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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Feb 20. 2024

내게 질병같은 음악

'내게 강같은 평화'가 아니라 '내게 질병같은 음악'. 좋은 말 많이 두고 왜 하필 질병일까? 우리 몸은 자동차 부품이 아니라서 카센터나 마트에 가서 교체할 수가 없다. 고쳐 쓰거나 고쳐지지 않으면 고장난 채로 써야(살아야) 한다. 나는 선천적, 후천적으로 약하고 예민한 위장 때문에 늘 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장을 떼서 버릴 수는 없다. 어르고 달래서 - 식단 조절하고 운동하면서 - 죽을 때까지 잘 데리고 살아야 한다.


내가 병든 위장과 씨름하면서도 계속 삶을 긍정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음악을 하려고 애쓰는 내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 오로지 한 길만 걸은 분들에 비할 바 못되지만, 늦게 시작한 주제에 그 세계를 깊이 알려고 하는 것에도 그만한 고통이 따르는 것 같다. 심해를 탐험하려 할수록 수압과 산소부족을 견뎌야 하지 않는가? 내가 현재 공부하고 있는 음악의 수준이 심해가 아닌 허리까지 오는 바닷가라도 역시 바다를 쳐다만 보거나 모래사장에서 장난만 치는 수준에 비하면 견뎌야 할 고통이 있다.


5도권 순환표의 왼쪽 면 - F, B♭, E♭, A♭, D♭, G♭ - 스케일 연습을 거의 다 해간다. 완전히 술술 자동으로 쳐지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1-5-6-3-4-1-2-5> 진행으로만 코드진행 연습을 하다 보니 8마디 짜리 멜로디만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슬슬 이 진행이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똑같은 색으로만 그림 연습을 계속 한 느낌이랄까?


삼원색을 섞어서 온갖 세련된 색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음악의 세계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소위 '완전'이라도 하는 1, 4, 5도 화음을 섞고 비틀고, 변형해서 여러 세련된 텐션 코드들이 탄생하고 스케일들이 탄생한다. 음악으로 어느 누구를 위로하기 전에 우선 내가 먼저 위로를 받고 있다. 감정이 정화된다. 자연은 인간의 창조물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경이롭지만 인간은 인간의 것을 창조하고 남기고 싶어한다. 표현의 욕구이다. 글, 말, 그림, 사진, 춤, 음악, 건축, 정원으로... 적적한 삶에 이러한 표현마저 금지당한다면 자유의 욕구를 어디에 풀 것인가.


최근 유튜브 <위라클> 채널을 종종 보고 있다. 채널의 주인공 '박위' 씨의 책도 빌려서 보고 있다. '하반신 마비'는 이제 그에게 애증의 동반자이다. 그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많은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내게 스케일과 코드를 알아가는 기쁨, 느린 진도, 때로는 하기 싫은 피아노 연습, 8마디 이상 떠오르지 않는 악상도 '음악'이라는 친구의 애증의 모습이다. 음악으로 밥을 먹고 살든, 못하든 나는 음악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여행도 좋아하지만 여행을 다닐 넉넉한 돈도 없고, 돈 없이 여행을 다닐만한 배짱도 아직은 없다. 음악이 재미 없어지는 날이 오면 두말할 것 없이 딱 음악을 놓을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강가의 오리를 세밀히 관찰하듯 아직은 음악이란 세계를 더 관찰하고 싶고 탐험하고 싶다. 음악은 장밋빛 미래이기도 하지만 질병처럼 끈적하게 붙어있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낚시도, 프로그래밍 공부도 해봤지만 어떤 분야든 깊이 알지 못하는 만큼 깊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대충 즐기려 할수록 수박 겉핥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건 마치 아무 정보도 알아보지 않고 패키지여행 스케줄에 따라 몸만 따라가는 여행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여행은 다소 고단하더라도 나의 주관과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재미와 의미가 있다는 게 나의 소신이다.


질병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질병은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남용을 경계하고 자제를 알게 한다. 곡이 팔리든, 앨범이 대박이 나든, 소담한 우리 부부의 카페에서 훗날 라이브로 피아노나 기타를 치게 되든... 내 현재의 음악 세계와 미래의 음악 세계가 모두 중요하고 소중하다.


먹고 즐기는 여행도 좋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생각할 기회를 주고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도 좋다. 그런 순례길 같은 음악생활이라도 놓고 싶지는 않다. 기쁨에는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콜라만이 갈증을 해소해 주는 건 아니다. 생수도 있고, 바람도 있고, 과일도 있고, 반가운 사람도 있다. 




숨어있는 음악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진득할 필요가 있다. 깊은 새벽에 붕어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찌를 바라보는 낚시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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