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피아노 학원에서 같은 부분을 하루에 수십 번, 그 수십 번을 몇 달에 걸쳐서 수백 번 반복해서 치고 있다. 어떤 부분은 한 열댓 번 치면 잘 되는데, 또 어떤 부분은 수십 번을 쳐도 계속 안된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것은 그 안 되는 부분만 미친 듯이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두 시간 내내 악보 한 줄만 계속 치고 있다 보면 지겹고 답답해 죽을 것 같다. 마치 고장 난 테이프처럼 한 구절만 계속 지겹도록 똑같이 무한 반복된다.
어렸을 때 잠깐 바이엘 배웠을 때는 피아노 책에 한자 바를 정 두 개를 그리곤 했다. 선생님이 10번 치라고 했기 때문에 10번만 치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10번 가지곤 턱도 없다. 최소 50번, 많으면 100번 넘게 친다. 한 곡, 한 부분도 천 번까진 아직 쳐본 적 없긴 하다. 그 정도 반복하려면 본업을 그만둬야 할 정도 일 듯.. 한 곡을 천 번을 넘게 친다는 건 연주회를 준비하는 피아니스트의 영역일 것 같다.
그렇게 계속 반복연습하다가 어느 순간 '오.. 이제 된다?!!' 싶어도 방심은 금물이다. 이제 되는 줄 알았는데 또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주말 쉬고 월요일에 가면 다시 감을 잡는 데 몇십 분이 걸린다. 지난주에 힘들게 연습한 곡인데.. '뭐지 이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것 같은 이 이상한 느낌은...?!' 그러곤 다시 또 무한 반복의 세계로 들어간다...
벌써 혼자 공부한 지 반년이 넘은 스페인어도 마찬가지다. 그냥 무한 반복이다. 똑같은 문장을 읽고 읽고 또 읽는다. '이 문장 이제 완전히 외웠어!' 하는 자만은 잠시, 며칠 지나면 그렇게 자신 있게 내뱉었던 문장이 또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무 잘 까먹어서 외웠다고 하기 무서울 정도다. 눈물을 머금고 다시 그 문장을 또 반복한다. 몇십 번은 읽은 문장 같은데도 다시 보면, '뭐지 이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것 같은 이 이상한 느낌은...?!' 그래.. 다시 무한 반복의 세계로 들어가자...
이런 무한 반복 연습을 해야 하는 일은 수없이 많다. 지금 하고 있는 러닝, 수영도 마찬가지다. 토요일 자유수영을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들이 몇 바퀴 돌았는지 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오늘은 30바퀴 돌자!'하고 30바퀴를 채우고 가려는 듯하다. 나는 수영할 때나 러닝 할 때 내가 몇 바퀴 돌았는지, 몇 킬로미터를 뛰었는지 세지 않는다. 내가 정해 놓은 시간 안에서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만큼 그냥 계속한다.
노무사 시험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흔히 '수험서 몇 회독'이라고 하는 굴레다. 나는 내가 몇 회독했는지 세지 않았다. 그냥 미친 듯이 읽고 읽고 또 읽고 또또 읽고 계속 읽었다. 다 외워서 자면서도 잠꼬대로 줄줄 읊을 수 있는 수준까지 되었는데도, 같은 부분을 또 읽고 또또 읽었다. 외우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까먹는 데는 한순간이기 때문이었다. 금방 다시 잊어버릴까 봐 무서워서 계속 무한 반복했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몇 킬로를 뛰었는지, 몇 회독을 했는지 세지 않은 이유가 있다. 숫자를 세다 보면 '그 숫자'에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 부분을 몇 번 연습했는지 세는 것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무한반복하는 게 나에겐 더 효율적이었다. '꾸준히 계속 반복 연습'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오늘 20바퀴를 돌았는지 21바퀴를 돌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만 시간의 법칙처럼 1만 시간 동안 연습해서 잘하게 된다 하더라도 어차피 며칠, 몇 달 안 해도 실력이 급속도로 줄어든다. 실력이 올라가는 속도는 꼭대기층까지 계단으로 기어 올라가는 속도라면, (무한 반복 연습을 멈추는 순간부터) 실력이 내려오는 속도는 그냥 번지점프로 내려오는 속도다.
예전에는 악기나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었다. 요즘은 멋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엄청 대단해 보인다. 저 정도 실력까지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똑같은 걸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하면서 연습해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내가 그 연습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보니, 결과보다 그 결과를 얻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무한 반복 연습의 과정'이 더 선명하게 보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