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화면이 인스타그램을 점령한 진짜 이유
15년차 디자이너로 살아가면서 매일 아침 커피 한 잔과 함께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확인하는 게 루틴인데, 최근 6개월 사이 정말 눈에 띄는 변화가 하나 있었다. 내가 구독하는 채널들이 하나둘씩 디자인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유명한 콘텐츠 채널들을 보면 예전에는 형광 노란색이나 빨간색 배경에 큼직한 폰트로 "충격! 놀라운 사실!" 이런 식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차분하고 어두운 배경에 깔끔한 텍스트만 올라간 스타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은 채널들이 비슷한 시기에 바뀌어서 '이건 뭔가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이런 변화가 비단 개인 크리에이터들에게만 일어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 정부 기관이나 공공기관 SNS를 보면 아직도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으로 도배된 전형적인 '관공서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지만, 좀 트렌드를 안다 싶은 브랜드들은 거의 다 검은색 배경에 흰 글씨 조합으로 갈아탔다.
캔바 앰버서더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디자인 트렌드를 봐왔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패러다임이 바뀌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그리고 솔직히 내 뇌피셜과 야매 분석을 섞어서 이 현상을 한번 파헤쳐보고 싶었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는 정말 카드뉴스의 전성시대였다. 모든 브랜드, 모든 인플루언서들이 알록달록한 배경에 여러 색깔의 텍스트, 귀여운 일러스트와 아이콘들을 잔뜩 넣어서 시각적 임팩트를 주는 게 정답이었다. 그때만 해도 "눈에 안 띄면 죽는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그 시절 내가 작업했던 프로젝트들을 돌아보면, 클라이언트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좀 더 화려하게", "색깔을 더 넣어주세요", "눈에 확 들어오게 해주세요". 그래서 그라데이션 효과에, 드롭 섀도우에, 네온 효과까지 넣어가며 정신없는 디자인들을 만들어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ChatGPT, 미드저니, 심지어 미리캔버스와 캔바의 템플릿 까지 엄청나게 활용 되면서 누구나 쉽게 그럴듯한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거다. 그러다 보니 인스타그램 피드가 온통 비슷비슷한 화려한 카드뉴스들로 도배가 됐다. 빨간색 배경에 노란 텍스트, 파란색 배경에 흰 텍스트... 뭔가 다 본 듯한 느낌의 디자인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점점 이런 것들에 면역이 생긴걸까? 아무리 화려해도 그냥 스크롤 넘겨버리고, 심지어 "또 이런 거네" 하면서 짜증까지 내기 시작했다. 나도 솔직히 그랬다. 예쁘긴 한데 뭔가 진부하고, AI가 만든 건지 사람이 만든 건지 헷갈리는 콘텐츠들이 너무 많았다.
더 웃긴 건 관공서들이다. 아직도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같은 정부 기관 SNS를 보면 2019년에 멈춰있는 것 같다. 파란 바탕에 노란 텍스트, 빨간 포인트에 각종 아이콘들... 마치 "우리는 트렌드 따위 신경 안 써"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물론 공공기관의 특성상 접근성과 가독성을 고려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래도 좀 세련되게 할 방법이 없을까 싶다.
반면 트렌드에 민감한 브랜드들은 발빠르게 변신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23년 하반기부터 SNS 포스트 톤이 확연히 달라졌다. 예전처럼 파란색 브랜드 컬러를 강조하기보다는 검은 배경에 제품 이미지를 깔끔하게 올리고, 텍스트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LG전자도 마찬가지고, 현대자동차는 아예 흑백 사진에 심플한 카피만 올리는 스타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그러던 중에 등장한 게 지금의 검은 배경, 텍스트 중심 스타일이다.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기억난다. '어? 이게 왜 이렇게 신뢰할 만해 보이지?' 하는 느낌이었다. 분명 더 단순한데 오히려 더 전문적으로 보이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이 현상을 디자이너 관점에서 분석해보니, 사실 색채 심리학과 타이포그래피의 기본 원리들이 절묘하게 조합된 결과였다. 하지만 이게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진짜 정보'를 갈망하면서 나타난 현상인 것 같다.
