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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맛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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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숙 Feb 14. 2019

사루비아 -여름빛 노스탤지어

일러스트 음식 에세이

아! 사루비아 먹고 싶다.”

“과자?”

“아니, 꽃! 사루비아 몰라? 꿀 나오는 꽃”

“그런 꽃이 있어요? 처음 들어보네”


몇 살 어린 지인과 잡담을 나누다 튀어나온 말이다.

모를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사루비아는 좀체 볼 수 없는 꽃이 되었던 것 같다.


어릴 때의 나는 온 동네를 뛰 다니며 채렵을 했다.

보리수 열매, 외할머니 집의 살구, 친할머니 집의 감과 밤, 수풀 속 산딸기 등등...

예전엔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면 즐길 수 있는 디저트가 제법 많았다.

지금도 먹고자 하면 돈으로 바꿀 수 야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그것은 빨간 꽃, 사루비아.

샐비어라고 불리는 꽃이다.

사루비아가 샐비어의 일본식 발음이라는걸 알고야있지만 내 추억 속의 꽃은 샐비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글 안에서는 사루비아라 부르겠다.

이층 양옥집 옆 단칸방 살던 어린 시절, 양옥집 주인 할머니가 마당 화단에 심어놓은 사루비아 밭은 엄마와 우리 두 딸의 포토 핫스폿이었다.

초여름, 빨간 꽃 무더기가 한창이면,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던 우리 엄마는 딸들의 머리를 곱게 올려 묶어주고 제일 예쁜 원피스를 골라 입혀서 일회용 카메라로 사진을 몇 장이나 찍어주곤 했다.


엄마에겐 사루비아가 소박한 풍류였다면 나에게 사루비아는 맛있는 꿀단지였다. 길쭉한 꽃대롱을 꽃받침에서 분리시켜 꽃대롱 끝에 혀를 갖다 대면 달큼한 맛이 난다.

쪽쪽 빨면 꿀이 두 방울 정도 나오는데,

참 감질나는 양이어서 하나 두 개 먹다 보면 화단을 망쳐놓는 범인이 되곤 했다. 꽃 무더기 속에 들어가서 벌과 나비와 경쟁하며 사루비아 꿀을 열심히도 먹어댔다.


주인집 화단의 꽃이라 엄마는 연신 못 먹게 했지만 한창 미운 일곱 살이었던 내가 그런다고 못 했을 리없다.

호시탐탐 노리며 아무도 없을 때 사루비아 꿀을 서리했는데, 인기척이 나면 꽃무리 속에 주저앉아 어설픈 숨바꼭질을 했다.

그럴 때면 주인집 할머니는 화단을 지나가며

'아이고, 화단에 아주 큰 벌이 들었네'

하고 웃으며 지나가셨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이파리의 초록 냄새,

꽃대의 빨간 냄새,

초여름의 공기에는 사루비아 꿀을 기억나게 하는 냄새가 남아있다.

모른 척 넘어가 주시던 할머니의 인자함과 내 키만 했던 선명한 빨간 꽃은 여름빛 노스탤지어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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