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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an 04. 2024

다채로운 직업 세상 속 우리의 오늘

이태원 참사 1주기 취재 당시 밤을 새우며 마감을 했었다. 기획 출고 마감을 지키려 현장의 정보들을 느긋하게 취합할 시간 따위는 전혀 없었던 기억이 있다. Paul 제공

최근 동기, 선배와 식사를 하며 한 유튜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그는 들어가고 싶던 회사 면접에서 최종 탈락한 뒤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수백만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월수익도 억소리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은 이랬다. 만약 원하던 직장에 합격했다면 유튜브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리는 이같은 웃픈 말을 공유했다. 원하던 일을 선택한 게 잘못인걸까.


이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또 하나 공유되는 사례가 있다. 바로 요즘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한 무인 카페에 관한 것이다. 지점이 우후죽순으로 확산하고 있는 이 카페 대표는 다름 아닌 기자 출신이다. 우리 집 앞에도 들어와 있어 몇번 마신 적이 있는데 커피맛이 꽤 좋았다. 이 근처를 지날때마다 카페 안에는 손님들이 가득차 있는 걸 확인하곤 했다. 이 대표는 어떻게 기자를 탈출할 결심을 먹었던 것일까.


기자들끼리 모이면 늘상 하는 농담 같은 것이 있다. 얼마 전에도 모 직장인 커뮤니티에 관련 질문이 올라왔었다. 질문 내용은 바로 '조카가 기자를 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였다. 이 글에 대한 답글들은 내 예상을 전혀 빗나가지 않았다. 사촌에게 자식 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전해라, 세상은 넓다는 걸 꼭 인지시켜라 등 강한 만류를 이끌어내라는 응원들이 바로 그것이다. 짐작하건데 이들 가운데 내일 당장 기자를 그만둘 이는 없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글쓰는 것 이외에 잘 해낼 수 있는 게 없다. 물론 모든 기자를 싸잡아 평가절하하는 게 아니다. 그냥 보통의 모습이 그렇단 것이다. 우리가 일을 하면서 PPT를 만드나 아니면 각종 금융 정보들을 활용해 엑셀을 작업하나.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다룰법한 것들을 전혀 해보지 않고 시간 개념 없이 이슈를 쫓기 바쁘다. 그러니 연차가 쌓일수록 '할 줄 아는 건 글쓰기'란 자조적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내가 어떻게 취업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아찔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지나쳐온 회사들의 합격 이메일을 들춰보니 더 그랬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말하기엔 이 직업을 갖기 위해 남들이 하지 않은 노력을 했으니 뿌듯함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근래 직업과 성취의 흐름을 보자니 세상을 너무 좁게 보고 있었나 싶어 아쉬움 아닌 아쉬움이 밀려올 때가 있기도 하다.


한 직장에만 올인하는 선배 세대를 넘어 다채로운 세상이 된 현재에 들어와 기자가 된 선후배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누가 등 떠민 건 아니지만 많고 많은 직업 중 왜 하필 기자를 선택했을까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는 한 언론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많은 공감을 받았으니깐. 인턴기자를 하며 이 업을 체험할 때 난 어떤 결심을 했기에 잠자코 나아가길 선택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제 확인했던, 활발히 법조 출입을 하던 중학교 친구의 기자페이지가 지난해 말 삭제된 걸 본 점도 깊은 생각에 한 몫 하는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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