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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Oct 13. 2021

고요 속의 산길

杏仁의 길 담화_고종시마실길

 바야흐로 가을이다. 빨갛게 감이 익어간다. 감 중에서 으뜸, 그것도 곶감으로 치면 더욱 으뜸인 동상곶감을 만나는 길이 있다. 완주군 소양면과 동상면을 헤치고 지나는 고종시 마실길은, 고종시라 불리는 동상곶감 이름에서 따왔다. 고종시 마실길은 동상곶감의 생산 과정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생태문화 탐방로인 셈이다.


 고종시 마실길은 2개 코스로 이어진다. 한 노선은 위봉산성에서 출발해 위봉폭포를 거쳐 송곶재를 넘은 다음 학동마을로 내려오고, 다른 노선은 학동마을에서 대부산재를 넘어 거인마을로 내려온다. 

 고종시 마실길이 닿는 학동마을과 거인마을은 각각 청정의 생태를 자랑하는 산골마을들이다. 학동마을은 환경부 선정 자연생태 우수마을로써 생태자원 보전과 자연생태를 복원하면서 친환경 유기농 콩 농사로 소득을 올리는 대표적인 마을이다. 전국 8 대오지로 꼽혀 온 장수마을로 주민들의 평균 나이가 73세이며, 마을 주민들이 '깊은 숲 학동마을' 영농법인을 세워 청정 자연환경에서 재배한 콩과 맑은 물을 이용한 청국장을 개발해 년 1억 5000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거인마을은 2009년에 전라북도와 완주군의 지원을 받아 동상 산촌생태마을 펜션시설을 운영하며 주민소득을 올리고 있다. 거인은 이 마을에서 이름난 큰사람들이 많이 나왔다는 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고종시마실길 시작은 위봉폭포다.

 고종시 마실길은 소양면의 위봉사 쪽에서 내려와 산 깊은 동상면 일대를 걷는다. 위봉산성 아래쪽 위봉사에서 위봉폭포로 내려서면 계곡으로 길이 나 있다.  

 위봉산성은 조선 숙종 원년(1675)에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과 조경묘에 있는 태조의 초상화와 선대의 위패를 피란시키려고 축조했다. 축조 당시에는 산성의 둘레가 약 16km에 달할 정도로 큰 규모였으나, 지금은 도로 양쪽으로 성벽 일부와 성문, 포루, 여장, 총안, 암문 등만 남아 있다. 

 위봉사 쪽에서 위봉폭포 내려가는 가파른 나무 층층대가 나 있다. 위봉폭포 입구에 서면 웅장한 모습으로 낙하하는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폭포의 높이는 약 60m. 2단으로 떨어지는 폭포수가 우거진 숲, 바위 벼랑과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비가 내린 후에는 더욱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폭포의 장관을 뒤로하고 아래쪽으로 계곡길을 따라 걷다가 송곶재 쪽으로 넘어가 영등산을 한 바퀴 돌아오는 길이다. 산 깊은 골짜기를 돌아나가는 고종시 마실길에는 깊은 고요가 있다. 산도 깊고, 물도 깊어 골짜기에 감도는 고요마저도 깊다. 전주에서 고작 차로 30여 분을 달려온 이 골짜기에서 청정자연의 원형을 만난다.

 송곶재를 넘어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 나오면 높은 언덕에 정자 하나가 서 있다. 시향정이다. 감나무 향기를 느끼며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라는 이름의 정자다.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오면 예부터 아들 많기로 유명한 다자미(多子美)마을이다.  마을 곳곳에 감나무가 즐비하고, 처마에 곶감을 걸어 말리는 집들도 만날 수 있다.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올라와 만나는 시향정은 감나무 향기를 느끼며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라는 이름을 가졌다.

 동상곶감은 조선 중엽 이후 임금님께 진상한 진상품으로써 고종 때에 이르러 ‘고종시’라는 이름으로 전래되어왔다고 한다. 

 예전에 명절 때가 되면 제사가 끝나고 난 뒤에 돌려가면서 나누어 먹던 곶감은 대개 엽전을 길게 나무 막대기에 꽂은 듯 둥그렇고 납작한 모양이었다. 이 곶감은 좀 질기고 씨를 발라 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동상면에서 나는 고종시 곶감은 보통 곶감과는 많이 다르다. 모양도 둥근 동전 모양이 아니라 감 하나를 그대로 말린 감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맛은 달콤하고 부드럽다. 게다가 씨가 없다. 

 고종시는 왜 씨가 없을까? 고종시는 완주군 동상면의 해발 400m 내외의 자갈밭의 척박한 고산지대에서 자란 야생 감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씨가 없는 이 감나무를 산 밑으로 가지고 와서 옮겨 심고 거름을 잘 주면 어김없이 그 나무에서 열리는 감에는 씨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게다가 맛도 가히 환상적이다.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위봉폭포와 깊은 산속의 고요, 사람과 자연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 그 길에서 만나는 풍광은 경이롭다. 기실 완주군 동상면은 아름다운 경관이 가히 일품이다. 길고도 드넓은 대아리 저수지와 그 곁으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펼쳐지는 풍광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등 계절 따라 변하면서 잘 그려진 한 폭의 산수화다.     

익어가는 곶감. 고종 시 마실길을 걸으며 동상곶감의 생산 과정을 보고 체험할 수 있다.

  고종시 마실길은 청정을 찾아 걷는 길이다. 만약에 당신이 이 가을에 나서지 못하고 한겨울을 넘기며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면, 땅 밑에서 올라오는 봄기운을 느낄 길을 찾아 나서도 좋다. 

만경강의 상류 유역 완주 위봉폭포 골짜기에서 걷는 고종시 마실길이라면 봄기운을 찾아 가볍게 떠날 만도 하다. 단풍 들면 드는 대로, 낙엽 지면 지는 대로, 눈 내리면 내리는 대로, 눈이 쌓이면 쌓이는 대로, 찬바람이 몰아치거나 햇살이 올라오거나에 관계없이 고요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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