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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서김 Dec 21. 2020

항공, 재난, SF 한 방울씩 넣은 심리 스릴러

넷플릭스 오리지널 - 어둠 속으로(Into The Night)


*
본 리뷰에 앞서 밝힌다. 필자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국내 항공사의 부기장이다. 찐 이과생 너드의 관점으로 이 작품을 리뷰해 보았다.


 예고편을 보는데 찐따스러운(?) 부기장이 보였다.


부기장 마티외. 힘내!

 닮으면 끌린다고 했던가. 내가 너드 부기장이어서 그런지 이 캐릭터가 궁금해 어둠 속으로를 보게 되었다. 역시나 매 회 이 부기장은 겁먹은 표정에, 우유부단하고 스트레스만 한가득이었다. 나름 멋있어 보이려고 노력하던데 멋지지 않아 서글펐다. 비행할 때마다 기장님 눈치, 무서운 사무장님 눈치 보느라 쭈구리가 되는 내 모습이 떠올라 이 캐릭터에 많은 애착을 느꼈다. 이름은 마티외다.

  벨기에 드라마답게 영상 속 비행기는 A320이다.

A320 비행기. 코가 뭉툭하고 귀여운 게 특징이다.

 A320은 유럽(주로 프랑스)의 에어버스라는 비행기 생산업체가 만든 중형 여객기다. 만약 드라마 속 비행기를 타보고 싶다면 아시아나 계열 항공사를 타면 된다. 아시아나, 에어부산, 에어서울이 이 기체를 운용하고 있다. (셋 중 에어서울 비행기가 가장 신형이고 좌석도 넓으니 참고하시라) 참고로 필자는 보잉 B737 조종사다.


 스토리라인은 간단하다. 태양이 갑자기 강력한 감마선을 뿜어댄다. 그 감마선이 너무 강력해 지구에 있는 모든 유기체의 DNA를 파괴한다. 사람 몸에 닿으면 사람이 전자레인지 속에 들어간 것처럼 타 죽는다. 그 감마선을 피하기 위해 유럽 사람들이 A320을 타고 계속 해가 닿지 않는 서쪽으로 도망 다니는 이야기다. 리뷰를 쓰려고 인터넷에 ‘어둠 속으로’를 검색하는데 자꾸 가수 비가 나와 처음엔 왜 그런가 했다. 나중에 깨달았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 아.. 역시 한국 사람들. 아무튼 모두 힘을 합쳐 잘 도망 다니면 재미없으니 비행기에 탄 사람들끼리 편먹고 싸우기도 하고, 위기도 몇 번 겪는다. 줄거리를 아주 간략하게 썼지만 상당히 몰입력 있고 재밌다. 간단한 스토리라인 위에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변화와 갈등을 올려놓아 복잡한 파형을 만들어냈다. 재난이 닥칠 때 나타나는 사람들의 추악한 본성과 이기심이 잘 드러났다. 인물들의 쫄깃한 심리전을 즐기는 넷플릭스 구독자라면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시즌1이 달랑 6화다. 에피소드별 러닝타임이 길지 않고 몰입력이 상당히 높아 한 흐름에 볼 수도 있다. 넋 놓고 보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났다. 다행히 넷플릭스에서 시즌2를 제작하기로 확정했다. 결말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적이다 보니 원작 소설이 있다! ‘The old Axolotl’이라는 제목의 폴란드 SF소설이다. 폴란드 소설이라니.. ‘디 올드’ 다음 단어는 어떻게 읽는지 감도 안 잡힌다. 악솔로틀? 다행인지 아닌지, 넷플릭스가 소설 속 한 부분의 소재만 따와 제작한 거라고 한다. 캐릭터와 내용이 원작 소설과 거의 다르다고 한다. 아쉽지만 시즌2를 더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각 에피소드의 제목은 비행기에 탄 인물들의 이름이다. 매 화 앞부분에는 제목으로 나온 인물의 과거 이야기를 보여준다. 전부 기구한 삶이다. 비행기 정비사로 나오는 ‘야쿠프’ 빼고는 하나같이 정상인 사람들이 없다. 인물의 과거를 보여주는 이유는 재난상황에서 그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시청자들이 납득하게끔 하기 위한 연출자의 의도인 듯 하다. 어둠 속으로를 보면서 한 사람이 겪어온 삶이 그 사람의 현재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우리는 간혹, 주변에 있는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않고 비난부터 한다. 그러다 우연히 그 사람의 과거를 알게 되면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납득한다. 재난영화를 보면서 이해심을 배웠다.


