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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Apr 18. 2024

우리에겐 꿈이 있습니다.

두 달 뒤 회사가 문을 닫습니다.

우리는 방송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 말을 하고 싶다.     


좋아하는 광고가 있다. 삼성의 ‘타조의 꿈’ 광고.      


그런데 알고 보니 나만 좋아한 게 아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뭐야?, 이 감동(Impact)은?’ 하고 놀랐는데 나만 impacted(감동시킨) 게 아니었다. 이 광고는 방송된 후, 세계적인 광고제에서 다수의 상을 받았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를 주제의 이 영상에는 하늘을 날지 못하는 새인 타조가 나온다. 그런데 우연히 타조가 VR 안경을 쓰게 되고, VR을 통해 눈앞에 펼쳐진 하늘과 비행 시뮬레이션을 경험해 본다. 그 후 타조는 실제로 하늘을 날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날게 된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런데 내가 이 광고를 좋아한 이유는 감동적인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이 광고가 당시 삼성의 기업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바꿔 준 광고이기 때문에 좋아한다. 이 광고가 나올 당시, 삼성은 갤럭시 S7의 잇따른 발화 사고로 기업이미지가 추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비록 실패해도 계속 도전할 것이고, 이 위기를 마침내 극복할 것이다’라는 의지를 이 광고를 통해 전달했다. 이 광고를 보고 감동한 사람에게 더 이상 삼성은 ‘실패한 기업’이 아니라 ‘응원하고 싶은 기업’이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광고가 시기적으로 ‘똑똑했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똑똑함’이 좋다.     


엉뚱하게 삼성 이야기를 왜 하나 싶겠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가 이번에 우리 회사에 덧붙여지기를 원한다. 지금 회사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사실 34년 역사 속에서 늘 이곳은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서울시 산하 사업소로 탄생했기에 직원들은 기간제 공무원으로서 주기적으로 재임용 시험을 봐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문지식이 쌓이는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늘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그러다 반갑게도 정치적으로 서울시장과 분리되고, 직원들의 고용불안도 해소되는 방안으로 미디어재단이 되어 독립했다. 하지만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 갑작스러운 국민의힘 시의원들의 지원 중단 결정이었다. 한 선배는 이 상황을 두고 고용불안을 해소한 줄 알고 좋아했는데 회사 문을 닫아버릴 수 있는 키를 쥐여줬다며 ‘뒤통수를 맞았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의회에서 국민의힘 시의원들이 다수당이 되고, 하필 그가 이곳에서 방송을 할 줄 누가 알았겠나.


어쨌든 2020년, 서울시 산하 사업소에서 벗어나 재단이 된 이후 우리는 전성기를 맞았다. 청취율 1위에 다수의 프로그램이 연이어 대외 수상하고, 회사의 위상도 높아졌다. 그러나 내부는 통제력을 잃어 갔다. 직원의 측면에서 봤을 때 처음 누려보는 전성기에 상부가 취한 면도 없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회사가 역풍을 맞아 없어질 위기에 빠진 요즘, 나는 대표성도 없고, 영향력도 크지 않은 평직원이지만 이 회사의 몸담은 제작 PD로서 이곳 직원들의 ‘꿈’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여전히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직원들의 역량이 있다.      


그동안 특정인이 일으킨 소란과 인지도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던 이곳의 공공적 가치, 직원들의 역량은 의지를 갖고 조금만 살펴보면 볼 수 있다.

                                                           

우리는 정치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우리는 ‘방송국놈들’ 일뿐이다. 재미있는 방송을 만들어서, 청취자, 시청자와 소통하고 싶고, 감동을 나누고 싶다. 그뿐이다. 이제 이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떠난 문제적 그들이 아니다. 방송을 만들고 싶은 직원들이다. 그런 직원들을 정치적 잣대로 바라보지 않을 순 없을까.    


다시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꿈이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역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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