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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Feb 10. 2022

지리산에 숨다

杏仁의 길 담화_원천마을 이야기

 지리산 뱀사골의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 원천마을!
 깊은 두메산골의 작은 마을이지만, 마을에 전해져 오는 사연도 많다. 
온천이 나왔다는 이 마을은 처음에 온수동이었다가 원수동으로, 다시 원천리로 바뀌었다.

 임진왜란 때 난리를 피해 들어왔던 사람들이 이 골짜기에 정착해 마을을 이뤘으나 마을이 불타 사라져서 한동안 폐촌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분성 배 씨와 청주 한 씨가 들어와 작은 마을을 이뤘고, 그 후 다른 성씨들이 하나 둘 이주해 왔다.

 원천마을은 본래 온수동이었다고 한다. 만병이 치료된다는 약수가 나온다고 해서 나병환자들의 발길이 잦은 터에, 불편을 느낀 주민들이 우물을 메워 그 자리에 느티나무를 심고 마을 이름을 원수동이라고 고쳐 불렀다는 것이다. 느티나무는 마을의 수호목으로 남아 남원시의 보호수로 지정돼 있고,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송대라고 부른다.

 그 후에 1894년 동학혁명 때 운봉에서 남원의 동학농민군과 전투를 벌여 이긴 장항리 출신 박봉양의 제안으로, 마을 이름을 다시 원천리라고 고쳐 부르게 됐다.

 원천마을의 지형은 나비의 모습이다. 옛날 마을 사람들이 나비의 양 날개에 해당하는 곳에 삼마와 닥나무를 삶는 '삼굿'을 여러 개 거는 바람에 그만 마을의 맥이 끊어져 마을이 번성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삼굿'이란, 땅에 구덩이를 파 뜨겁게 달군 돌을 구덩이에 채우고 물을 끼얹어 거기에서 나오는 수증기로 대마를 익히던 작업이었다.
이 마을은 예전에 삼(대마)과 닥나무 생산지였다. 

 원천리에서 내령리 방향으로 중간쯤 높이 50m, 넓이 25m에 이르는 산신바위가 있다. 바위에는 약 9m쯤 되는 석실이 있고 석실 안에는 바둑판 모양의 줄이 그어져 있다. 깎아 세운 듯 서 있는 암벽 아래 경치가 아슬아슬하다. 

 산신바위에 얽힌 전설은 본래 마을 이름 '온수동'과도 연관이 있다.  그 옛날 신선들이 선녀들을 데리고 내려와 석실 안에 둘러앉아 불로주를 마시며 바둑을 두었고,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다. 하늘에서 찬란한 오색구름을 타고 선녀들이 내려오면 산내에서 용이 꿈틀거리며 일어나 선녀들과 함께 춤을 추며 놀았다고 한다. 가까운 달궁리에 마한의 별궁이 있었는데 왕이 중신들과 궁녀들을 데리고 신선바위에 즐겨 왔으며, 이곳의 온천에서 즐겨 목욕을 했다는 것이다.

 원천마을은, 8.15 해방 이후 좌우익의 갈등 와중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 일대는 여순반란사건 이후 토벌대인 8사단과 수도사단 합동작전과 서남지구 전투경찰부대의 평정 작전이 상당히 오랫동안 전개된 지역이다. 토벌대는 남원시 산내면 16개 자연 마을 가운데 여섯 마을에 대해 소개(疏開) 작전을 폈는데, 원천마을은 그 경계지역이었다. 사오 년 동안,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 치하가 되는 생활을 했다고 하니, 마을 사람들에게 남은 상처가 매우 컸으리라.  1948년 여순반란사건 이후 6.25 전쟁이 끝날 때까지 5년 동안에 희생당한 마을 사람만 해도 15명이라고 한다.      

외톨솔배기.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배배 꼬였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원천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사연이 담긴 산골마을을, 오늘날 휴양하기에 좋은 산촌생태마을로 탈바꿈시켜냈다. 원천마을은 2010년부터 숙박체험시설, 태양광시설, 산촌문화관, 취미 가공체험장 등을 운영하며,  청정 농산물들을 특산품으로 내고 있다. 산림청에서 선정해 전국 곳곳에 만들어진 산촌생태마을 중 제대로 유지되는 곳이 흔치 않으나, 12년 동안 마을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니 과연 원천마을은 천혜의 자연마을이다.

  송이버섯과 고사리, 뱀사골 꿀사과, 한봉꿀, 고랭지 배추, 콩, 무릎을 펴게 한다는 고로쇠 수액까지 마을 주변에서 생산하는 농산물마다 어느 하나 청정 아닌 것이 없다.

 원천마을 뒤 숲 속에는 장대하면서도 기묘하게 배배 꼬인 소나무 한그루가 홀로 우뚝 서 있다. 400여 년 된 이 소나무를, 마을 사람들은 외톨솔배기라고 부른다. 외톨솔배기에도 역시 전설이 담겨 있다. 천년 묵은 이무기가 선녀들이 마을 온천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다 옥황상제에게 들켜서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소나무로 변하여 배배 꼬인 형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옛날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의 노여움이 풀려 이 소 나무가 하늘로 승천하기를 빌었고, 소원이 있을 때마다 이곳을 찾아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소나무가 서 있는 곳은 사방이 훤히 트여서 오른쪽으로 노고단과 반야봉, 정면으로는 삼장산, 왼쪽으로 백운산, 등구재, 삼봉산 크고 작은 산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고, 면소재지를 비롯해 여러 마을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말랭이 한 곳에서 이렇게 여러 산봉우리와 지리산 자락 마을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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