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을 출산하고 육아를 하느라 휴직을 했습니다.
21개월 차이가 나는 두 딸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사는 동안 어느덧 둘째가 돌을 맞이했습니다. 첫째와 달리 임신부터 큰 탈 없이 태어난 둘째는 크게 아프지도 않고 잘 먹고 잘 자라 주었습니다. 둘째를 통해 임신부터 출산까지 첫째 때 겪었던 아픔들이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즈음에 근무했던 치료실 원장님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언제쯤 복직이 가능하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둘째를 두 돌까지 키우고 복직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몇 주 후 원장님이 다시 연락을 주셨습니다.
“임샘, 지금 치료실에 선생님 두 분이 그만두게 되었어. 한 분은 복지관으로 가시고 한 분은 학교로 가게 되었어. 그리고 대기하고 있는 아동들이 있는데 신임 치료사를 쓰기에는 무리가 가는 상황이야. 혹시 임샘이 일찍 복직을 해 줄 수 없을까?”
계획보다 너무 빠른 복직이어서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원장님께서 배려해 주신 게 많아서 저의 상황만을 고집하기에는 미안했습니다. 돌이 지난 둘째는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는게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어린이집에 가는 언니를 부러워했습니다. 첫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친한 동생이 교사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었습니다. 어린이집 원장님께 상황을 말하니 둘째도 어린이집에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14개월에 언니 손을 잡고 커다란 어린이집 가방을 등에 메고 어린이집에 등원하게 되었습니다.
예정보다 빨라진 복직으로 두 딸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육아만 하다 치료실에 출근을 하며 생긴 나의 공간에서 새로운 활기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복직 이후 인수·인계받은 아이들과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온 아이들에게 언어치료를 하느라 적응 기간도 없이 순식간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원장님께서 새 아동을 맡기며 말했습니다.
“임샘, 이 아동은 예전에 우리 치료실에 다니다가 잠시 쉬고 다시오는 아동이야. 그런데 엄마가 많이 예민하셔. 그래서 젊은 선생님께 맡길 수 없어서 임샘이 맡아줬으면 좋겠어.”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지라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께 물어보니 하나같이 그 아동 어머니에 대해 좋은 얘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 아동을 처음 만나는 날이 되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많이 긴장되었지만, 겉으로는 밝게 웃으며 아동의 어머니께 인사를 했습니다. 저를 처음 보는 어머니께서는 약간은 의심스러운 표정이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치료실로 들어와서 라포 형성을 위해 이런 저런 활동을 하던 중, 아이의 손등에 있는 하얀색 점처럼 보이는 흔적들에 제 눈이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40분이 지나고 상담을 위해 어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예민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이 선생님이 제대로 파악을 했나 안 했나 이것저것 물어보셨습니다.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어머니, 현우(가명)키우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죠?”
저의 뜬금없는 질문에 어머니께서 깜짝 놀라셨습니다.
“어머니 현우 인큐베이터에 오래 있었나보네요.”
순간 어머니의 눈이 갑자기 커지더니
“아니, 선생님이 어떻게 그걸 아세요? 우리 현우 인큐베이터에 한 달도 넘게 있었어요.”
“어머니, 현우 손등에 있는 하얀 점처럼 보이는 흔적들이 인큐베이터에서 바늘에 찔린 흔적 맞지요? 그리고 한 달이나 있었으면 손등과 발등에 바늘 찌를 데가 없어서 머리 밀고 머리에까지 바늘을 찔렀을 것 같은데…….”
저의 이 말에 어머니께서는 펑펑 우시면서 그동안 힘들게 칠삭둥이 현우를 키운 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조용히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저의 첫째 이야기를 했습니다. 현우 어머니는 그 날 이후 저에 대해 완전 신뢰를 하시며 현우의 언어치료에 대해 적극적인 협조를 해주셨습니다. 치료사들을 대하는 현우 어머니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에 대해 다른 선생님들이 깜짝 놀라셨습니다. 선생님들의 치료에 대해 까칠하고 예민했던 예전의 현우 어머니가 아니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대기실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대충 몇 개월인지 알아맞힐 수 있었고, 아이를 한 번 안아보고 나서는 몸무게가 몇 키로쯤 되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신발 사이즈나 옷 사이즈도 대부분 알아맞추는 저를 보면 치료실 어머니들의 눈빛에서 신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출산 전과 달리 몸이 많이 퍼져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복직 아줌마 언어치료사를 보는 어머니들의 시선에서 또 다른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된 이후 치료실에 오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한 명 한 명이 너무 소중해 보이고 이 아픈 아이들을 키우느라 어머니들이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나에겐 너무나 힘들었던 시간은 결국 치료실에 오는 아이들 그리고 어머니들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귀한 경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