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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Apr 17. 2024

뭐라도 해봅시다 2

두 달 뒤 회사가 문을 닫습니다. 

뭐라도 해보자는 모임에 참여한 인원은 수무명 남짓, 주로 라디오, 엔지니어, 아나운서부의 젊은 직원들이었다. 우리는 회사의 동의 하에 총선 전까지 총선 후보들을 만나러 다니기로 했다. 특히 국민의힘 후보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국민의힘 시의원에 미치는 영향력, 또 나중에 회사와 관련된 안이 논의가 될 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기류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국민의힘 총선 후보들의 명단을 짜고, 우리는 자신이 사는 곳에 출마한 정치인을 찾아가기로 했다. 우리가 만든 전단지와 회사 상황에 대한 설명자료에는 ‘도와주십시오’라는 호소와 함께 상업광고가 불가능한 조직으로서 자립이 어려운 객관적인 상황과 34년간 방송콘텐츠를 만들어 온 방송국의 가능성,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았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당장 어떻게 후보를 만날 수 있는 건지, 또 만나서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나는 담당하던 프로그램에서 정치인도 제법 만나봤고, 연차도 좀 있고, 용감하기로는 1등인 대한민국 아줌마였다. 나는 나의 지역구에 출마한 국민의힘 후보 먼저 만나보기로 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함께 하원시킨 남편에게 집으로 가는 길에 지역구 후보의 유세현장에 잠시 들르자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당선자도 아닌 후보를 찾아가는 거냐, 사정은 참 딱하다만 이게 무슨 효과가 있겠냐’면서도 고분고분 목적지로 향했다. 차 뒷좌석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후보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촉으로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퇴근하는 역에서 퇴근길 인사를 하고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리고 그 역에 가자 정말 저 멀리 빨간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지하철 출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국민의힘 후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거슬러 후보에게 갔다.      

“안녕하세요, 000 후보님”     

뒤를 돌아본 후보의 키가 훤칠했다. 지역주민의 인사라 여긴 후보가 세상 친절한 미소로 내게 답했다.      

“아, 네네, 안녕하십니까”      

“저, 다름 아니라 제가 이렇게 인사드리는 이유가...”      

나는 회사의 사원증을 내보였다.      

“제가 000 직원인데요”     

순간 후보의 얼굴이 굳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      

어차피 내가 말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나는 말을 이었다.      

“지금 000의 상황이 많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아있는 직원이 276명이고, 200명 정도가 저 같은 3040세대입니다. 엄마아빠이기도 하고요. 문제가 있던 사람들은 다 나갔는데...”      

여기까지 듣던 후보가      

“하, 참...”

곤란한 듯 혀를 찼다. 나는 물었다.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러자 그가 번뜩 말했다.     

“혹시 이거 녹음하시는 건가요?”      

역시 정치인이었다. 나는 또렷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저도 제 이름 밝혔고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안 합니다”      

그러자 후보가 말했다.      

“저도 참 안타까운데... 당의 입장도 있는 거니까...”      

당의 입장... 그동안 계속 궁금했다. '과연 이 상황은 국민의힘 시의원들만의 결정일까? 중앙당의 지침일까? 중앙당의 지침은 누가 어떻게 결정한 것일까? 그럴 만큼 이 회사에 관심은 있을까?' 그의 말대로라면 최소한 이 상황에 대해 중앙 당의 입장이라는 게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하게 했다. 

나는 계속 말했다.      

“저도 이 지역 살고, 이 지역에서 000에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많습니다. 당선이 되시면 모쪼록 이 곳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뭐라 하겠는가. 알겠다고 하지. 정말로 후보가 이 회사를 안타까워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나 어쨌든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후보가 달라고 하지도 않은 내 명함까지 건네고 첫 번째 임무를 끝냈다.  


그 후, 뭐라도 해보자고 모인 직원들이 모인 카톡방에 짧은 후기를 올렸다. 사실 그러려고 후보를 찾아간 거였다. 누군가 했다고 해야 다른 직원들에게도 할 만해 보일 테니까.      


짧은 후기를 올린 후에도 그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당의 입장도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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