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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ae Shin Jan 04. 2024

소공녀

다락, 하녀의 공간에서 최고급 주거공간으로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동화들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지역과 세대를 아울러서  다양한 소재와 재치로 우리에게 따뜻한 감성과 교훈을 줍니다. 하지만, 익숙한 결말과 구성으로 지루하기도 합니다. 이 메거진에서는 그 뻔한 이야기들을 건축가의 시선으로 새롭게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소공녀의 다락방     

소공녀(小公女, a little princess)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빅토리아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Frances Hodgson Burnett)의 1888년 작품이다.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인도 뭄바이에서 자란 주인공 ‘세라’가 런던의 사립학교에 입학해서 일어난 이야기다. 부유하고 똑똑한 세라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원장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심한 대우를 받지만, 낙천적이고 성실한 노력 뒤에 아버지의 상속을 받으며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다.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아동학대와 권위적인 신분사회의 모습이 비쳐 힘든 내용이지만, 어른들의 위선과 어린이의 순수성의 대비가 극적 매력인 이 소설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으로 많은 작품으로 만들어지면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아동문학이 되었다.     

다락창 attic window / 뻐꾸기창

건축적으로는 배경으로 나오는 19세기 빅토리아 건축의 공간이 인상적인데, 특히 세라가 머물던 다락방이 흥미롭다. 학교에서 가장 좋은 방을 사용하던 세라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하루아침에 다락방으로 쫓겨나며 온갖 궂은일을 하게 된다. 빅토리아 양식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의 건축은 13~14세기의 교회건축인 고딕양식 복고되면서 기울기가 급한 지붕면을 적용해 건물이 높고 지붕이 잘 보이는 특징이 있다. 창문에 세금을 부과하는 창문세가 1850년 폐지되면서 19세기 후반에는 채광을 위한 창이 커지고 많아지고, 지붕아래 다락방에도 채광창이 생긴다. 우리의 소공녀 세라가 지내던 다락방은 피터 베일리(peter bailey)의 일러스트에서 볼 수 있다. 다락방의 아래쪽은 벽이 있고, 위쪽은 지붕의 경사면 때문에 기울어진 천장이다. 기울어진 천장에는 우리가 뻐꾸기 창이라고 부르는 다락창 또는 지붕창이 있다.

뻐꾸기 시계와 뻐꾸기 창 ( cuckoo clock, cuckoo window ) / 다락창 ( attic window )

뻐꾸기가 등장하며 울음소리로 매시 정각을 알려주는 벽걸이 시계를 뻐꾸기시계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 시계가 경사지붕의 집모양을 하고 있다. 뻐꾸기는 지붕아래 다락에 있는 창문이 열리며 울음소리와 함께 들락날락했으니, 다락창을 뻐꾸기창(cuckoo window)이라고 칭한 것 같다. 뻐꾸기가 출입하는 작은 크기의 다락창은 작은 소공녀 세라가 심든 시기를 보낸 어두운 다락을 상징한다.     


엘리베이터가 바꾼 다락
1405년 독일 Konrad Kyeser의 엘리베이터 개념 / 1854년 엘리베이터를 선보이는 Otis

소공녀 세라의 다락은 오르려면 가장 힘들고 어두운 그런 공간이었지만, 소설이 소개된 1888년 즈음은 최초의 승객용 엘리베이터(1856) 이후에 지멘스의 전기엘리베이터(1880)가 선보이며 엘리베이터의 시대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다. 엘리베이터의 적용은 높은 층의 접근을 용이하게 해 주면서 건축물의 높이가 높아지는 계기가 된다. 최상층 지붕아래 공간은 모두가 꺼려하는 소공녀 세라의 다락방에서 최고의 전망과 프라이버시를 갖춘 팬트하우스가 된다.

