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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Jun 04. 2024

내가 그러니 너도 그럴 것이다.

  몇 년 전에 대학생 과외를 한 적이 있다. 경제학을 복수 전공하는 학생이라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을 가르쳤다. 4학년이다 보니 가끔 쉬는 시간에 취업과 진로 같은 얘기를 자주 했었다. 어느 날엔가 그 학생이 은행 취업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취업스터디 같은 것도 해보고 하면서 준비해 보라고 했다. 그러더니 나보고 "선생님은 경제학 전공하셨는데 은행 취업은 관심 없으셨어요?" 하길래, "시중은행 전부 다 지원했었는데 전부 다 떨어졌었어~"했다. 그때 그 학생이 하는 말이 놀라웠다. "선생님처럼 스펙이 좋은 사람도 다 떨어졌는데 그럼 저는 당연히 안 되겠네요..."


  내가 되고 안되고는 그 학생이 되고 안되고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두 가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건이니까. 흔히 스펙이 좋아야 취업이 잘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스펙이 좋아 보여도 그 사람보다 스펙이 더 좋은 사람은 차고 넘친다. 스펙은 취업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소 중에 한 가지일 뿐이다. 일자리의 수(경제 상황), 내가 지원하는 회사&직무에 경쟁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운도 큰 작용을 한다. 유형, 무형의 훨씬 더 많은 다양한 요소들의 작용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취업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은 연애도 결혼도 잘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자주 볼 수 있다. 외모도 연애와 결혼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수많은 요소 중에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으니 너도 그럴 것이다'라는 류의 말을 내가 하기도 했었고,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로 많이 들어보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해봤는데 안 됐으니 네가 해봐도 안될 거다'라든가, '이런 나도 해냈으니 너도 할 수 있을 거야'와 같은 말들.


  재테크 책을 보면 이 말이 꼭 나온다. "보잘것없는 제가 해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경매 관련 책만 한 스무 권 넘게 읽었더니 경매 책에서 가장 공통적으로 많이 나온 말이었다. 물론 희망을 심어주는 말이고 저 말에 '그래!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해보자!' 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도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닐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책의 저자들도 물론 본인의 노력이 많이 있었겠지만, '운'도 많이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등등이 다 다르다. 그러니 '저렇게 대단한 사람도 못한 걸 내가 어떻게 해?'라는 소리는 집어치우자. '이렇게 대단한 나도 못했으니 쟤도 당연히 못할 거야'라는 말도 개소리다.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직접 해봐야만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해냈는지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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