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랑 Aug 24. 2023

도움을 주고받는 우리 일상

얼마 전 써니즈님이 미술 전시 및 강연 번개를 처음으로 시도하셨다. 써니즈님은 마음 관련 책을 소개하고 관련 인물들을 직접 인터뷰하며 영상을 만드시는 16만 유튜버이다.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며 본인 스스로의 변화와 탐구 과정을 진솔하게 나눠준다. 나긋나긋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나 또한 여러 영상을 보고 들으며 많은 도움을 얻었다. 늘 영상에서 주로 목소리로 듣던 분을 직접 만날 수 있다니 기대됐다.

 

 내가 있는 곳에서 써니즈님이 계신 곳까지 4시간 정도 걸렸다. iTX가 금방 매진이 되어 시간이 더 걸리게 됐다. 서울을 거쳐 KTX를 타고 가야 하는 여정이었다.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는 건 내게 힘들거나 지루한 일은 아니다. 버스보다 조금 더 탁 트인 열차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차량 안에서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영상을 보고 책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서울에 도착했다. 지방에서 서울 오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정말 많고 패션 스타일이 다양하다. 나 또한 서울에 5년 정도 지냈지만 오랜만에 서울에 오면 눈이 즐겁다고 해야 하나? 자기만의 딱 맞는 스타일을 찾은 사람을 보면 괜히 미소가 지어지고 부러운 마음도 든다. 난 아직 나만의 스타일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무난하게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한 의상을 주로 입어왔던 것 같다. 


 교통카드를 찍고 나가려는데 사람들이 정신없이 오고 가는 번잡한 공간에 외국인 가족이 보였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건너편으로 넘어왔는데 한 여자아이만 넘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밝은 연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푸른 눈이 예쁜 중학생 정도로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카드를 찍을 때마다 "이미 승차처리가 된 카드입니다."라는 말이 반복해서 들릴 뿐이었다. 아마 카드를 찍었는데 제때 나가지 못한 모양이었다.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도 당황한 모습이었다. 여자아이 표정은 울상이었다. 나는 그냥 지나치려다 멈칫하고 멈춰 섰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마침 조금 떨어진 구간에 안내원을 부를 수 있는 버튼과 안내원이 확인 후 자동으로 열어주는 문이 보였다.   


HELP라고 쓰인 둥근 버튼을 눌렀다. 

 "네. 말씀하세요."

안내원이 말했다.

 "네. 안녕하세요. 여기 외국인 분이 승차처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나가지 못하고 있어서요."

 내가 상황을 설명했다.

 "네, 열어드릴게요. 지나가세요."

 딸깍하며 문이 열렸다. 

 "여기로 오시면 돼요!" 나는 성대결절로 못이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국 여자아이는 냉큼 빠르게 걸어오고 나서 울상 짖던 표정을 금세 웃어 보이며 인사를 했다.

 "땡큐"

 "유웰컴"

 뿌듯한 맘도 들었지만 어쩐지 쑥스러워서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걸어갔다. 몇 미터쯤 걸어왔을 때 뒤 돌아보니 외국인 부모님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어주셨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후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키오스크에 주문을 하려고 줄을 서고 있었다.

 마침 한 아주머니께서 키오스크로 아이스크림 주문을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요즘 주문을 키오스크로 하는 가게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주문을 어려워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도와드릴까요?" 내가 물었다. 

 "네.. 답답해서 그렇죠?" 아주머니가 물었다.

 "빨리 해드리고 싶어서요." 대답을 마치고 후루룩 버튼을 눌러 결제까지 완료했다.

아주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하시고 자리로 돌아가셨다.


 안 좋은 일이 겹치면서 나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여긴 적이 많았는데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나를 채워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일들을 겪어서일까. 최근 자전거를 타고 외출을 했는데 업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자물쇠가 손상되어 있었다. 비밀번호를 맞춰봐도 열리지 않았다. 자전저 자물쇠 푸는 법을 검색해서 그대로 해놔도 헛수고였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리고는 짜증과 화가 올라왔다. 


