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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ae Shin Dec 28. 2023

까마귀의 깃털

우리들의 부끄러운 깃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동화들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지역과 세대를 아울러서  다양한 소재와 재치로 우리에게 따뜻한 감성과 교훈을 줍니다. 하지만, 익숙한 결말과 구성으로 지루하기도 합니다. 이 메거진에서는 그 뻔한 이야기들을 건축가의 시선으로 새롭게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2,600년이 지나도 필요한 교훈

깃털 색깔이 화려하지 않은 까마귀가 공작새의 깃털을 꽂고 까마귀가 아닌 척하며 뽐내다가 그만 거짓말이 드러나 깃털을 빼앗기고 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다. 그리스의 이야기꾼 이솝(아이소포스)의 우화 중 하나다. 허영심을 경계하고 거짓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것을 삼가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겠다. 이솝이 기원전 6세기 무렵의 인물임을 모르더라도 이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교훈을 준다. 그런데 까마귀의 깃털 같은 일들이 자꾸 생기면 2600년 전 이솝이 얼마나 허탈할까 걱정이다.     


테네시의 파르네논

(좌)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 (우) 미국 테네시 주, 네쉬빌의 파르테논 신전

미국 테네시(tennessee) 주의 주도인 네쉬빌(nashvill)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1:1 실물 크기로 재현한 것으로 테네시 100주년 박람회의 기념 건물로 1897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복제품이지만 100년 넘은 건물이니 지금으로서는 테네시 주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겠다. 미국은 그리스와 무관한 나라이니 이 건물을 까마귀가 꽂은 공작새 깃털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미국에 이민자들 중에는 그리스 사람도 있을 테니, 깃털 빠진 공작새가 새 깃털을 구해서 꽂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서양문명의 뿌리를 그리스에서 찾기도 하고, 네쉬빌의 별명이 ‘남쪽의 아테네’였다고 하니 그럴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 박람회 기간에 한시적인 건물이었는데 주민들과 방문객 모두 좋아해서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고 한다.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미 100년이 넘어 나름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서울의 석조전

네쉬빌에 파르테논이 있다면, 서울에는 석조전이 있다. 고종은 조선의 왕이었지만, 스스로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고쳐 세웠다. 유교적인 전통국가에서 근대국가를 지향했다. 그냥 국가도 아니고 제국이다. 내실을 다지지 못했어도 겉은 구색을 갖춰야 했겠다. 영국인 건축가 하딩(John Reginald Harding)이 설계한 석조전은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건축물을 바탕으로 엄격한 비례와 대칭이 드러나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만들어진다. 1900년부터 191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으니, 대한제국의 정전이었지만,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에 완성된 비운의 건축물이다. 당시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공작새 깃털 같은 건축이었을 수도 있지만,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네쉬빌의 파르테논처럼 역사적 건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 스스로 속고 있는 가짜

어쩌면 네쉬빌의 파르테논이나 대한제국의 석조전을 보고 웃을 수도 있겠지만, 21세기 우리들은 모두에게 조롱과 비웃음을 살만한 일을 벌이고 있다. 덕수궁 대한문 앞 수문장 교대식은 언제부턴가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이벤트로 여겨진다. 서울시 시의원이 영국 런던의 근위병 교대식을 보고 와서 시작했다고 한다. 런던의 근위병 교대식은 살아있는 여왕(또는 왕)을 근위 하는 진짜 군인들의 진짜 교대식이다. 그러니 영국인들은 자부심을 갖고, 외국인은 꼭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겠다.

영국, 런던의 버킹엄궁 앞 수문장 교대식
덕수궁 대한문 앞 수문장 교대식

대한문 수문장 교대식은 어떤가? 일단 왕이나 황제가 없으니 그들은 진짜 군인도 아니고 교대식이 아닌 쇼에 불과하다. 역사적인 근거가 있다면 왕이 없어도 괜찮겠다. 그런데 수문장 교대식을 하는 대한문은 조선이 아닌 대한제국 황궁의 정문이다. 덕수궁에 석조전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대한제국은 근대국가를 지향했다. 황제도 스스로 서양식 복장을 입었고, 당연하게 군대도 서양식으로 구성했다. 덕수궁에서 근무하는 수문장이라면 당연히 대한제국의 군인이어야 하고, 복식은 대한제국 군복을 입어야 하지 않을까? 

까마귀의 검은 깃털도 너무 아름답다.
근대국가인 대한제국의 황제로 서양복식을 갖춘 고종

대한제국군의 복식은 조선군의 복식과는 다르다. 남아있는 사진자료에서도 대한문 앞에 나열한 대한제국군의 복식은 검은 제복에 군장과 총을 갖춘 서양식 군대의 모습이다. 석조전이 까마귀가 꽂은 공작새 깃털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까마귀의 입장에서 공작새로 환골탈태하고자 스스로 모든 털을 뽑고, 새로운 털을 이식한 탈바꿈의 과정이었겠다. 허탈하고 처절하게 실패했지만, 의도와 노력은 이해된다.

(좌) 대한제국군의 복식 / (우) 대한제국군복을 입은 (오른쪽 네번째) 항일의병

하지만, 근대화를 거쳐 빠르게 변화해서 첨단의 21세기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조선의 전근대적 방식을 탈피하려고 애쓰던 대한제국의 황궁,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조선의 복식으로 하는 것은 눈뜨고 보기 힘든, 씁쓸한 가짜 쇼일 뿐이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을 본 외국인이 한국에는 아직 왕이 있는지 궁금해하고, 왕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 수문장 교대식을 왜 하고 있고 무슨 의미가 있어서 이 수문장 교대식을 봐야 하는지 질문하는데 나는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왕도 없고, 100년 전 있었던 왕이 버리고 싶어 했던 조선의 복식으로 진행하는 덕수궁의 수문장 교대식은 얼마나 부끄러운지 쳐다볼 수가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국민 모두가 주권을 갖고 대통령을 선출한다. 대통령 관저를 경호하는 군인들은 바라만 봐도 위엄 있고, 근무하는 태도에서는 서슬 퍼런 기운까지 느껴진다. 왕이나 황제의 화려한 경호원은 아니지만, 이런 모습이 진정한 우리의 모습이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하지 않을까? 이솝우화를 읽어야 할 사람은 어린이들이 아니라 우리들이다. 

청와대에 대통령이 근무하던 시절의 경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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