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심덕 | 교육심리덕후 교사
유민이는 평소에 말이 없고 무표정했다. 교실에서도, 다른 교과 시간에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그 아이에게 마음이 쓰였다. 유민이는 영어를 어려워했지만, 음악 시간에 리코더 연주를 꽤 잘했다. 영어 시간에도 가끔 어려워하곤 했지만 도움을 요청하며 주어진 과제를 꿋꿋이 해내는 아이였다.
며칠 전 한국의 관광 명소 글쓰기 활동을 할 때였다. 예시문과 단어 리스트를 참고하여 글쓰기를 하고 확인받는 과제였다. 그런데 유민이가 제출한 학습지는 평소와 달리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휘갈겨져 있었다. 바쁜 수업 중, 여러 학생들이 과제를 확인받으러 오는 와중에 나는 원칙대로 말했다. "이걸 선생님이 어떻게 읽으라는 거지? 다시 반듯하게 써와."
시간이 흘렀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활동을 마칠 때까지도 유민이는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원어민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더니, 그 선생님이 유민이를 도와 글을 써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상황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원어민 선생님의 대처도, 자기 과제를 남의 할 일처럼 대하는 유민이의 태도도 옳지 않았다. 결국 나는 또한번 단호한 목소리로 유민이에게 남으라고 말했다.
유민이는 내 눈을 쳐다보지도 않고,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앞으로 나오라고 했지만, 유민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이 끝나가고, 다음 시간 준비로 마음이 급해진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지 않아?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건 괜찮지만 이렇게 휘갈기고 과제를 무시해버리는 행동은
선생님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안 좋아."
하지만 내 말은 유민이에게 전혀 닿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화가 나고 심장이 뛰었지만,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전담 교사로서 담임 선생님께 연락하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 했지만, 지금 상황은 내가 혼자 해결하기 어려웠다. 담임 선생님께 지금 상황을 설명드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유민이는 학습지를 찢어버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교실을 나가버렸다. 순간 당황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점심시간에 담임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담임 선생님은 유민이가 우울 성향이 있어 1학기에도 큰 사건이 있었다며, 이후로 조심스럽게 대하고 무조건 좋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제서야 나는 유민이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배려가 필요한 아이였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24명의 학생들이 있는 교실에서 항상 좋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느꼈지만 그건 누구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이 일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다행히 다음 날 수업에서 유민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수업에 잘 참여했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내 생각을 짧게라도 전하고 싶어서 쉬는 시간에 유민이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핏기 없는 얼굴에는 살짝 긴장한 기색이 보였다.
"어제 네 행동이 잘한 행동은 아니었어. 그런데 선생님이 너무 많은 아이들을 동시에 보느라, 네가 어려워하고 있다는 걸 잘 못 본 것도 사실이야. 앞으로 너무 어렵거나 답답하면 미리 알려주면 좋겠는데, 어떻게 알려줄래?"
"그냥 할게요..."
"그래도 어려우면? 미리 말해줘."
"네."
"근데 말야... 너 이 간식 좋아해? 한번 먹어볼래?"
"아니요"
"이 간식 맛이 어떤지 아이들이 좋아할지 궁금해서 말야"
"맛있어요 그거, 먹어봤어요"
"아 그래? 그럼 이 과자보다 이게 낫나?"
"아니요, 그게 더 나아요"
나는 괜히 간식에 대한 아이의 의견을 물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매끄럽고 친근한 대화의 흐름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의 솔직한 생각을 전하고 싶었고, 그 아이와 이야기 한번 더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교사로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 어떻게 학생들에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교사의 섬세함이란 교실 환경과 수업을 디테일하게 설계하는 것도 있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그때그때 다르다. 그 변화를 알아채고 아이들의 행동 이면, 마음 깊은 곳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빠르게 찾아내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조금 더 유민이를 포함해 다른 학생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로 결심했다. 교직 10년차지만 여전히 '학생의 개별 특성을 고려해서 그에 맞게 대처한다'는 기본 원칙을 실행하는 건 늘 어렵다. 어렵지만 뭐, 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