 '어떤 노무 시키가 한 짓이야?!?!?!' 분명 자물쇠가 뽑혀있었기 때문에 어떤 무력이 있었다는 걸 예측하게 했다. 


 '내가 자전거를 놓고 갈 줄 알고? 집까지 들고 갈 거야.'


 정말 더웠고 이미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나는 자전거를 들었다. 앞바퀴가 굴러가긴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자전거는 무거웠고 너무 더웠다. 집까지는 걸어서 30분은 더 가야 하는 거리였다. 다시 길거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검색을 했다. 자물쇠 부분을 망치로 내리쳐서 부수라는 방법이 있었다. 주변 철물점에서 망치를 사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다 주변을 보니 전동킥보드 센터가 보였다. 공구가 많아 보였다. 


 '망치를 빌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조심스레 들어가 사장님을 찾았다.

사장님은 직원 한 명과 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망치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제 자전거가 갑자기 자물쇠가 망가져가지고요.. 자물쇠를 부수려고요.."

 "망치를요? 망치로 되나?"

 아저씨는 큰 쇠망치를 빌려주셨다.

망치로 내리치려고 하는데 직원 분과 사장님이 나와서 줄을 끊어보는 게 어떤지 의견을 제시했다.

 직원은 니퍼로 줄을 자르기 시작했다.

 "줄이 잘릴까요? 철사가 너무 많아서.." 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래, 철사가 너무 많아서 자르기 쉽지는 않겠다." 사장님도 말씀하셨다.


묵묵하게 직원은 하나씩 하나씩 절단해 나가기 시작했다.

금방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미안하기도 하고 조금씩 잘려나가는 걸 볼 때마다 희망을 느꼈다.

 한 두 번 해보고 안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끈기 있게 철사를 조금씩 잘라냈다.

마침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자전거 자물쇠가 끊어졌다.


 "와!! 끊어졌다."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와.. 이게 되네요?" 직원이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집까지 끌고 갈 뻔했어요." 나는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다.

 "여, 오늘 착한 일 좀했네." 사장님이 직원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직원은 힘들었는지 담배를 뽑아 피울 준비를 했다.

 나는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음료 두 개를 사서 다시 장소로 돌아가 음료를 드렸다.

 "아이, 뭘 이런 걸.. " 사장님은 당황한 듯하다가 직원과 바로 그 자리에서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자전거를 슝슝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내게는 선택지가 몇 개 있었다.

 1. 짜증 내고 화내며 무더위에 집까지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

 2. 근처 철물점에서 망치를 사서 자물쇠를 부수는 것.

 3. 자물쇠 관련 업체에 전화해서 해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4. 전동 킥보드 가게에 들어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


나는 도움요청을 잘 못하고 살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혼나며 자라왔고 도움 요청을 했을 때 오히려 비난을 받거나 분노의 대상이 된 적이 있어서 도움을 구한다는 것이 수치스럽고 두려운 것이라는 관념이 생겼다. 그래서 정말 힘든 일이 있어도 가족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갖은 노력을 해가며 웬만하면 혼자 해결했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성대결절에 걸리고 일을 못하게 되면서 너무 두렵지만 처음으로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하더니 내가 그렇게도 어려워했던 도움 요청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올라오는 수치심, 두려움을 모두 느끼고 받아들여주었다. 그 이후로 여전히 두렵지만 서툴게나마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주변에 도움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자전거 자물쇠 사건은 내게 도움 요청에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주는 사건이었다. 도움 요청을 해서 도와주면 감사한 것이고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큰 기대 없이 가볍게 말해보는 연습을 앞으로도 해나가야겠다. 우리네 일상은 이렇게 끊임없이 도움을 주고 또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이기에 재밌는 일상이다.

작가의 이전글 무의식 정화 열차에 오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