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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원 Aug 15. 2020

대륙의 숏 비디오 완전정복-(2)

한국인의 중국 더우인 생존전략

 더우인 세계의 사람들은 3초라는 암묵적인 룰로 움직인다. 창작자들은 3초 안에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발버둥 친다. 3초 안에 이목을 잡지 못한다면 그 콘텐츠는 어떤 각고의 노력과 희생이 들어갔는지 상관없이 순식간에 묻힌다.  유튜브의 여느 콘텐츠처럼 서론을 소개하는 순간 이용자들은 그대로 외면한다. 영상이 시작되는 그 순간 곧바로 흥미를 끄는 상황을 제시해야 하지 않는 한 주목을 받을 확률은 현저하게 낮아진다. 하루에도 수십만 건의 영상이 올라오는 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유튜브 상의 이용자는 썸네일과 제목을 보고 해당 콘텐츠를 볼지 말지 판단하는 일련의 정신적 과정을 거친다. 때문에 일단 선택을 하면 이용자는 어느 정도 인내심을 갖고 영상을 지켜본다. 하지만 더우인의 영상은 이용자 개인의 의지와는 시스템이 콘텐츠를 제안함과 동시에 상관없이 플레이된다. 때문에 더우인 이용자에게 유튜브에서 만큼의 인내심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더우인 콘텐츠들은 유튜브에 비해 더욱더 직관적이고 원초적이다. 

더우인은 기본적으로 위아래로 영상을 넘기면서 시스템이 추천한 영상을 보는 형식


 이 3초를 잡기 위해 많은 왕홍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화려한 외모, 춤사위, 입담 등 다양한 개성 넘치는 방식들이 이용자들의 넘길지 말지 고민하는 손을 멈추게 한다. 그렇다면 이 전쟁에 참가하는 한국인들은 어떤 개성으로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1년전 이맘때쯤 운영을 시작한 중국 더우인 채널(출연자는 상해에서 인연이 닿은 한국친구)

  나는 1년 전 더우인에 한 한국인을 대상으로 채널 운영을 시작하며 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채널의 출연자인 한국 친구와 밤새도록 토론하며 날을 지새울 정도였다. 처음엔 잘생긴 한국 오빠가 한국말을 하며 영상을 찍어서 올리고 번역 자막을 달아주면 어느 정도 반응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한령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여러 한류 드라마들이 중국의 티브이에 방영되던 한국인은 중국에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 급성장과 콘텐츠 시장의 확대에 따른 질적 퀄리티 향상으로 인해 한국인은 과거에 비해 매력을 잃었다. 


 그럼 중국말을 열심히 공부해서 한번 입담을 털어볼까? 물론 중국말을 잘하면 좋겠지만, 한국인이 중국말을 잘하는 것은 중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중국에 살려면 당연한 거지"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다. 물론 중국에서 피부색이 다른 인종의 외국인이 중국말을 유창하게 잘하면 엄청난 관심과 환대를 받는다. (이놈의 사대주의는 근성은 중국에도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의 유창한 중국어는 본전 치기 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외모만을 중점적으로 밀자니, 이미 더우인 세계 속에는 외모와 끼만 가지고 날고 기는 왕홍들이 득실득실했다. 한국 하면 k뷰티가 강점이니 피부관리 쪽으로 방향을 돌려 보자니 중국에서 k뷰티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고, 출연자 친구도 그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했다. 언제나 관객은 제작자 머리 위에 앉아있다. 그들은 가짜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이런 앞이 안 보이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나침반은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 한국인이라는 안이한 버프가 있을 거라 생각지 말고, 정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개성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결론내린 컨셉은 중국말도 어눌하고, 중국에 대한 이해도 별로 없는 한국오빠의 중국 생활 도전기였다. (정말 사실이 그러했으니깐) 채널명을 欧巴日记(오빠일기)로 바꾸고 영상제작을 시작했다. 

플랫폼은 변해도 콘텐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국가, 사회,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때문에 중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 자국에서 적응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대견하게(?)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근거로  이 컨셉이 확률적으로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했다. 한국인이라는 것을 어필하기보다는, 중국말도 잘 못하는 어느 한 외국인이 중국에서 집 찾기부터, 전기세 납부, 마트 장보기, 공유 자전거 이용하기 등등 을 겪는 일상 사건들을 브이로그 형식으로 만들어나갔다. 


 한 외국인의 중국생활기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콘텐츠화시키자 긍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왔다. 조회수와 구독자가 늘어나고, 텅 빈 댓글창에 하나, 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어눌한 중국어도 중국인들에게는 하나의 재미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중국 생활 속 어려움에 닥친 모습을 귀엽게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구독자들이 댓글창을 통해 这欧巴很不聪明 太可爱了吧 哈哈(이 오빠 너무 멍청해 귀여워ㅋㅋ)라는 댓글을 달았다. 처음엔 멍청하다는 욕인 줄 알았지만, 일종의 애정 어린 표현이었다. 순식간에 不聪明(멍청이)는 고유한 우리의 캐릭터가 됐다.

한국인 오빠의 중국생활 도전기 시작 후 좋아요 숫자가 만단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긍정적인 움직임 속에 어느 순간 폭발점이 찾아왔다. 출연자인 한국인 친구가 열심히 콘텐츠를 촬영하던 중 장염에 걸려서 병원에 갔는데 그 순간 기지를 발휘해 그 과정들을 촬영했다. 중국 병원 시스템을 잘 몰라 허둥지둥 댔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약을 받아 집에 돌아오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영상을 통해 무려 100만의 좋아요, 4천만의 조회수가 나왔고 20만 정도의 구독자가 늘어났다. "외국인의 병원 이용 도전기"가 중국인의 공감대를 건드린 것이다.  "우리 중국인도 우리나라 병원 이용하는 게 힘들어.. 힘내!"라는 댓글들이 쏟아졌다.  

한국오빠의 중국병원 이용기


"지피지기 백전백승"(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


 더우인에서 한국인이 살아남기 위해선 결국 중국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말을 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지라도 그것이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면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없고, 공감대를 노리더라도 그 자기 자신이 억지로 짜낸 가짜라면 사람들은 금세 외면한다. 


 1년 전 시작한 이 한국인 오빠의 중국 생활기 채널은 현재 한국인과 중국인의 국제 연애 채널로 발전했다. 제로에서 시작한 이 채널은 6개월 50만의 구독자를 달성했지만, 점점 공감대 있는 일상 사건을 잡는 것에 있어 한계에 다다랐다. 때마침 출연자인 친구가 중국 여자와 연애를 하고 있었고, 더 많은 공감대를 얻기 위해 채널 방향성을 과감하게 전환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번 폭발점이 찾아왔고, 1년이 지난 현재 330만의 구독자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도 진짜 자기 자신과, 공감대 있는 상황 이 두 가지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중국의 숏 비디오 플랫폼 더우인(抖音)이 전쟁에 참가하는 한국인은 일반 중국인에 비해 디스 어드벤티지를 갖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점점 평가가치가 하락하는 한국인의 매력, 현란한 입담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중국어 능력 부재. 그들과 같은 링에 올라 경쟁해봤자 피 터지게 얻어맞는 것은 나다. 이 것을 빠르게 인정하고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자. 어떤 상황을 보여주고 어떤 말을 해야 진짜 나 인지. 그리고 다시 바깥을 살펴보자. 그런 나의 말을 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어떤 감정적 스파크가 튀길 수 있는지. 절대적인 나만의 링에 올라야 승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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