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나 6월부터 잡기 시작해 9월까지 잡는 잘디 잔 자하(紫蝦). 곤쟁이라고도 불리는 자하는 곤쟁이과에 속하는 갑각류로 갑각의 색이 자주색으로 붉어 ‘자하’라고 불린다. 서해안에서 잡히는 갑각류 중 가장 작고 연하며 투명하다. 길이는 1cm 남짓. 자하에 소금을 쳐서 담근 젓갈인 자하젓은 곤쟁이젓, 감동젓이라고도 부른다. 19세기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서는 각색 젓갈이라고 해서 다양한 종류의 젓갈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쪄서 먹고 젓무에 조금 넣으면 맛이 일품이다”는 말로 감동젓을 설명하고 있다.
자하를 여기 사람들은 잔젓이라고 부른다. 바다에 나간다고 아무 때나 자하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보름 단위로 바뀌는 간조(干潮)와 만조(滿潮)의 주기인 물때를 잘 살펴야 하는데 보름 중 중 사나흘 정도만 가능하다.
물살이 셀 때는 자하가 안든다. 물이 잔잔하고 바람도 적당해야 한다. 매번 넉넉하게 잡힌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까다롭다. 예전 어머니들은 뻘에 나가 작은 채로 먹을 만큼씩만 ‘잔젓’을 떴다. 서너 주먹이나 될까? 그걸 가져다 소금을 쳐서 짜디 짠 자하젓을 담갔다. 뻘에서 건졌으니 해초가 많이 섞이게 마련인데 그물로 잡은 것은 티가 없이 깨끗하다. 고춘영 · 이용월 부부는 옛날 방식과 달리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져 자하를 잡는다.
노화도에서 배를 타고 나가 잔젓을 그물로 걷는 집은 나까지 두 집뿐이지. 원래는 전복 양식을 했는데 나이 들고 힘들어서 전복일은 접고 취미 삼아 잔젓을 잡아요. 오전에 바다로 나가 취미삼아 세 시간 정도 잡지. 20년 전부터 배를 타고 나가 잔젓을 잡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배가 묵직하게 가라앉을 정도로 많이 떴지. 다 옛날 얘기고, 요즘은 구경하기가 쉽지 않아요.
보리가 누렇게 팰 무렵이 되어야 비로소 자하도 든다. 여름 초입이다. 수온이 올라야 플랑크톤이 풍부해지고 그걸 먹이로 삼는 자하도 넉넉해진다. 해초를 골라내고 물기를 뺀 자하에 소금을 쳐서 잘 섞어 숙성시키면 입맛 돋우는 자하젓이 된다. 예전에는 소금을 많이 넣어 짜게 담갔다. 갖은 양념 넣고 무쳐 먹을 때는 찹쌀풀을 따로 쒀서 섞어 간기를 줄였다. 요즘이야 냉장고가 있으니 소금양은 훨씬 줄었다. 삼삼하게 간을 맞춰 맨입에 먹어도 얼굴 찡그릴 정도는 아니다. 자하젓은 부드러워 입에 걸리는 것이 없다. 껍질이 워낙 얇기 때문이다. 일 년 이상 시간을 두고 숙성시켜 먹어야 비린맛이 없어지는 멸치젓과 달리 자하젓은 소금이 녹을 정도로만 두었다가 먹어도 된다. 일주일이 지나면 노르스름해지고 오래 두면 보라색을 띠다가 점차 거무스름한 색을 띤다. 노화도 사람들을 삶은 돼지고기에 자하젓을 곁들인다. 예전에는 추석이나 설에 갑자기 고기를 먹고 배앓이할 때 자하젓 한 수저를 약처럼 썼다.
어렸을 때는 자하젓을 꽁보리밥에 비벼 먹으면 제일 맛있었지. 갓 지어 따끈한 밥에 얹어 비비면 라면수프 뿌린 것처럼 입에 붙어요. 많이 잡힐 때는 생것 그대로 식초와 고춧가루 조금 쳐서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별미지. 호박이나 양파를 썰어 넣고 소금 탄 물을 부어 볶듯이 지지다가 참기름 좀 넣고 통깨를 뿌려 먹으면 밥반찬으로 좋아요.
아무런 양념 없이 자하젓 본연의 맛을 즐기려면 알배추쌈이나 양배추쌈에 곁들인다. 전라도에서는 잘 삭은 자하젓에 매운 고추와 마늘을 다져 넣고 고춧가루, 통깨를 섞어 양념해 먹는다.
