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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Mar 14. 2019

26. 바리스타 수업의 모험

드디어 바리스타 과정을 한 주 남겨두고 있다. 매주 수요일 9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수업이라지만, 사용한 에스프레소 머신과 에스프레소 추출 글라스, 밀크 피처,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잔, 티스푼, 행주까지 치우면 12시에 끝난다고 보면 된다. 유난히 똥 손인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의심 반, 설렘 반으로 시작했던 수업은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마무리되고 있다.   


처음 2주간은 이론수업을 했고, 실습 중 가장 먼저 한 건 에스프레소 추출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만만치 않다. 매장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에는 포터 필터 (원두커피를 담아 머신에 끼우는 도구)가 2구짜리, 즉 에스프레소 2잔이 나오는 걸 이용한다. (아래 사진에 검은색 핸들 아래로 뾰족한 부분이 양쪽으로 2개 있다.) 문제는 포터 필터에 분쇄한 원두커피를 균일하게 담지 않았을 때 에스프레소 두 잔의 양이 달라질뿐더러 맛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섬세한 작업인가!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다고?


 



못 하는 게 당연하다. 처음엔 네 번 추출했는데, 네 번 다 달라서 환장하는 줄 알았다. 아무리 선생님 말대로 해도 탬핑하는 나의 힘이 감당이 안 되고, 내가 서 있는 쪽에서는 포터 필터에 원두커피가 제대로 평평하게 잘 담겼는지 판단이 되지 않는다.  커피 양만 30ml를 넘어야 하고, 크레마가 그 위로 5-10 ml 올라와야 하는데 양이 택도 없다.


그나마 몇 주 했더니 양이 얼추 비슷해졌는데, 이것도 운이 좋을 때이다. 나는 정말 에스프레소를 만들려고 힘찬 움직임을 보였건만, 추출되는 양은 더 적은 양인 리스트레토가 될 때도, 더 많은 양이 되는 룽고가 될 때도 있다. 그런데 웃긴 건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분들도 그럴 때가 생긴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옮긴 듯해서 미안하다.   





카푸치노를 만들 때 나의 똥 손은 빛을 발했다. 카페라테 (혹은 카페오레)와는 달리 카푸치노는 에스프레소+우유+단단하고 부드러운 거품이 완벽하게 만들어져야 하는데, 나는 자꾸 똥 싼 거품을 만들어 보기에도 괴로웠다. 스팀 밀크 만드는 과정이 제일 많은 스킬을 요하는데, 그나마 선생님이 옆에 계시면 얼추 거품이 올라오지만, 아닐 때는 자꾸 카페라테가 되어버린다. 스팀 밀크를 만들 때 내가 피처를 너무 꽉 쥐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자꾸 '힘 빼세요!'를 외친다. 나도 경험해봤지만, 누군가를 가르칠 때 별 쓸데없는 고집부리는 애가 제일 짜증 난다. 그 사람이 하필 나이다.

왼쪽이 이상적인 카푸치노, 오른쪽이 나의 똥싼 카푸치노

물론, 3-4주 차에는 선생님의 도움이 있고 정말 주의해서 만드니까 잘 나온 적도 있지만, 5-7차에는 다시 곤두박질을 친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잘하다가 중간에 한 번 바닥을 쳐주고 다시 올라오는 맛이 있어야 할 수 있지 않다던가. 나도 이 수업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이 수업의 목표는 사단법인에서 운영하는 필기와 실기시험에 통과하는 것이다. 5주 차에 들어서니  준비과정 5분-조리과정 10분-정리 과정 5분이라는 정형화된 순서를 따라야 한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손님을 응대하기 전 주변과 기계를 정돈 및 준비해놓고, 주문받은 커피를 (시험에서는 에스프레소 2잔과 카푸치노 2잔) 만들고, 이후 청소까지 하는 전 과정을 섭렵해야 하기에 이런 정형화된 과정을 익숙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 시험과정에 들어간 날 손님 자리가 아닌 카운터 뒤에 서 있을 때 얼마나 긴장이 됐는지 모른다. 일직선의 작은 이동 공간에서 최소한의 동작을 해야 하는데, 자기 꼬리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고양이처럼 얼마나 돌았는지 나중에는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무언가의 주인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요새는 전자동 머신을 이용하는 카페가 많다. 즉, 가장 고난도의 스킬을 요하는 원두커피 양 조절과 태핑을  기계가 해줘서 항상 똑같은 맛이 나는 바리스타가 필요 없어진다. 이는, 곧 커피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전문적인 바리스타가 개입하는 커피는 날씨에, 기분에 따라 아주 세밀하게 맛이 달라질 수 있는데, 나는 왜 그게 더 좋은 지 모르겠다. 전자동 머신이 만든 커피는 맛이 이상하면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해도 같은 맛이 날 것이다. 반면에 바리스타가 만들어주는 커피는 나의 요구를 반영해줄 여지가 많다. 그렇다면 무조건 싸거나 프랜차이즈 커피가 아닌, 가끔은 동네에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에서 최소 4천 원을 주고라도 마시고 싶다.


7주 만에 나는 스팀밀크 만드는 방법을 아주 조금 터득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사진이다.

거품이 어느 정도 단단해지고 양도 많아졌지만, 프레젠테이션 점수는 별로. 하지만, 이제껏 만든 것 중에 갈색 띠가 가장 잘 나왔다 (물론, 갈색 띠 없이 우유 거품으로 가득 차도 좋다).


이쯤 되니, 1인용 에스프레소 머신이 사고 싶어 진다. 물론, 나의 검색 패턴을 분석한 탓인지 쇼핑 앱을 열 때마다 자꾸 에스프레소 머신 세일이 나열된다. 하지만, 같이 수업을 듣는 수강생이 (이 분은 이미 드립 과정을 마치고 시험까지 통과한 분임) 드립 과정을 들으면 머신으로 내린 커피가 맛없을 거라고 잘 생각해보라고 하셔서 잠깐 멈추고 있다.


종합해 보자면, 8주간의 바리스타 과정은 모험이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어하던 것만 하고 싶은 안전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참 좋았다. 물론, 손으로 하는 건 잘 못하는 나의 무능력을 깨닫게 되기도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괴로운 건 잠깐이지만 너무 재미있는 걸.  


덧글) 시험은 6명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 반 수강생은 4명이다. 그래서, 이미 수업을 시작하신 분들과 함께 시험을 보게 될 거 같다. 중간에 연습하고 싶으면 재료비 5천원을 내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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