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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서김 Dec 04. 2020

숏후감(2) -손에 박힌 가시를 뽑을 때 느끼는 쾌감

<보건교사 안은영> - 정세랑

 나는 왓챠파다. 넷플릭스를 구독하지 않았지만,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 화제인 건 여러 미디어에서 진작 접했다. 내용을 몰랐을 땐 SF인지도 몰랐다. 드라마 제목 때문에 평범한 학원물일 줄 알았다. 우연히 정세랑 작가가 쓴 판타지소설이 원작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언젠가 책이든 드라마든 한번 봐야겠다 싶었다. 얼마 전 조카 100일 기념으로  친형 집에 놀러 갔는데, 서재에 이 책이 꽂혀있었다. “형 이 책 좀 빌릴게”하고 냉큼 빌렸다. 같이 빌린 책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 가키야 미유의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다. 나는 돈 아끼려고 밀리의 서재와 도서관을 이용하는데 형은 새 책을 잘 사는 것 같다. 부럽다.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느낀다. 역시 책은 빳빳한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읽어야 더 맛있다.

  소설 속 안은영은 다른 소설의 주인공이나 영웅과 다르게 빠이팅이 안 느껴지고, 강인한 의지도 없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불평불만 가득한 채 악당을 처단하는 특이한 캐릭터다. 만성 피로한 30대 직장인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것 같달까.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만사가 귀찮은 모습이 나 같기도 해서 한 캐릭터에 여러 감정이 투영된다. 그런 안은영이 악한 젤리들을 장난감 칼로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면 시원한 쾌감이 느껴진다. 막힌 게 뻥 뚫릴 때 느끼는 시원함이다. 제목에 썼듯이 가시 같은 불편한 걸 몸에서 딱 빼냈을 때 느끼는 통쾌함이다. 읽어봐야 이해한다.

  책은 단편 같은 장편이다. 단편 SF소설 위주로 쓴 작가다 보니 본인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책의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이어지기보다는 에피소드 별로 나뉘어 있다. 긴 호흡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조금 아쉽겠지만 나같이 짧은 호흡을 좋아하는(유튜브는 10분 이내 것만 보는) 현대인에게는 오히려 더 좋다. 에피소드 별로 다른 사건들이 있다 보니 드라마를 한 회 한 회 넘겨 보는 느낌이다.

 역사학을 전공한 작가가 쓴 책이다. 고증이 잘 된 옛날이야기가 많아 좋았다. ‘재수 옴 붙었다.’의 ‘옴’이 무엇인지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외 여러 가지 내용을 접하다 보면 지식이 깊은 작가라는 걸 알 수 있다. 문학이나 작문을 전공한 소설가보다 다른 전공을 공부하고, 다른 일을 하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슷한 예로 장류진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20,30대 직장인들의 애환을 뼈에 사무치게 느낄 수 있다. 작가가 직접 경험했던 일과 열심히 공부한 지식을 소설에 녹이다 보니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간접 체험의 질이 다르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다양한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책이다. 역사나 무협을 좋아하는 사람도 재밌게 읽을 수 있고,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할 것이고, 여자지만 여성성을 내세우기보다는 한 명의 개인으로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해 나가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화제가 됐나 보다.

 아 넷플릭스도 구독 시작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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