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치료아동 어머니와 댓글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어제 블로그에 <바우처를 하지 않는 1인 언어치료실>에 대한 글을 포스팅했습니다.
그 글의 일부를 캡처해서 인*그램에도 올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 어떤 분의 댓글을 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15년 전 다른 언어치료실에 근무할 때
나에게 언어치료를 받았던 아동의 어머니의 댓글이었습니다.
어떻게 알고 나의 인*그램을 찾았는지도 놀랍지만
댓글을 보고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글을 바탕으로 기억을 되돌려보니
2008년도 즈음에 조음장애로 언어치료를 받으러 왔던 아동이었습니다.
조음치료를 하던 중 아동의 편도가 너무 크다는 걸 발견했고 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조음치료를 받다가 편도수술을 하고 조음치료를 종결했던 아동이었습니다.
조음장애 치료를 받고 돌아가던 어느 날
그 아이와 엄마의 뒷모습은 액자처럼 나에게 남아 있었습니다.
늘 오전 첫 타임에 언어치료를 받던 아이는 그 당시 우리 딸과 같은 나이였습니다.
아이 둘을 챙겨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늦지 않게 출근을 하기 위해서
저의 매일 아침은 늘 분주했습니다.
가끔은 늑장을 부리는 아이들을 혼내고 출근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언어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을 5층에서 내려다보는데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그 뒷모습이 너무 다정하고 이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남의 아이를 언어치료하러 출근하느라
정작 내 아이들에게는 다정하지 못했던 아침이었기 때문인듯 했습니다.
그날 그 아이와 엄마의 다정한 뒷모습과
나도 몰래 눈물을 흐렸던 나
그 장면은 저의 기억 속에 액자처럼 그렇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15년 전의 그 아이의 엄마가 나의 인*그램에
나를 기억하고 댓글을 남겨주셨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몇 년씩 언어치료 받는 아이들의 이름은 거의 기억을 하지만
단순 조음장애로 찾아온 아이들은
몇 달 정도 치료를 하고 종결을 하기 때문에 모두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제 기억속에 문득 떠오른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댓글에 혹시 'ㄹㄷㅎ'아동인가요? 라고 물었는데
세상에!!!!
그 아이가 맞았습니다.
ㄷㅎ어머니도 놀라고 저도 놀랐습니다.^^
그 시절로 돌아가 다른 아이들도 한 명 한 명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다들 지금은 얼마나 컸을까?
그리고 그 시절
14개월이었던 둘째랑 4살 꼬맹이 첫째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언어치료실에 복직을 했던 저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순간순간 내 새끼들을 생각하면
언어치료사라는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일하느라 공부 마무리하느라 늘 바쁜 엄마였기 때문에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2n년 차 언어치료사로 일을 하고
1인 언어치료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언어치료사로서 저의 모습은 부족하다고만 느껴지는 날들이 있습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ㄹㄷㅎ 어머니>덕분에 다시 힘을 냅니다.
내가 걸어온 언어치료사로의 길, 그 길에서 만난 아이들과 어머니들에게
한 분 한 분 진실되게 최선을 다했던 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 그 어머니의 아들 ㄹㄷㅎ와 제 딸 ㅈㅇㅇ은 수능시험을 칩니다.
세월은 너무 빨리 흐르는 것 같습니다.ㅠㅠ
아이들 수능 끝나고 나면 ㄹㄷㅎ어머니와 차 한잔 꼭 할 예정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그날, 종결할 때 제가 드린 그 작은 수첩을 보며
함께 그 시절을 추억하고 싶습니다.
언어치료사로 일하길 참 잘한 것 같습니다.
지금 <온맘>에 오는 엄마와 아이들도
언젠가 세월이 흘러 작은 에피소드를 나눌 수 있는
진심을 다하는 언어치료사가 되도록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