공기는 앞에 HL를 붙이고 뒤에 숫자 4개를 사용한다. 익명 콜사인을 HL1111로 대체한 이유다.
*고 어라운드 : 착륙을 포기하고 다시 상승하는 비행절차. 조종사는 험한 바람 혹은 비행기 결함으로 안전한 착륙을 못하겠다는 판단이 서면 고 어라운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종사와 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