 에피소드 1화의 제목은 ‘실비’다. (실비 김치가 떠올랐다면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자.) 실비는 조금 특별한 이유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극 초반부에는 살고 싶은 의지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포인트에서 180도 바뀐다. 실질적인 리더가 되어 필생즉사,필사즉생의 마인드로 활약해 많은 위기를 극복한다. 갑자기 실비가 왜 삶의 태도를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꾸었는지 생각해보는 것과 어느 포인트에서 그녀의 생각이 바뀌었는지 찾아보는 것이 1화의 흥미 포인트다.

 마지막으로 뜬금없는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 싶다. 나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 알고 보니 흉악한 범죄자다. 나에겐 은인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큰 고통을 주었고, 잠재적으로 나를 위협할 수도 있다. 내가 그의 처분을 결정할 수 있다.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왜 갑자기 이런 뚱딴지같은 얘기를 하는지 궁금하실 거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마지막 화에서 실비가 테렌치오에게 한 행동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지 궁금하다.



 리뷰는 끝났다. 작품 소재에 관한 이과 너드의 추가적인 설명을 읽고 싶으신 분들만 아래 글을 읽어 주시고, 아니라면 건너뛰어도 상관없다.


 #1 태양을 피하는 방법


 감마선이라는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들지만, 어쨌거나 만약 실제로 감마선이든 야임마선이든 우리를 죽일 수 있는 광선이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면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답은 있다. 대학 1학년 때 일반물리를 공부한 물리학과생들이라면 해답을 알고 있다. 간단하다. 밀폐된 도체 안에 있으면 된다. 도체 안에는 전자기파가 통과할 수 없다. 요새는 안 그렇던데 옛날 엘리베이터를 타 본 아재들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 휴대전화가 먹통이 된 경험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그 현상과 같은 원리다. 극 중에 나오는 감마선을 포함해 엑스레이, 가시광선, 자외선, 적외선 같은 광선들은 전부 전자기파다. 전자기파는 특성상 금속 같은 도체 안을 투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체로 밀폐한 벙커를 만들어 그곳에 숨으면 감마선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다 막을 수 있다. 혹시나 이 원리를 깊게 공부하고 싶은 특이한 사람이 있다면 구글에 ‘가우스 법칙’을 검색해 공부해보길...

* 웃자고 한 얘기에 진지하게 반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 포워드 슬립


 극 초반에 ‘포워드 슬립’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출처 : 넷플릭스, 유튜브 ‘지무비’ 채널

 드라마에 항공 전문 용어가 나와 놀랐다. ‘포워드 슬립’은 비행기를 급강하시켜야 하는 긴급상황일 때 조종사들이 사용하는 스킬이다. 엔진이 전부 망가지거나 연료가 고갈되면 비행기는 무동력 글라이딩이라도 해서 활주로에 착륙해야 한다. 엔진 추력이 없으니 활주로에 하강 접근할 때 평상시보다 높게 접근해야 한다. 엔진이 살아있을 때와 동일하게 접근하거나 낮게 접근하다가 비행기가 활주로에 못 미쳐 지상에 닿으면 착륙이 아니라 충돌이다. 활주로에 조금 높게 접근하다가 마지막에 비행기 기수를 아래로 고꾸라뜨려 빠르게 하강해 원하는 포인트에 접지할 수 있게끔 하는 게 ‘포워드 슬립’이다. 비행기 기수를 떨어뜨리면 속도가 어마 무시하게 증가하는데 높은 속도 그대로 착륙하면 비행기가 망가질 수 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강하율은 높이되 속도는 그대로 유지하도록 비행기의 항력을 높이는게 ‘포워드 슬립’의 키 포인트다. 더 자세히 설명하다간 진지하게 될 것 같으므로 이쯤에서 생략한다. 극 중에는 연료가 다 떨어져 이 스킬을 사용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벨기에 드라마 - 어둠 속으로(Into the Night)


진짜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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