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을여행작가 로지 Sep 16. 2021

내가 반한, 제주 동쪽

여행일기

30대 자동차 사고로 운전을 꺼려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날은 용기를 내어 한 시간 동안 운전을 했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팔과 다리에 긴장감이 밀려들었다. 아라동을 출발해 중간쯤 봉개동을 지나 조천읍으로 방향을 틀었다. 구불구불한 2차선 길을 달리다 보니 와흘리가 지나고거문 오름이 있는 선흘리를 지났다. 고즈넉한 시골 풍광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팔과 다리에 긴장감은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다.


어느새 숲이 우거진 동백동산 곶자왈을 지나고, 세인트포 골프장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울창한 나무와 높은 벽에 가려진 은밀한 건물을 지나면서 드디어 구좌읍에 들어섰다. 순간 동물이라도 튀어나올듯한 2차선 도로를 얼마나 달렸을까. 청명한 봄을 알리는 풀내음 소식이 창밖으로 전해오고 있었다.




드디어 송당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이곳은 아주 오래전 말을 키워 멀리 몽골로 보내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곳이다. 물론 아부오름에 올라가면 지금도 말을 키우는 목장이 인근에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송당은 정착민들이 밀려드는 곳으로 새로운 물결이 밀려드는 곳이다. 이색적인 작은 책방도 있고 작은 공방에 재미난 카페들이 즐비한 마을이 형성되었다.


유명한 송당 마을을 지나 왼쪽으로 좁은 길을 달렸다. 달리다 보니 왼편으로 돗오름이 보이고 멀리 둔지 오름이 보였다. 둔지 오름은 사진작가 고 김영갑 님이 사랑한 오름으로 돌아가시기 전, 둔지 오름과 다랑쉬 오름 사진을 남기기 위해 아픈 팔과 다리를 지탱하며 하루 종일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우리는 무언가 이루고 싶은 일에 때를 기다리며 안간힘을 쓰고 산다. 그때를 기다리지 못하면 곧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세를 낮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곧이어 천년의 숲 비자림 숲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자림 숲이 보인다는 건 오늘 가고 싶은 목적지에 다 달았다는 신호다. 비자림 숲은 약 900년 된 비자나무 군락지이며, 제주 동쪽의 대표적인 숲이기도 하다. 약 2km 달렸을까! 드디어 꿈에 그리던 다랑쉬 오름이 보였다. 잠시나마 다랑쉬 로터리에 차를 세우고 멀리 우도 섬과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곳에 한 참을 서있었다. 20년 전 이곳에서 보였던 무지개와 물안개의 기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 기억을 회상하기 위해 다시 그 자리에 섰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오면서 오랫동안 잊었던 추억을 다시 떠올리며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다.


차를 돌려 다랑쉬 오름을 향해 오르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오름 주차장에 도착하니 작은 정자가 보였다. 20년 전에는 정자도 없었고 비포장도로에 먼지만 풀풀 날렸었는데... 나는 신발을 벗고, 멀리 바다 풍경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코앞에 보이는 웅장한 오름을 벗 삼아, 김밥의 고소한 참기름 향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숨이 차오를 만큼 허덕이며 380m나 되는 오름을 오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제주에 와서 다랑쉬 오름을 매일 같이 오르겠다는 결심이 되살아나면서 기쁜 마음으로 올랐던 기억이다. 그날따라 눈부신 햇살과 뭉게구름에 눈물이 왈칵 흘러내렸다.  


도대체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감격이었나 아니면 너무 좋은 날씨가 슬펐을까! 꿈에 그리던 오름을 오르며 기분이 좋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날, 나는 참 우울했었다.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의 설렘은 어디로 가고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주말이면 골프 치는 남편을 바라보며 외로웠을까! 아니면 생각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우울했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아무튼 제주생활은 그리 녹녹하지 않은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다랑쉬 오름이 있는 세화리는 매월 5일 10이면 오일장이 열리는 곳이다. 그때마다 동서남북에서 밀려드는 인파로 북새통이었는데,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제주 대표 장터인 플리마켓 중 벨롱장도 이곳에서 열렸었다. 오일장이 열리지 않는 주말이면 벨롱장이 들어섰는데. 이 또한 코로나로 아예 자취를 감춘 듯 보인다.


그날은 물론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었고  시장을 둘러보며 두리번거렸다. 나는 서울 태생으로 오일장이란 시장은  나에게 낯설기도 하고 어색한 곳이었다. 어릴  할머니 손을 잡고 집 근처 시장을 가긴 했었는데 별로 기억에 남는 추억은 없다. 할머니는 다소 냉소적인 분이셨다. 가끔 호떡이 먹고 싶어 칭얼거리면 나의 손을 꽉 잡고 내가 싫어하는 꽈배기 빵을 사주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할머니가 꽈배기 빵을 드시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젠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냉소적이었던 할머니가 그립다.




세화리 오일장이 열리는 바닷가에서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제주시내로 돌아오는 길은 두 가지 길이 있었는데, 나는 어느 길로 갈지 몰라 헤매었을지도 모른다. 월정리 방향인 해안도로를 달릴까? 아니면 다시 중산간도로를 달릴까? 고민에 빠졌었다. 세화에서 하루 종일 보낸 시각은 오후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곧 붉은 석양이 보일 테세였기에 마음이 다급했었다. 다시 익숙한 중산간 도로를 달리고 있는 무의식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석양은 희미해져 가고 웅장한 다랑쉬오름 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님과 함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