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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pr 10. 2024

이번엔 어떤 흔적이 남을까

여행을 간 자리에서도 항상 노트북을 가지고 어디에서든 펼쳐 일을 해야 했었다. Paul 제공

살면서 우린 수많은 선택을 한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를 갈때 선택의 신중도는 꽤 커진다.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에 입사할 때는 이전보다 더 큰 신중함을 보인다. 회사 하나로 인생이 바뀔리 만무하지만 첫 사회생활을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앞으로 삶에 있어 적잖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 직업을 선택한 뒤 두번의 이직을 했다. 이같은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성장이었다. 몸담고 있는 곳보다 더 큰 조직으로 가면 아무래도 기회가 많지 않은가. 그걸 발판삼아 많은 배움을 얻고 싶었다. 물론 이런 이상적 결과를 항상 도출해내진 못했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 무언가 사부작거렸음이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뿌듯함이란 흔적이 됐다.


현재 있는 곳은 굳이 이직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회사다. 정년까지 있으라고 한다면 열심히 다닐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언론산업 환경이 급격히 변하며 다양한 문제를 직면하게 됐고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결과 갖은 혼란이 회사에 찾아왔고 안일하게 굴러가고 있던 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좀 머물러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변화를 위한 움직임을 만들어야 하는 건가 싶었다.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한가지 기회가 찾아왔다. 학부시절 꼭 하고 싶었던 분야에서의 커리어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였다.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 탓에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다. 사회 초년생이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장 하고 싶은대로 했을 텐데 이제는 선택 하나에도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니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고민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인프라다. 전문 분야를 파기 시작하면 그 분야에만 몰두해야 하기에 다른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다. 과연 60대 정년을 두고 봤을 때 아직 한참 남은 이 기간 동안 이 선택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질 않고 있다. 어쨌든 한번 선택하면 당분간은, 어쩌면 커리어 내내 되돌릴 수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득 학부시절 전과를 했던 경험을 떠올리게 됐다. 원하지 않던 학과로 입학한 뒤 공부를 쫓아가는게 힘들었던 난 군복무와 어학연수 시간을 거쳐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이후 전과를 할 수 있는 마지막 학기에 부모님을 앉혀 놓고 학과를 바꾸겠다 선언했었다. 취업이 잘 되는 학과를 버리고 취업률 0%로 수렴하는 순수학문을 공부하겠다는 아들을 보는 부모님 심정이 어땠겠나. 그야말로 도박인 이 중대한 결정을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다음날 수락하셨다. 하고 싶은게 있으면 끝내 이뤄내는 날 너무나 잘 아셨기에 믿기로 결정하신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전과는 지금의 직업을 얻기까지 큰 도움이 됐다. 학과 공부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활동과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사에 입사할 땐 관련 분야에서 공부했던 게(물론 기자 대다수는 출신 학과가 글과 거리가 멀다) 이점이 됐으니 성공한 셈 아닌가. 지금껏 여러 강연 현장에서 꿈을 이뤄온 과정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사건 중 하나가 됐다.


이번에 하게 되는 선택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어딘가에서 말할 정도의 결정이 될지 안 될지 난 모른다. 많은 쟁점을 고려하겠지만 그렇게 도출된 판단이 꼭 정답은 아니니까 말이다. 시간이 흐른 뒤 웃을 수도 아니면 아쉬움을 가득 남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끝이 매서운 결정을 내리고 있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학부시절 넘쳤던 패기와 파이팅은 어디로 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삶은 선택의 연속임을 이번에도 알아간다. 경계해야 할 건 지금 당장의 상황을 피하고 싶어 도피처 마냥 다른 기회들을 엿보는 것이다. 숙고없는 선택은 아뿔사를 남기기 마련이니 현명할 수 있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이번달이 지나면 어떤 것이든 결론이 나왔을 텐데 내 모습은 어떨까 기대보단 아리송한 두려움이 앞선다. 윗분만 아시는 인생의 순간들, 난 괜찮게 흘려보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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