검은색과 어두운 회색이 주는 심리적 효과부터 살펴보자. 색채 심리학에서 검은색은 권위, 전문성, 신뢰를 상징한다. CNN이나 BBC 같은 글로벌 뉴스 채널들의 UI를 보면 대부분 어두운 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거다.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어두운 배경 = 진짜 뉴스'라고 인식하도록 학습되어 있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디테일이 하나 있다. 진짜 잘 만든 이런 콘텐츠들을 보면 완전한 검정색(#000000)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기존 사진이나 영상에 오버레이로 어두운 색을 살짝 올려주는 정도로 디자인을 한다. 왜냐하면 완전한 검정색은 오히려 눈을 피로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금방 스크롤을 내려버리거든.
캔바에서 작업할 때 이런 색상을 직접 입력해보면 확실히 차이가 느껴진다. 순수 검정색으로 만든 디자인은 뭔가 딱딱하고 차갑다면, 살짝 회색빛이 도는 어두운 색은 훨씬 부드럽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타이포그래피도 마찬가지다. 이런 스타일에서는 텍스트의 위계가 정말 중요한데, 메인 헤드라인은 보통 40px 이상의 굵은 폰트로, 서브 헤딩은 18-20px 정도의 미디움 웨이트로 처리한다. 그리고 한글의 경우 행간을 1.5-1.8배 정도로 넓게 잡아야 가독성이 확보된다.
여기서 또 하나의 디테일. 텍스트 색상도 순백색(#ffffff)보다는 #f8f8f8이나 #e8e8e8 같은 살짝 회색빛이 도는 흰색을 쓰는 게 좋다. 이런 작은 차이들이 쌓여서 "아, 이거 진짜 전문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네" 하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거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UI를 보면 이런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 검은 배경에 콘텐츠만 부각시키고, 텍스트는 최소화하면서도 임팩트는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넷플릭스를 처음 켰을 때 느끼는 그 고급스러운 느낌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화면 전체가 어둡고, 영화나 드라마 포스터들만 선명하게 떠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프리미엄 영화관에 앉아있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는 단순히 미적인 선택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다.
OTT 플랫폼들의 UI 철학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콘텐츠에 집중하게 만들기'다. 화려한 인터페이스 요소들이 시청자의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도록, 가능한 한 모든 장식적 요소를 제거하고 오직 영상 콘텐츠만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심리학적으로도 매우 효과적이다. 어두운 배경은 눈의 피로를 줄여주면서 동시에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을 더욱 선명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또한 검은색이 주는 고급스럽고 전문적인 느낌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이 플랫폼이 제공하는 콘텐츠가 품질 높은 것이라고 인식하게 만든다.
디즈니플러스, 애플TV+,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주요 OTT 서비스들이 모두 비슷한 다크 테마를 채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프리미엄 콘텐츠 플랫폼'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하는데, 검은 배경의 미니멀한 인터페이스가 바로 그런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도구인 것이다.
이 부분이 정말 흥미로운데, 사실 이건 AI 피로감과 직결되어 있다고 본다. 요즘 사람들이 AI 생성 콘텐츠에 얼마나 지쳐있는지 체감하고 있나? ChatGPT로 만든 완벽한 카피, 미드저니로 만든 완벽한 이미지, 심지어 캔바 AI로도 뚝딱뚝딱 그럴듯한 디자인이 나온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와,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구나!" 하면서 모두들 열광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쉬워지다 보니까 모든 콘텐츠가 비슷비슷해진 거다. 같은 AI 툴을 쓰니까 결과물도 비슷할 수밖에 없잖나.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아, 이것도 AI가 만든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특히 Z세대들 사이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네이티브라서 뭔가 인위적이고 가공된 것에 대한 감별력이 정말 뛰어나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콘텐츠보다는 오히려 '사람이 직접 만든 것 같은' 투박함이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등장한 게 이런 검은 배경의 텍스트 중심 뉴스다. 화려한 그래픽 없이 오로지 정보와 텍스트로만 승부하는 스타일. 이걸 보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아, 이건 진짜 사람이 시간 들여서 만든 정보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내가 구독하는 채널들의 댓글을 보면 확실히 다르다. 예전 화려한 카드뉴스 시절에는 "첫째", "좋아요 누르고 갑니다" 같은 피상적인 댓글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진짜 내용에 대한 토론이나 추가 정보를 묻는 댓글들이 늘어났다. 사람들이 진짜로 읽고, 생각하고, 반응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현상은 '읽는 재미'의 부활이다. 15초 틱톡, 30초 릴스의 빠른 자극에 지친 사람들이 좀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원하기 시작했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거다.