엘리베이터 PH (penthouse) 버튼 / 펜타곤 (pentagon)이라고 불리는 미국 국방부 건물

최상층은 경사지붕 때문에 단면의 모습이 오각형(pentagon)인데, 여기서 따온 이름이 팬트하우스(pent-house)다. 오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미국 국방부의 별칭이 펜타곤(오각형;pentagon)인데, 팬트하우스와 같은 어원인 셈이다. 지금도 엘리베이터의 최상층 버튼에 층수가 아니라 PH라고 적혀있는 경우가 있다. 경사지붕이 없는 모던한 건물의 최상층인데도 말이다. PH는 경사지붕 때문에 단면이 오각형인 pent-house의 약자다. 사각형의 공간이 수십 층 쌓여있는 고층건물에서 경사진 높은 천장을 갖출 수 있는 최상층은 소공녀 세라의 암울한 다락방은 이제 상류층 최고의 주거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최상류층이 등장하는 드라마 '펜트하우스'
우리의 다락

서양의 다락(attic)은 경사지붕 아래공간을 의미하는데, 우리의 다락은 조금 다르다. 오래전부터 식량과 음식물을 저장하는 공간은 가야 집모양토기에서 볼 수 있듯, 바닥보다 높게 만든 누(樓)에 보관했다. 그랫던 것이 난방과 조리공간이 복합되면서 다락이 등장한다. 요리를 하는 화로와 난방을 하는 아궁이가 복합되면서 부엌이 일상공간과 바깥 지표면보다 낮게 형성되고, 부엌의 높이가 매우 높아진다. 층고가 높은 부엌에는 식량과 음식물을 보관할 공간이 필요한데, 부엌의 층고가 높으니 마침 보관할 장소를 매달아 만들기 안성맞춤이다.  우리의 다락은 부엌 상부에 매달아 만든 식품저장고였다. 현대의 건축물에서도 이러한 생활관성이 이어지면서 경사지붕이 아니더라도 아궁이가 있는 부엌에 작은 다락을 만들어 사용했다. 다락을 영어로 attic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의 다락과 서양의 attic이 DNA부터 다른 이유다.

가야 집모양 토기 / 양동마을 향단의 다락

이런 상황은 건축법에서 이슈가 된다. 건축법에서는 다락을 면적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면적은 재산의 규모를 의미하고, 세금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부엌 상부에 매단 식품저장고를 바닥면적에 포함시키기 난처한 것이다. 면적에 포함할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필요했다. 기준은 사람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낮은 높이가 되었다. 다락이 서양의 attic처럼 경사면 아래 오각형 형태의 모습이라면, 평균 높이가 1.8m를 넘으면 안 된다. 아파트처럼 평평한면 아래의 다락이라면 1.5m를 넘으면 안 된다. 층고가 높은 오피스텔 중에서 복층형이라고 소개하는 경우 복층 부분의 높이가 낮아 기어올라야 하는데, 다락 높이가 1.5m를 넘을 수 없는 이 기준 때문이다.

현대의 다락

다락의 기준을 정의하는 법규에는 높이에 대한 규정만 있지만, 다락의 사전적인 의미 때문에 혼란이 있기도 하다. 무언가 저장하고 보관하는 곳이기 때문에 난방이나 냉방을 해서는 안된다는 선입견으로 다락에는 바닥 난방을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바닥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에 생활공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조리를 하거나 물을 쓰는 것, 용변을 볼 수 있는 화장실 설치를 금지하기도 한다. 다락은 위에 설치하는 것이니 옆에서 들어가는 출입구는 불가하고, 아래에서 사다리로 접근해야 한다거나, 다락에서 옥상으로 출입이 가능한 문이나 창문이 있어도 안 된다는 해석도 있다. 최상층에만 다락 설치가 가능하고, 중간층에서는 안 된다는 해석도 있다. 법규에는 이런 제한이나 기준이 없으니, 지자체마다 담당 공무원마다 해석이 분분하다. 이해가 되면서도 법에 없는 기준을 사람마다 지역마다 다르게 적용하고, 근거 없이 내부 규정이나 지침 등을 만들어 적용하니, 설계하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하다. 소공녀 세라가 다락방에서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면, 건축계획을 하는 입장에서는 다락만 생각하면 우울하고 답답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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