참기름을 넣으면 향이 너무 강하니 맛을 그르치기 십상. 양념할 때 무말랭이를 조금 넣으면 오들오들 씹히는 맛이 좋다. 다시마쌈이나 미역쌈에는 역시 잘 양념한 자하젓이 어울린다.
완도군에 속한 노화도의 또 다른 특산물은 전복이다. 전복 양식은 인공 수정시켜 얻은 치패를 바다 한가운데 설치해둔 전복 집에 2천~3천 마리씩 넣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로세로 2m 크기의 정육면체 형태의 전복 집에 달라붙은 전복은 여름과 가을에는 다시마를, 겨울과 봄에는 미역을 먹고 자란다. 전복 양식장 근처에 다시마 양식장과 미역 양식장을 따로 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늦가을에 치패를 넣어 6개월 정도 지나면 중패가 되는데 이때 한 번 나눠서 전복 집 한 칸에 1천2백마리 정도를 넣는다. 이런 나눠 넣기를 2~3번 반복하며 3년 정도를 키우면 성패가 되어 수확할 수 있다. 수확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 품앗이로 작업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 번에 15명 정도가 배를 타고 나가 새벽부터 전복을 따기 시작해 오전에 일을 마치는 것이다. 싱싱한 상태에서 재빨리 수확해 배에서 선별작업을 한 후 곧바로 활어차에 실어야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치패장과 전복 양식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박향숙 씨는 구절초 농사도 함께 짓는다. 전복밥, 전복죽, 전복장 등 전복으로 만드는 모든 음식에 곁들이기 위함이다. 예전에는 전복이 워낙 귀하니 두 마리 정도만 있으면 전복밥을 해먹거나 전복죽을 쑤어 먹었다. 요즘은 전복 생산량이 많아진 탓인지 사람들은 전복찜, 전복 버터구이, 전복장 등을 즐긴다.
솥이나 냄비에 구절초잎을 넉넉하게 깔고 그 위에 전복을 얹어 찌면 비린내가 가시고 구절초 의 은은한 향이 배어들어요. 여기에 갖은 재료를 넣어 달인 간장을 부으면 전복장맛이 훨씬 좋아집니다.
무, 양파, 대추, 생강, 마늘, 대파, 고추, 다시마, 표고, 고추씨를 넣은 물을 2시간 끓여 채수를 만들고 그 양의 반이 되게 간장을 섞어 바글바글 끓인다. 중간에 대파를 넣으면 향을 살리고 짠맛을 줄일 수 있다. 껍질째 찐 전복을 넣어도 되지만 비린내가 날 수 있어 박향숙 씨는 따로 전복살을 발라 찌는 방법을 택한다. 통에 찐 전복살을 담고 뜨거운 간장을 부었다가 국물 맛이 배면 바로 먹을 수 있다. 같은 장에 데친 문어를 넣어 문어장을 만들어도 향기롭다.
완도 특산물인 김과 전복이 만나면 독특한 별미, 전복내장김부각이 된다. 불린 찹쌀에 전복 내장을 으깨가며 섞은 다음 매운 고추, 양파 등을 넣어 곱게 갈아 풀을 쑤면 연둣빛 전복내장찹쌀풀이 된다. 이걸 결 좋은 김에 발라 한나절 바싹 말리면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향미를 지닌 부각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부각은 기름에 튀기는 것보다 약한 불에 살짝 구우면 밥반찬으로도 좋고 술안주로는 더할 나위 없다.
푸른 전복 내장 섞고 전복살 저며 넣어 지은 전복밥에 양념간장 대신 잘 양념한 자하젓을 곁들인다. 살짝 절인 고구마순에 자하젓을 넣어 버무린 고구마순김치, 매운 고추 듬뿍 넣어 짭짤한 맛을 살린 멸치무침, 늙은 오이 초무침을 곁들이니 금세 노화도 여름 밥상이 차려졌다. 달아났던 입맛이 절로 돌아온다. 흥이 절로 나는 전라도 섬 집 밥상이다.
ㅇ 기획 및 글: 이명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음식연구원)
ㅇ 사진: 최해성 (베이 스튜디오) | 영상: 박명화 (지구인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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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갤러리: https://gallery.v.daum.net/p/premium/hansikculture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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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 노화도의 여름 자하젓: https://tv.kakao.com/channel/3638959/cliplink/412321530
전남 완도군 노화도의 전복: https://tv.kakao.com/channel/3638959/cliplink/412332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