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심덕 | 교육심리덕후 교사
몇 달 전 아이들이 음악 시간에 신청곡으로 신청하고, 쉬는 시간마다 부르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바로 <미룬이>라는 노래다. 개그맨 이제규 씨가 2024년 5월 1일에 발매한 노래라고 하는데, 듣다 보니 중독성이 있어서 계속 흥얼거렸다. 그런데 미룬이가 무슨 뜻일까? 노래를 반복해서 듣다 보니 알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검색해 봤다. '자꾸만 일을 미루는 덜 큰 어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멜로디는 동요 또는 게임 주제곡 같으면서도 가사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 끄덕이며 공감할 내용이다.
시작이 제일 무서워 미룬이
완벽하지 못할까 봐 지금이
내일의 나에게 일단 미루지
그러다가 돼버렸지 미룬이
시작이 제일 무서워 미룬이
시작이 제일 즐겁던 어린이는
끝내는 데만 급급한
어른이 되지도 못했지
굉장히 철학적이지 않은가? 늘 뭔가를 미루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후회하지만, 그 일은 반복된다. '내일의 나에게 미룬다'도 자조적으로 자주 하면서 웃기도 하는 말이다. 교육심리학에서도 이렇게 할 일을 미루는 행동을 '지연(procrastination)'이라고 부르는데, 스트레스와 불안이 증가하고, 학습 의욕 저하, 성취도 감소, 대인관계 및 사회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연구 결과들이 지연이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지연을 예방하는 대안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다.
그렇지만 지연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또 필요한 선택일 수 있다.
내가 요즘 미루려고 하는 세 가지를 떠올려보면, 그 행동들을 미루는 것이 나를 더 현명하게 만들어 줬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열어보고 싶을 때, 혹은 배부른데 간식을 먹고 싶을 때, 이런 행동을 지연하면 그 욕구가 약해지고 결국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지연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다. 그 행동을 바로 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조절 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그 외에 교육심리학에서는 지연의 긍정적인 면을 어떻게 설명할까?
미루는 것은 단순히 일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준비하는 과정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어렵거나 복잡한 일을 바로 시작하지 않을 때, 그것은 실행하기에는 계획이 덜 준비된 상태일 수 있다. 미루면서 그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롭고 다양한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나는 해야 겠다고 생각이 들면 기한이 길게 남았는지와 상관없이 엄청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치우곤 하는데, 안타까운 건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일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나에게 미루기가 필요했다.
나는 벼락치기를 잘 못한다. 하지만 주변에 보면 벼락치기를 공부나 작업의 한 기술로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압박감 속에서 일이나 공부의 효율이 더 높은 사람이 있다. 이게 자신에게 더 적합하다면 의도적으로 지연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똑같은 행동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미루는 사람을 보고 우유부단하고 게으르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신중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갑자기 어떤 보험상품 가입을 권유받았을 때 가입하기로 빠르게 결정하기 보다는, 판단을 '미루며' 신중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을 가능하듯 말이다. 수많은 광고가 넘쳐나며 자기를 선택해 달라고 외치는 오늘날, 나에게 필요한 선택을 위해서는 적당한 미루기 기술이 더욱 중요한지도 모른다.
미루는 행동은 항상 나쁜 게 아니다. 물론 중요한 일, 숙제, 시험 등 할 일을 기한을 넘겨 미루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때로는 적당한 지연이 필요하다.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자기 조절 능력을 기르고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 말이다. 자기를 미룬이라고 부정적으로 결론내리지 말자. 대신 언제 내가 미루기를 선택하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피드백해 보며 '똑똑하게' 미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