이런 심리적 변화는 단순히 콘텐츠 소비 패턴만 바꾼 게 아니라, 정보에 대한 신뢰 기준까지 바꿔놓았다. "화려하면 의심스럽고, 단순하면 신뢰할 만하다"는 새로운 공식이 생긴 거다.
예를 들어, 똑같은 정보를 알록달록한 카드뉴스로 만든 것과 검은 배경에 깔끔한 텍스트로 만든 것을 보여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자를 더 신뢰할 만하다고 평가한다. 실제 내용은 동일한데 말이다. 이게 바로 디자인이 가진 힘이다.
캔바로 이런 스타일의 '읽는 뉴스' 만들기는 기술적으로는 전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디테일이 중요하다.
사실 이런 디자인은 템플릿이 필요하지도 않다. 오히려 처음부터 직접 만드는 게 더 좋다. 빈 캔버스에서 시작해서 배경색부터 설정하는 것인데, 여기서 핵심은 절대 순수 검정색(#000000)을 쓰면 안 된다는 점이다. Custom colors에서 #1a1a1a나 #2d2d2d 정도의 다크 그레이를 입력해야 한다.
템플릿을 쓰면 아무래도 기존에 설정된 레이아웃의 제약을 받게 된다. 폰트 크기나 간격, 이미지 배치 등이 미리 정해져 있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세밀하게 조정하기 어렵다. 특히 이런 미니멀한 스타일에서는 여백의 활용이나 텍스트 위계 설정이 정말 중요한데, 템플릿에서는 이런 부분들을 세밀하게 컨트롤하기가 오히려 귀찮아진다. (수정이 더 일이 많다.)
대신 빈 캔버스에서 시작하면 모든 요소를 내 의도대로 배치할 수 있다. 제목의 크기와 위치, 본문과의 간격, 이미지의 크기와 오버레이 정도까지 모든 걸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진짜 디자인'의 시작이다.
폰트 선택도 정말 중요하다. 한글의 경우 Pretendard, Noto Sans KR, 심지어 캔바 기본 폰트 중에서도 '윤고딕', '순고딕' 정도면 충분히 깔끔하게 나온다. 영문은 Inter, Roboto, 아니면 'Poppins' 정도가 적당하다. 중요한 건 너무 튀는 폰트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지 선택과 처리도 핵심이다. 먼저 캔바의 '프레임' 기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요소에서 '프레임'을 검색하면 다양한 형태의 프레임들이 나오는데, 이걸 사용하면 영상이든 사진이든 언제든지 쉽게 넣고 바꿀 수 있다. 내가 만드는 컨텐츠 사이즈에 따라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 프레임을 사용하면 일관된 레이아웃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그 다음이 가독성 확보다. 이미지 위에 텍스트를 올릴 때 글자가 잘 안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이미지 자체의 투명도를 70-90% 정도로 낮춰서 배경처럼 은은하게 만드는 것이다. 둘째는 반투명한 검은 도형을 이미지 위에 올려서 30-50% 투명도로 설정하는 방법이다. 셋째는 캔바에서 'black fade'나 'gradient overlay'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서 나오는 오버레이 요소들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요소들을 이미지 위에 배치하면 자연스럽게 텍스트 영역이 어두워져서 흰 글자의 가독성이 확보된다.
텍스트 정렬도 신경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가운데 정렬만 사용하는데, 이런 뉴스 스타일에서는 왼쪽 정렬이나 적절한 들여쓰기가 더 효과적이다. 왼쪽 정렬을 사용하면 시선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특히 여러 줄의 텍스트를 읽을 때 훨씬 편하다. 또한 제목과 본문 사이에 충분한 여백을 확보해야 한다. 답답해 보이면 아무리 좋은 정보라도 사람들이 읽기를 포기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팁을 더 주자면, 이런 스타일을 만들 때는 '빼기의 미학'을 실천해야 한다는 점이다. 뭔가 하나 더 넣고 싶을 때마다 "정말 필요한가?"를 자문해보고, 없어도 될 것 같으면 과감히 빼버리는 게 좋다. 완성된 디자인을 보고 "뭔가 심심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게 바로 이 스타일이 추구하는 바다.
이런 트렌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향후 2-3년은 계속될 것 같다. 정보의 신뢰성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이런 진중하고 절제된 디자인은 더욱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사람들의 정보 소비 패턴과 신뢰 기준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우연의 캔바 디자인이 궁금하다면,
https://leewooyeon.my.canva.site/canpa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