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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Mar 07. 2019

25. 봄인데 똥 손

1월, 2월 대충 아무 생각 없이 지내며 봄이 오면 시작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3월이 와버렸다. 삼일절만 하더라도 다음 주 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3월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요일도 지나고 나니 음... 더 이상의 핑곗거리도 할 수 없는 3월이 되고 말았다. 봄이 되면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기 마련인데,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무것도 하기 싫다. 어! 핑곗거리가 하나 남아 있었네! 미세먼지. 하지만, 나의 게으름을 방어해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나마 1월과 2월 규칙적으로 한 거라고는 바리스타 과정 수업이다. 일주일에 한 번 오전 9시 반에서 11시 반까지 두 시간짜리 수업으로 8주 과정인데,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등록은 했지만 새로 만난 사람들과 통성명을 하고 자기소개를 하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평범한 사람 중에 하나인 나도 마찬가지로 첫날에는 무척 떨렸다. 하지만, 선생님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자기소개 시간을 갖지 않고 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나를 포함해 수강생은 총 네 명이다. 아기 엄마, 대학 2학년인 여학생.  그리고 늦게 들어온 창업 준비 중인 남성. 물론, 셋 다 나보다 훨씬 어리다. 남성은 스물여덟밖에 안 됐는데 사업을 하고 싶다는 게 대단하다고 했더니, 너무 늦었다나 뭐라나. 너어~ 40대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곤란해!


처음엔 실기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다. 카페에서 사 먹던 에스프레소가 여러 가지 미세한 요소들이 다 맞아야 맛있어진다는 걸 알게 되면서 바리스타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이 시간을 통해 내가 얼마나 똥 손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으며, 괜히 겉멋에 들어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해서 스스로를 칭찬해줬다. 포터 필터에 적적량의 원두커피를 넣고 탬핑을 잘해서 에스프레소 머신에 끼워 물을 넣어 내리는 게 에스프레소이다. 처음에는 배운 대로 하니까 잘 나와서 좋았다. 하지만, 점점 내릴 때마다 양이 달라진다. 에스프레소 추출 글라스로 크레마를 포함해 30밀리미터가 나와야 하는데, 에스프레소보다 더 적은 양인 리스트레토가 나오는가 하면, 에스프레소보다 훨씬 많은 양인 롱고가 나와버린다. 에스프레소를 만들 목적으로 내린 건데 왜! 왜인 거죠?


카푸치노 만드는 법을 배웠더니 더 가관이다. 에스프레소 자체를 잘못 내리면, 아무리 스팀 밀크를 잘 만들어봤자 맛이 없다. 그나마 보기에 좋게 거품이 풍부하게 나와야 되는데 그것도 선생님이 곁에 없으면 무리이다. 여기까지 오니 내가 가장 똥 손인 게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스팀 밀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난도의 기술이 있어야 되는데, 스팀밀크 만드는 노즐과 피처 안에 들어있는 차가운 우유가 만나는 순간 만들어내는 굉음에 움찔거리면서 참아보지만, 우유가 넘치지 않으면 거품이 너무 고와 카푸치노가 아닌 카페라테가 되기 일쑤이다.


다른 수강생의 카푸치노를 마셔보면 나의 무능력을 더 깨닫는다. 여대생이 만든 카푸치노를 마시고 처음으로 단 맛을 느꼈다. 아니, 설탕이 한 톨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왜 단 걸까? 잘 내린 에스프레소와 우유 거품과 따뜻한 우유가 만나 한꺼번에 입에 들어오면 그런 맛이 난단다. 내 엄지는 수업시간 내내 다른 이들을 위해  올라가지만, 정작 내 차례에는 꿈쩍도 안 하고 우왕좌왕하다가 끝이 나고 말았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나온 게 바로 전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이다. 전자동은 수백만 원대인데, 원두커피도 적정량 담아주고, 탬핑도 알아서 해준다. 그 매뉴얼 한 동작과 정성을 모두 해결해 균일한 맛을 내주는 것이다. 길거리에 싸게 파는 커피전문점에서 주문하게 되면 머신을 자세히 보기 바란다. 바리스타가 하는 일을 머신이 다 해주니 커피 값이 쌀 수밖에 없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김혜자 님이 말하셨지. '등가교환의 법칙'을 아냐고. 그 능력을 대신해주는 대신 기계가 비싼 거다.


바리스타 과정 모의시험 준비를 시작한 지 2주가 되었다. 에스프레소 두 잔과 카푸치노 두 잔을 만드는 게 미션이지만, 시험은 준비과정, 조리과정, 정리 과정으로 구분되어 총 20분이 소요된다. 짜인 스크립트와 동선에 따라 이동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지켜볼 때는 실수하는 게 다 보이는데, 정작 그 자리에 서 있으면 머리가 하얘진다. 스크립트를 외우느라 눈동자는 허공을 헤매느라 흰자가 보이기 일쑤이다. 선생님은 자신감 있게 여유 있는 척하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겨우겨우 마치고 마지막으로 만든 카푸치노. 수강생들이 맛있다고 해줬지만, 나는 안다. 두 잔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한 잔은 먹을 만 한데, 나머지 한 잔은 싱겁기가 쌀뜨물 같다.  


두 시간 동안 총 두 번 만들었는데,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 신기하다. 내 손으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다를 일인가 싶다. 거기만 가면 울상이다. 나이 들어 외부조건이 아닌 내 안의 조건으로 좌절감이 드니 견딜 수가 없다. 그나마 오른쪽 사진의 왼쪽 커피가 에스프레소와 우유, 거품이 잘 섞여 먹을만했다.



이제 정규 수업은 한 번 남았다. 실제 시험은 여섯 명이 되어야 볼 수 있다고 해서 아직 날짜가 정해지지는 않았다. 늘 그렇듯 국가고시와 달리 사단법인에서 시행하는 시험은 수험료가 참 비싸다. 거기에 심사위원 거마비까지. 내 인생에 운전면허부터 시작해서 대학원까지 한 번에 붙은 적이 거의 없어서, 똥 손인 내가 이번 시험에도 한 번에 붙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두 잔의 맛이 비슷해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고 싶다. 집에서 커피 메이커 말고 좀 더 맛있게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하자, 선생님은 기계 관리가 힘드니 프레스 머신이나 모카포트를 사라고 권하셨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른가?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수동 에스프레소 머신이 싸게 나왔던데 한 번 알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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